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완연한 봄입니다. 지난 주 초만 해도 쌀쌀한 날씨로 인해 날짜로는 봄이어도 봄처럼 느끼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봄입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햇살의 따스함이 담겨 있고, 그 때문인지 나무들에는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우리 교회 주변에도 봄이 되면 제일 먼저 피는 수선화는 이미 만개해 버렸고, 봄날의 화사함을 더해주는 샛노란 개나리는 작년말 초겨울에 이상 기온으로 인해 철도 모르고 폈던 탓인지 그 고운 자태를 한껏 뽐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피었습니다. 웬만한 골목길이면 큰 꽃잎을 자랑하는 목련이 핀 모습을 보기가 어렵지 않고, 언제부턴가 워싱톤의 봄 상징으로 자리매김을 단단히 한 벚꽃도 여기저기서 활짝 피어 보는 이의 마음까지 환하게 해줍니다.

워싱톤에 사는 즐거움을 꼽으라면 바로 봄날에 활짝 피어나는 갖가지 꽃들을 보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우아한 자태의 덕우드(Dogwood)가 피고, 겹사구라(Double Cherry Blossom)와 아카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철쭉 같은 청소한 느낌은 좀 덜하지만 형형색색 화려하기로는 그 어느 꽃보다 더한 아잘리아(Azalea)까지 피노라면 우리 동네는 말 그대로 꽃동네가 됩니다. 물론 이렇게 많은 꽃 때문에 꽃가루 앨러지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무리 앨러지가 심해도 그것 때문에 아름다운 꽃을 보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운 워싱톤의 봄날입니다. 더구나 이런 꽃들을 구경하기 위해 굳이 어디를 찾아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늘상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거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삶의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봄날에 피는 꽃은 우리에게 이런 아름다움을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들이 어떤 나무인지를 알게도 해 줍니다. 나무는 꽃이 피기 전까지 모양새로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나무 모양이 비슷해서 저같이 식물에 대해 문외한인 경우에는 그 나무가 그 나무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봄이 되어 나무마다 꽃이 피게 되면 피어난 꽃을 통해 그 나무들이 어떤 나무인줄을 알고, 나무마다 제각기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 게 됩니다. 또한 봄이 되어 나무마다 피어나는 꽃들은 메마른 나무에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 하고 그래서 그 꽃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게도 합니다.

봄은 이와 같은 새로움과 생명을 경험하는 절기라서인지 사람들마다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단연 사계절중 제일 좋아할 뿐만 아니라, 봄이 오기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며, 그만큼 봄의 마음을 노래하고 싶어 하고, 봄의 색을 그려내고 싶어 하고, 봄의 기운을 호흡하고 싶어 하지 않나 봅니다. 더구나 추운 겨울을 오랫동안 지낼수록 봄을 더 그리워하고 또 기다리는 마음도 더 하고 그렇게 기다리고 그리워하다가 맞이하는 봄의 향기는 더 향긋하고 봄의 색은 더 영롱하다고 합니다.

물론 모두가 다 봄을 그렇게 그리워하고, 그래서 봄을 기다리다가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는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성큼 봄이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을 알고 새삼 놀라기도 합니다. 사는데 바쁘거나 다른 일들로 인해 시간의 흐름을 가늠조차 할 겨를이 없이 바쁘게 지나다보면 그렇게 봄이 오는 것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기는커녕 이미 온 봄을 느끼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이는 봄이 오기를 그리워하며 기다렸다가 맞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봄이 왔음을 뒤늦게야 알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봄은 우리가 기다린다고 해서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언제 왔는지 모른다 해서 늦게 오는 것도 아닙니다. 해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한 때가 되면 봄은 여지없이 옵니다. 우리가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고, 우리가 오는 것을 몰라도 봄은 옵니다. 물론 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다가 맞이하면 그 봄이 더 정겹고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반면에 기다리는 마음만큼 빨리 오지 않고 더디 오는 것 같아 조급해지기도 쉽습니다. 그런가 하면 봄이 오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봄이 온 것을 깨닫게 되면 그 반가움이 크기도 하지만, 그 반면에 봄이 오는 과정을 통해 느낄수 있는 살아나는 생명의 기운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시간도 봄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때는 새로운 시간이 오기를 그리워하며 간절히 기다리다가 맞이하기에 새로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는 감격에 휩싸이는가 하면, 때론 시간이 언제 주어졌는지 조차 알지 못하다가 시간이 이미 지나가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도 사실 우리가 기다린다 해서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오는 것을 모른다 해서 늦게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움으로 기다려온 봄이든지, 아니면 오는지 조차 알지 못하던 봄이든지, 정한 때가 되어 온 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삶의 시간도 우리가 알던 모르던 하나님께서 정한 때에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글 이승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