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경 요한교회 김규동 목사가 시애틀의 부흥을 위해 던진 메시지는 ‘용서의 실천’과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라’였다.
워싱턴주 중소교회가 연합해 교단과 교파를 넘어 지역과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워싱턴 주 열방을 품는 기도 성회(대표 황선규 목사)는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타코마 삼일교회(담임 정태근 목사)에서 ‘영혼 구원으로 교회 부흥을 이루자!’라는 주제로 일본 요한 동경교회 김규동 목사를 강사로 제 36차 성회를 개최했다.
25년 전 일본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한 김규동 선교사는 선교사 무덤이라 불리는 일본에서 3천명이 출석하는 동경요한교회 이끌며 36개 교회를 개척했다. 그가 말한 선교 비결은 ‘끊임없는 성실’, ‘복음에 대한 확신’, ‘주님을 따르는 용서의 실천’ 등 비교적 간단하고, 이미 많은 성도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선교사들이 뜨거운 선교 열정과 신학적, 선교학적 지식을 가지고도 좀처럼 문을 열지 않던 일본에서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비결은 조금 달랐다.
그는 자신의 선교 사역 모든 일에 진정성을 부여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으려고 지금까지 달려왔다”는 그는 예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진정한 용서’, ‘진정한 사랑’,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믿음’을 실천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주님을 바라보라”는 그의 말 속에는 순교자들의 부르짖음이 담겨있었다.
또 “어려움을 처했다면 그곳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까지 하신 예수님을 푯대 삼으라, 이 정신을 놓치지 말라”는 당부에서 그의 굳은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날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10)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김 목사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 꽃 핀 일본선교에 대해 언급했다.
◈목숨을 걸고 주님을 바라보라=1998년 10월 18일은 요한 동경교회가 10주년 예배를 드린 그 다음 주일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설교준비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나선 김 목사는 엘리베이터 작동이 평소와 조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은퇴자들이 살고 있던 서민아파트라 오전에는 사용자가 거의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후 내려온 엘리베이터에서 문이 열리자 그를 맞이한 것은 몽둥이와 칼이었다.
요한교회가 찬양 전도집회를 개최하면서 일본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받기 시작하자, 일본의 극좌파 가운데 하나인 혁명노선협의회가 김규동 목사를 살해할 계획을 실행한 것이다.
상처를 입은 김 목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피 웅덩이에서 그를 발견했다고 할 정도로 그는 극심한 매질을 당했다. 머리는 일반인의 두 배로 부어있었고 양 다리와 양 팔, 얼굴의 광대뼈가 부서졌고, 오른팔에는 큰 칼이 꽂혔다. 극좌파는 이것도 모자라 도끼로 김 목사의 아킬레스건 절단을 시도했다.
북한과 연결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일본을 혼란스럽게 했던 극좌파 테러범들은 “사탄이 하나님을 쓰러뜨렸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자축 파티를 벌였다.
◈저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몰라서 그래..=일본 안기부는 의식을 갖고 깨어난 김규동 목사에게 그들을 일본법에 따라 극형에 처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봤기 때문이다.
테러단은 의식을 되찾은 김 목사에게 두번째 테러를 감행하려고 했다. 김 목사는 예수님을 따라 가슴으로 그들을 품었다. 이 사건은 일본인들에게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찔리면 찔리고, 때리면 맞는 연약한 모습이지만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강한 능력과 사랑에 일본인들이 마음을 열었다.
자신들을 용서한 김 목사로부터 충격을 받은 테러범들 사이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나무막대기 하나 들지 않은 교회 성도들을 보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본의 거대 금융이 된 한 은행가는 그 사건에 감동을 받고 원하는 융자와 자율적 상환기간으로 교회 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체 건물 없이 4개 교회를 개척했던 요한교회가 현재 27개 건물에 36개 교회를 개척하는 밑바탕을 마련해줬다.
김 목사는 “기독교는 피 흘림의 종교”라며 “용서하고 용납하는 마음에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복음의 능력을 삶으로 보이라”며 “한인 교회가 미국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라”고 주문했다.
