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이종성 박사가 초대교회 400년 동안 끊임없이 전개되었던 논쟁에 대해 정리한「삼위일체론을 중심한 신학과 철학의 알력사」(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를 출판했다.이종성 박사는 저서에서 "최근에 한국교회 안에 유일신론과 삼신론이 혼용되고 있음을 발견한다"며 "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기독교의 신관은 유일신론이라고 하는가 하면, 성령을 야훼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능력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저자 이종성 박사를 만나 '삼위일체론'에 관한 한국교회의 인식과 개선점을 들었다.
-저서에서 기독교가 유일신론이 아니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은 '기독교는 삼위일체론을 믿는다'고 여기기보단 기독교는 유일신론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때론 서적과 교과서에서 기독교가 유일신론이라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기독교가 왜 유일신론이 아닌 삼위일체론으로 말해야 되는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우리가 보통 말하기를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라고 한다. 그러나 보통 일반적으로 목사들이 그렇게 말하면 통하지만 신학자가 말할 때는 기독교는 유일신론이 아닌 삼위일체론이라고 말해야 한다. 유일신론은 유대교에서 말한 야훼의 하나님이며, 유대교는 예수님을 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슬람교 또한 예수님은 신이 아닌 선지자라고 말한다. 그러한 까닭에 진짜 유일신을 주장하는 종교는 유대교와 이슬람이다.
기독교는 유일신론이 아니다. 삼위일체론이라 말해야 올바르게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성령도 하나님으로 믿는다. 하나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이다. 또한 세 분은 세 신이 아닌, 세 위의 하나님이다. 합하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다. 이것이 정확한 설명이다. 기독교는 삼위일체론을 믿는 신앙이라고 말해야 옳다.
-삼위일체론은 교리사적으로 초대교회 때부터 논쟁이 많았던 교리였지만,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이 때론 삼위일체론에 대해 혼돈하곤 한다. 인터뷰를 통해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에 대해 정의해달라.
초대교회와 사도들은 전혀 삼위일체론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말이 있는지도 몰랐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바울도 삼위일체론에 대한 말을 쓰지 않았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과 동등한 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옛날부터 계시면서 사람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을 과시한 분이라고 말했다. 삼위일체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삼위일체란 용어는 2세기 이후 교부시대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다가 부활했기 때문에 보통의 인간이 아니며, 하나님과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성령은 예수님이 나시기 전부터 역사하고 계셨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삼위일체를 이야기한 교부는 터툴리안이다. 터툴리안 교부의 때가 되서야 처음으로 성부의 하나님, 성자의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게 됐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3세기, 4세기까지 본격적으로 논쟁이 계속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일체로 계시는 하나님과 셋으로 계시는 하나님, '본성에 있어 어떠한 것인가' '하나님의 아버지의 신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성령의 신성은 어떻게 다른가' '또한 어떤 면에서 같은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2, 3세기에 여러가지 종류의 신론이 나온다. 군주신론(모나르키아니즘), 양태론적 신론 등이 이런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신론들이 나오다가 5세기가 되서야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론에 대해 정리했다. 야훼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이다. 또한 이 세 하나님은 세 하나님으로 계신 것이 아니라 일체의 하나님으로 계신다고 정의했다.
이것을 결정적으로 정리해준 신조가 아타나슈스 신조다. 현재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론이 거의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이 신조는 총44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25-28조가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삼위일체 세 분은 시간적으로 선후가 없고 능력적으로 강약이 없다(25조), 세 분은 함께 영원적이고 동등하며(26조), 삼위일체적으로 하나이시고, 삼위일체적으로 셋으로 계신다(27조). 이렇게 삼위일체 신을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28조). 이러한 내용으로 고백된 신조가 바로 아타나슈스신조이다.
이 신조는 로마천주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 중요시 하고 있다. 사실 이 신조가 발표되고 교회에서 사용된 후 삼위일체론은 종교개혁 때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에 있어서도 모든 정통적 교리와 신앙을 따르는 신자들은 이 신조를 중요시한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삼위일체론에 관한 논쟁 중 소개해주고 싶은 논쟁사가 있다면.
