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목사회 10월 모임 특강 강사로 나선 김필주 박사는 자신의 목화 농장을 예로 북한 실정을 설명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자급자족하는데 필요한 공장설립에 관심과 기도를 당부했다.
김필주 박사(73)는 서울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코넬대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미국의 대표적인 종자회사에서 근무하다 1989년부터 지난 22년간 북한서 농업성과 농업과학원에서 옥수수 재배, 이모작 도입 프로젝트 등에 주력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는 황해북도에 세 곳, 황해남도에 두 곳 등, 총 다섯 개 농장에서 목화를 비롯해 각종농사를 지으면서 북한이 자급자족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강연에 앞서 그는 할 수 있는 만큼 북한 사회가 자급자족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 밝히고 “북한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많지만, 북한은 우리 동족이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을 도와야 함을 역설했다.
◈‘우리는 목화를 재배할 수 없나’=옥수수와 같은 식량 재배에만 관심을 갖던 북한은 2004년 그에게 목화 재배를 제안했다. 북한에서는 한국전쟁 후 목화가 소멸되어 2002년까지 중국에서 솜을 들여왔다. 중국은 당시 1톤에 1060달러에 팔던 솜을 2002년부터 2500달러까지 올렸었다. 북한 정부 내에서는 ‘우리는 목화를 재배할 수 없나’라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그 때 거론 된 인물이 김필주 박사다.
“지리적으로나 기후적으로 북한에서는 목화 재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하던 솜 가격이 계속 오르니까 북한에서도 대책을 세우기 위해 저한테 건의를 했던 것입니다.”
김 박사는 북한에 맞는 품종을 찾기 위해 중국 사방을 돌아다녔고, 황해북도 봉산군, 황해남도 산천군 등 땅 규모가 총 900만평에 이르는 5개의 농장으로 성장했다. 솜 수확량은 연간 3톤 정도이다.
김 박사는 “지난 8년간 4개 농장을 맡아하다가 금년에 농장 하나를 더 줘서 5개를 맡고 있다”며 “땅이 천 만평이고 1만 7천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 박사는 여전히 1년에 10회 이상 북한을 드나들며 북한의 농사일을 돌보고 있다. 그는 남북관계가 긴장 속에 있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식량과 비료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이 식량 부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김 박사는 북한의 농업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북한이 농업에 허덕이는 이유가운데 첫 번째는 토질이다. 선진국은 요소 비료와 유기질 비료를 사용하는데 반해, 북한은 산성 화학 비료를 그동안 사용해왔다.
북한 땅은 산성화 되어 지렁이와 같은 미생물이 땅에 살 수 없다. 밭에서 나온 식물의 부산물들을 다시 땅에 집어넣어 미생물이 서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부족한 식량 사정에 다시 집어넣을 부산물도 없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북한에서도 유기질 비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군, 정부, 당 차원에서 유기질 비료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홍수다. 북한은 1995년 고난의 행군당시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경사 30도까지 밭을 일궜다. 정부에서도 식량 부족으로 인해 밭을 경작하는 것을 눈감아줬고, 민둥산이 된 밭으로 더 많은 홍수가 발생했다. 발생한 홍수로 인해 이미 제대로 식량을 생산하는 밭까지 못쓰게 됐다.
1998년 부터는 15도 이하의 경사지에만 밭을 만들도록 허용됐고 그 이상 경사지에는 나무를 심으라는 당의 지령이 내려왔다. 김 박사는 "바닷가에 간석지를 많이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으며 말 할 수 없이 높은 지역에 밭이 형성된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북한의 자급자족을 위해 토양의 재생, 농기계와 기자재 지원, 농산물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저장 창고 건축 등이 필요하다고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북쪽 사람들을 껴안는 사업가들이 있었음을 좋겠다. 그동안 북쪽에 나쁜 것만 이야기 했는데, 앞으로는 그 사람들을 껴안는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며 “평화 공존과 나아가서는 통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 전 지구촌이 함께 사는 곳으로 바뀌어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필주 박사(73)는 서울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코넬대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미국의 대표적인 종자회사에서 근무하다 1989년부터 지난 22년간 북한서 농업성과 농업과학원에서 옥수수 재배, 이모작 도입 프로젝트 등에 주력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는 황해북도에 세 곳, 황해남도에 두 곳 등, 총 다섯 개 농장에서 목화를 비롯해 각종농사를 지으면서 북한이 자급자족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강연에 앞서 그는 할 수 있는 만큼 북한 사회가 자급자족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 밝히고 “북한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많지만, 북한은 우리 동족이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을 도와야 함을 역설했다.