끝으로 그는 “선교는 한강물에 돌을 던지는 것이다. 계산하면 안 된다. 10년 했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20년 30년 계속하는 것이다. 내 때에 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하는 것이다”면서 “아무것도 없다고 헛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다. 반드시 씨앗이 살아남게 되어있다”고 선교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워싱턴주 중소교회가 연합해 교단과 교파를 넘어 지역과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워싱턴 주 열방을 품는 기도 성회(대표 황선규 목사)는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타코마 삼일교회(담임 정태근 목사)에서 ‘영혼 구원으로 교회 부흥을 이루자!’라는 주제로 일본 요한 동경교회 김규동 목사를 강사로 제 36차 성회를 개최했다.
25년 전 일본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한 김규동 선교사는 선교사 무덤이라 불리는 일본에서 3천명이 출석하는 동경요한교회 이끌며 36개 교회를 개척했다. 그가 말한 선교 비결은 ‘끊임없는 성실’, ‘복음에 대한 확신’, ‘주님을 따르는 용서의 실천’ 등 비교적 간단하고, 이미 많은 성도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선교사들이 뜨거운 선교 열정과 신학적, 선교학적 지식을 가지고도 좀처럼 문을 열지 않던 일본에서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비결은 조금 달랐다.
그는 자신의 선교 사역 모든 일에 진정성을 부여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으려고 지금까지 달려왔다”는 그는 예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진정한 용서’, ‘진정한 사랑’,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믿음’을 실천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주님을 바라보라”는 그의 말 속에는 순교자들의 부르짖음이 담겨있었다.
또 “어려움을 처했다면 그곳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까지 하신 예수님을 푯대 삼으라, 이 정신을 놓치지 말라”는 당부에서 그의 굳은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이날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10)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김 목사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 꽃 핀 일본선교에 대해 언급했다.
◈목숨을 걸고 주님을 바라보라=1998년 10월 18일은 요한 동경교회가 10주년 예배를 드린 그 다음 주일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설교준비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나선 김 목사는 엘리베이터 작동이 평소와 조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은퇴자들이 살고 있던 서민아파트라 오전에는 사용자가 거의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후 내려온 엘리베이터에서 문이 열리자 그를 맞이한 것은 몽둥이와 칼이었다.
요한교회가 찬양 전도집회를 개최하면서 일본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받기 시작하자, 일본의 극좌파 가운데 하나인 혁명노선협의회가 김규동 목사를 살해할 계획을 실행한 것이다.
상처를 입은 김 목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피 웅덩이에서 그를 발견했다고 할 정도로 그는 극심한 매질을 당했다. 머리는 일반인의 두 배로 부어있었고 양 다리와 양 팔, 얼굴의 광대뼈가 부서졌고, 오른팔에는 큰 칼이 꽂혔다. 극좌파는 이것도 모자라 도끼로 김 목사의 아킬레스건 절단을 시도했다.
북한과 연결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일본을 혼란스럽게 했던 극좌파 테러범들은 “사탄이 하나님을 쓰러뜨렸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자축 파티를 벌였다.
▲열방을 품는 기도성회는 참석자들이 본당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김브라언 기자 |
◈저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몰라서 그래..=일본 안기부는 의식을 갖고 깨어난 김규동 목사에게 그들을 일본법에 따라 극형에 처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봤기 때문이다.
테러단은 의식을 되찾은 김 목사에게 두번째 테러를 감행하려고 했다. 김 목사는 예수님을 따라 가슴으로 그들을 품었다. 이 사건은 일본인들에게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찔리면 찔리고, 때리면 맞는 연약한 모습이지만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강한 능력과 사랑에 일본인들이 마음을 열었다.
자신들을 용서한 김 목사로부터 충격을 받은 테러범들 사이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나무막대기 하나 들지 않은 교회 성도들을 보면 겁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본의 거대 금융이 된 한 은행가는 그 사건에 감동을 받고 원하는 융자와 자율적 상환기간으로 교회 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체 건물 없이 4개 교회를 개척했던 요한교회가 현재 27개 건물에 36개 교회를 개척하는 밑바탕을 마련해줬다.
김 목사는 “기독교는 피 흘림의 종교”라며 “용서하고 용납하는 마음에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복음의 능력을 삶으로 보이라”며 “한인 교회가 미국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라”고 주문했다.
끝으로 그는 “선교는 한강물에 돌을 던지는 것이다. 계산하면 안 된다. 10년 했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20년 30년 계속하는 것이다. 내 때에 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하는 것이다”면서 “아무것도 없다고 헛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다. 반드시 씨앗이 살아남게 되어있다”고 선교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