종교개혁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 칼빈과 세르베투스의 논쟁사를 소개하고 싶다. 칼빈이 파리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1530) 어떤 사람이 삼위일체론을 심하게 비판한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편지하여 그 문제에 관하여 토론하기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칼빈은 그렇게 하자는 답변과 함께 특정 장소를 제시했는데,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상대방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한편 세르베투스가 파리에서 삼위일체론 교리를 반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로마 천주교회는 루터와 같은 또 다른 반가톨릭 교회 운동이 전개되는 줄 알고 세르베투스 체포령을 내렸다. 이에 세르베투스는 야간에 파리를 탈출하여 비엔나로 갔다. 거기서도 세르베투스는 익명으로 일하면서 삼위일체론을 반대했다.
비엔나 시정부는 그 사실을 알고 또 다시 그에게 체포령을 내렸으나, 세르베투스는 이번에도 야간도주하여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향했다. 나폴리로 가는 도중 세르베투스는 당시 개혁도시로 유명한 제네바를 구경할 생각이 있어 거기로 갔다가 칼빈이 거기서 개혁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르베투스는 일요일에 칼빈이 있는 상피에르 성당에 참석했다.
칼빈은 세르베투스의 얼굴을 몰랐기 때문에 그가 참석한 것을 몰랐지만 세르베투스가 참석한 것을 시의회의원 중 안 사람이 있어 그를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 그 후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에서 체포되어 교리 문제로 재판을 받게 됐다.
칼빈은 세르베투스에게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옥을 찾아가 타협안을 제시했다. 기도할 때 영원이라는 형용사의 위치를 아버지라는 명사 앞에 부치지 말고 아들이라는 말 앞에 부치라는 것이었다. 즉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대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 예수여'라고 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르베투스는 그 타협안을 거절하고 사형에 처하게 됐다.
-저서에서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에 대해 현대의 다른 신학자들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했다. 또한 바르트가 구속론적으로 삼위일체론을 신학의 전제(Prolegomena)로 삼음으로 칼뱅이래 가장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을 주장했다고 평가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개혁교회, 장로교회가 중요시하는 신조로 <제 2 스위스신조>, <벨기에 신조>, <스코틀랜드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있다. 현재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신앙의 표준이 되어 있다. 이 4가지 신조는 삼위일체를 강조한다.
바르트는 <웨스트민스터 신조>와 <스코틀랜드 신조>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대신 블링거의 <제 2 스위스신조>를 아주 중요시 한다.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거의 같은 것이다. 바르트 입장에서 볼 때 영국의 장로교단을 중심으로 제정한 <웨스트민스터 신조>와 <스코틀랜드 신조>는 앵글리칸인이 만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중요하지만 유럽 대륙에 있는 교회와는 관계가 없다. 바르트는 자연적으로 신학을 제2 스위스 신조를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철저한 삼위일체론 주창자다. 그의 초기의 작품인 크레도(Credo)에 그것이 나타난다.
-최근 삼위일체론 중 성령을 강조하는 성령집회들이 많이 열리고 있으며 또한 신학에서는 영성신학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부흥집회에서 무자격 목사들이 성령의 영상만 지나치게 부각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와함께 이론적 탐구와 영성적 실천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한 달전에 한국기독교학술원 주최로 '한국 교회의 영성신학 이대로 좋은가'란 공개강연회를 개최했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영성신학에 관한 두 가지의 입장이 있다. 하나는 교리교육을 중요시하고 있는 기장, 예장통합, 예장합동 측의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성령의 기적적 은사만을 강조한다.
한? 뮌?많은 부흥하는 교회 목사들을 살펴보면 성령의 은사를 많이 강조하고 자신이 성령의 감동과 영감을 받아 설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가 정말 성령의 역사에 의해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이름을 빌어 자기의 신적 권위를 과시한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목사들이 신비주의 이단으로 흘러간 경우가 많이 있다.
영성신학도 좋은 점이 있지만 매우 위험한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 자신을 신성화하고 자신이 마치 성령의 도구처럼, 자기가 하는 모든 말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면을 지적하고자 지난 달 그러한 공개강연회를 개최했다.
-지금은 슐라이허마허를 시작으로 발전한 자유주의 신학과 철저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정통주의 신학과 또한 신죽음의 신학, 해방신학, 과정신학 등 많은 신자유주신학이 흘러나와 21세기의 벽두에 서 있다. 앞으로의 신학이 과연 어디로 흘러 갈 것인지가. 또 한국 신학이 가야할 방향은 어디로 생각하는지.
일평생 기독교 신학을 했는데 알고보니 전부 유럽 신학이었다. 즉, 백인신학이었다. 이 신학은 백인들을 향한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흑인은 어떻게 됐느냐. 황인종은 어떻게 됐느냐. 유럽의 신학자들은 황인종과 흑인을 고려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백인만 생각했다. 하나님과 백인, 이 양자의 관계속에서 어디에 서 있었는가란 질문이 생겼다.