◈‘우리는 목화를 재배할 수 없나’=옥수수와 같은 식량 재배에만 관심을 갖던 북한은 2004년 그에게 목화 재배를 제안했다. 북한에서는 한국전쟁 후 목화가 소멸되어 2002년까지 중국에서 솜을 들여왔다. 중국은 당시 1톤에 1060달러에 팔던 솜을 2002년부터 2500달러까지 올렸었다. 북한 정부 내에서는 ‘우리는 목화를 재배할 수 없나’라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그 때 거론 된 인물이 김필주 박사다.
“지리적으로나 기후적으로 북한에서는 목화 재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하던 솜 가격이 계속 오르니까 북한에서도 대책을 세우기 위해 저한테 건의를 했던 것입니다.”
김 박사는 북한에 맞는 품종을 찾기 위해 중국 사방을 돌아다녔고, 황해북도 봉산군, 황해남도 산천군 등 땅 규모가 총 900만평에 이르는 5개의 농장으로 성장했다. 솜 수확량은 연간 3톤 정도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천동리의 설경이라고 말한 목화밭을 설명하는 김필주 박사ⓒ김브라이언기자 |
김 박사는 “지난 8년간 4개 농장을 맡아하다가 금년에 농장 하나를 더 줘서 5개를 맡고 있다”며 “땅이 천 만평이고 1만 7천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 박사는 여전히 1년에 10회 이상 북한을 드나들며 북한의 농사일을 돌보고 있다. 그는 남북관계가 긴장 속에 있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식량과 비료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한이 식량 부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김 박사는 북한의 농업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북한이 농업에 허덕이는 이유가운데 첫 번째는 토질이다. 선진국은 요소 비료와 유기질 비료를 사용하는데 반해, 북한은 산성 화학 비료를 그동안 사용해왔다.
북한 땅은 산성화 되어 지렁이와 같은 미생물이 땅에 살 수 없다. 밭에서 나온 식물의 부산물들을 다시 땅에 집어넣어 미생물이 서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부족한 식량 사정에 다시 집어넣을 부산물도 없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북한에서도 유기질 비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군, 정부, 당 차원에서 유기질 비료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 박사는 강연 가운데 남북나눔(대표 홍정길 목사)이 지어준 400채의 집도 공개했다. 평양 관리들은 새 집을 보고 천지개벽했다고 감탄했다ⓒ김브라이언기자 |
또 한 가지 이유는 홍수다. 북한은 1995년 고난의 행군당시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경사 30도까지 밭을 일궜다. 정부에서도 식량 부족으로 인해 밭을 경작하는 것을 눈감아줬고, 민둥산이 된 밭으로 더 많은 홍수가 발생했다. 발생한 홍수로 인해 이미 제대로 식량을 생산하는 밭까지 못쓰게 됐다.
1998년 부터는 15도 이하의 경사지에만 밭을 만들도록 허용됐고 그 이상 경사지에는 나무를 심으라는 당의 지령이 내려왔다. 김 박사는 "바닷가에 간석지를 많이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으며 말 할 수 없이 높은 지역에 밭이 형성된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북한의 자급자족을 위해 토양의 재생, 농기계와 기자재 지원, 농산물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저장 창고 건축 등이 필요하다고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북쪽 사람들을 껴안는 사업가들이 있었음을 좋겠다. 그동안 북쪽에 나쁜 것만 이야기 했는데, 앞으로는 그 사람들을 껴안는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며 “평화 공존과 나아가서는 통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 전 지구촌이 함께 사는 곳으로 바뀌어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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