신간 ‘천국에서 보낸 9일’(브니엘)은 매리에타 데이비스라는 스물다섯 살 여인이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글로 엮은 것이다.

그녀는 1823년 뉴욕 주 버린에서 태어나서 홀로된 어머니와 두 자매와 함께 생활했다. 19세기 미국 동부지역을 휩쓸었던 영적부흥운동은 마침내 그녀가 살던 곳까지 밀어닥쳤다. 매리에타의 가족들 역시 이 운동에 적잖게 영향을 받았지만, 매리에타는 예외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신앙적인 문제로 고민하긴 했지만,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라서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25세가 되던 해에 그녀는 인생의 전환점이자 이후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이 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 1847~1848년 겨울에 열린 부흥회를 통해서 회심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확실한 믿음을 갖지는 못했다. 그저 선데이 크리스천처럼 지냈을 뿐이다.

부흥회가 있던 그해 8월 그녀는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주치의를 비롯한 많은 의사들이 당시 의학의 힘으로 그녀를 고치려 했지만 허사였다. 그녀는 육체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단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9일 후 그녀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고, 거의 초인적인 기억력으로 천사들이 자신을 천국과 지옥으로 어떻게 안내했는지를 소개했다. 그녀는 거기서 목격한 것들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오랜 친구들과 친척들, 그리고 구속자이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했다. 이후 그녀는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확실히 갖게 되었고, 평안의 낙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천국을 증거하다가 그 이듬해 3월, 자신이 예건한 대로 세상을 떠나 예수님의 품에 안겼다.

나중에 그녀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자 당시 사람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덕분에 그녀에 관한 소식은 순식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1백 년 이상이 훌쩍 지났지만, 매리에타의 책은 여전히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계속 출판되고 있다.

매리에타는 죽음 너머의 세계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경험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거나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한 나름의 직접적인 경험을 소개하고 있지만, 소설처럼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 역시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매리에타는 죽음 이후의 세계인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물과 존재들의 삶과 생각을 거침없이 소개한다.

매리에타는 자신이 본 환상이 성경의 메시지와 기본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충분히 제시한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과거에 죽음 이후의 사건들에 관해서 성경과 무관하거나 성경의 메시지보다 우위에 있는 입장에서 서술하는 경우들이 가끔 있었다.

때문에 그런 글들은 의도와는 달리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거나 훼손할 때가 많았다. 매리에타가 경험한 죽음 너머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성경의 메시지에 기초를 두고 있다. 덕분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 혹은 죽음 이후의 사건들 역시 성경의 메시지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범한 교훈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매리에타는 자신이 환상을 본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이들에게 생전에 믿음을 갖고 내세를 준비하도록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그녀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매리에타의 임무는 그녀가 환상을 목격하고 자신이 예견한 것처럼 7개월 뒤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당시 직접 만나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그녀의 글을 통해서 상당한 자극과 도전을 받았고, 그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시대적, 문화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리에타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아주 단순하고 확실하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그 이후에 기다리는 또 다른 삶을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