유럽신학은 다른 문화를 경시하고 유럽 문화를 중시하는 신학이다. 내가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의 신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다. 전 우주만물을 지배하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데, 유럽신학은 백인들만을 위주로 한 신학이다. 하나님을 통솔하게 만든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은 아니다. 그는 인류 전체, 우주 전체를 지배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의 메세지가 전 우주를 상대로 한 메세지다. 이 점을 강조한 신학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통전적 신학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봐야 한다. 앞으로 기독교의 메세지는 모든 인류, 모든 민족을 위한 메시지이어야 한다. 이 신학은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모든 인류의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예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삶을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길러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을 강조하는 삼위일체론적 신학이어야 한다.
이종성 원장
호는 춘계(春溪). 1951년 일본 도쿄신학대학을 거쳐 미국의 풀러신학대학과 루이스빌 신학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196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에서 철학박사, 1985년 일본 도쿄 신학대학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연구한 바 있다. 1957년 영락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했고 1959년 연세대학교 교수, 1966~88년 장로교신학대학교수, 1971~83년 장로회신학대 학장, 1977년 동북아시아 신학교협의회 회장, 198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장 등을 지내면서 한국 신학계의 발전과 장로회신학대학의 국제화를 이룩하는데 기여했다.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으며 현재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이다.
-저서에서 기독교가 유일신론이 아니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은 '기독교는 삼위일체론을 믿는다'고 여기기보단 기독교는 유일신론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때론 서적과 교과서에서 기독교가 유일신론이라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기독교가 왜 유일신론이 아닌 삼위일체론으로 말해야 되는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종성 박사는 삼위일체론과 관련, "진짜 유일신을 주장하는 종교는 유대교와 이슬람이며 기독교는 삼위일체론이라 말해야 올바른 것"이라고 밝혔다. ⓒ 김근혜 기자 |
기독교는 유일신론이 아니다. 삼위일체론이라 말해야 올바르게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성령도 하나님으로 믿는다. 하나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이다. 또한 세 분은 세 신이 아닌, 세 위의 하나님이다. 합하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다. 이것이 정확한 설명이다. 기독교는 삼위일체론을 믿는 신앙이라고 말해야 옳다.
-삼위일체론은 교리사적으로 초대교회 때부터 논쟁이 많았던 교리였지만,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이 때론 삼위일체론에 대해 혼돈하곤 한다. 인터뷰를 통해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에 대해 정의해달라.
초대교회와 사도들은 전혀 삼위일체론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말이 있는지도 몰랐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바울도 삼위일체론에 대한 말을 쓰지 않았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과 동등한 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옛날부터 계시면서 사람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을 과시한 분이라고 말했다. 삼위일체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삼위일체란 용어는 2세기 이후 교부시대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다가 부활했기 때문에 보통의 인간이 아니며, 하나님과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성령은 예수님이 나시기 전부터 역사하고 계셨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삼위일체를 이야기한 교부는 터툴리안이다. 터툴리안 교부의 때가 되서야 처음으로 성부의 하나님, 성자의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이란 말이 나오게 됐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3세기, 4세기까지 본격적으로 논쟁이 계속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일체로 계시는 하나님과 셋으로 계시는 하나님, '본성에 있어 어떠한 것인가' '하나님의 아버지의 신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성령의 신성은 어떻게 다른가' '또한 어떤 면에서 같은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2, 3세기에 여러가지 종류의 신론이 나온다. 군주신론(모나르키아니즘), 양태론적 신론 등이 이런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신론들이 나오다가 5세기가 되서야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론에 대해 정리했다. 야훼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하나님, 성령의 하나님이다. 또한 이 세 하나님은 세 하나님으로 계신 것이 아니라 일체의 하나님으로 계신다고 정의했다.
이것을 결정적으로 정리해준 신조가 아타나슈스 신조다. 현재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론이 거의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이 신조는 총44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25-28조가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삼위일체 세 분은 시간적으로 선후가 없고 능력적으로 강약이 없다(25조), 세 분은 함께 영원적이고 동등하며(26조), 삼위일체적으로 하나이시고, 삼위일체적으로 셋으로 계신다(27조). 이렇게 삼위일체 신을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28조). 이러한 내용으로 고백된 신조가 바로 아타나슈스신조이다.
이 신조는 로마천주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 중요시 하고 있다. 사실 이 신조가 발표되고 교회에서 사용된 후 삼위일체론은 종교개혁 때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에 있어서도 모든 정통적 교리와 신앙을 따르는 신자들은 이 신조를 중요시한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삼위일체론에 관한 논쟁 중 소개해주고 싶은 논쟁사가 있다면.
종교개혁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 칼빈과 세르베투스의 논쟁사를 소개하고 싶다. 칼빈이 파리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1530) 어떤 사람이 삼위일체론을 심하게 비판한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편지하여 그 문제에 관하여 토론하기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칼빈은 그렇게 하자는 답변과 함께 특정 장소를 제시했는데,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상대방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한편 세르베투스가 파리에서 삼위일체론 교리를 반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로마 천주교회는 루터와 같은 또 다른 반가톨릭 교회 운동이 전개되는 줄 알고 세르베투스 체포령을 내렸다. 이에 세르베투스는 야간에 파리를 탈출하여 비엔나로 갔다. 거기서도 세르베투스는 익명으로 일하면서 삼위일체론을 반대했다.
비엔나 시정부는 그 사실을 알고 또 다시 그에게 체포령을 내렸으나, 세르베투스는 이번에도 야간도주하여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향했다. 나폴리로 가는 도중 세르베투스는 당시 개혁도시로 유명한 제네바를 구경할 생각이 있어 거기로 갔다가 칼빈이 거기서 개혁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르베투스는 일요일에 칼빈이 있는 상피에르 성당에 참석했다.
칼빈은 세르베투스의 얼굴을 몰랐기 때문에 그가 참석한 것을 몰랐지만 세르베투스가 참석한 것을 시의회의원 중 안 사람이 있어 그를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 그 후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에서 체포되어 교리 문제로 재판을 받게 됐다.
칼빈은 세르베투스에게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옥을 찾아가 타협안을 제시했다. 기도할 때 영원이라는 형용사의 위치를 아버지라는 명사 앞에 부치지 말고 아들이라는 말 앞에 부치라는 것이었다. 즉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대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 예수여'라고 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르베투스는 그 타협안을 거절하고 사형에 처하게 됐다.
-저서에서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에 대해 현대의 다른 신학자들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했다. 또한 바르트가 구속론적으로 삼위일체론을 신학의 전제(Prolegomena)로 삼음으로 칼뱅이래 가장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을 주장했다고 평가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개혁교회, 장로교회가 중요시하는 신조로 <제 2 스위스신조>, <벨기에 신조>, <스코틀랜드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있다. 현재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신앙의 표준이 되어 있다. 이 4가지 신조는 삼위일체를 강조한다.
바르트는 <웨스트민스터 신조>와 <스코틀랜드 신조>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대신 블링거의 <제 2 스위스신조>를 아주 중요시 한다.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거의 같은 것이다. 바르트 입장에서 볼 때 영국의 장로교단을 중심으로 제정한 <웨스트민스터 신조>와 <스코틀랜드 신조>는 앵글리칸인이 만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중요하지만 유럽 대륙에 있는 교회와는 관계가 없다. 바르트는 자연적으로 신학을 제2 스위스 신조를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철저한 삼위일체론 주창자다. 그의 초기의 작품인 크레도(Credo)에 그것이 나타난다.
▲이종성 박사는 한국교회 신학의 방향에 대해 백인중심의 유럽신학에서 벗어나 전인류와 민족을 중심으로한 통전적 신학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근혜 기자 |
-최근 삼위일체론 중 성령을 강조하는 성령집회들이 많이 열리고 있으며 또한 신학에서는 영성신학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부흥집회에서 무자격 목사들이 성령의 영상만 지나치게 부각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와함께 이론적 탐구와 영성적 실천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한 달전에 한국기독교학술원 주최로 '한국 교회의 영성신학 이대로 좋은가'란 공개강연회를 개최했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영성신학에 관한 두 가지의 입장이 있다. 하나는 교리교육을 중요시하고 있는 기장, 예장통합, 예장합동 측의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성령의 기적적 은사만을 강조한다.
한? 뮌?많은 부흥하는 교회 목사들을 살펴보면 성령의 은사를 많이 강조하고 자신이 성령의 감동과 영감을 받아 설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가 정말 성령의 역사에 의해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이름을 빌어 자기의 신적 권위를 과시한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목사들이 신비주의 이단으로 흘러간 경우가 많이 있다.
영성신학도 좋은 점이 있지만 매우 위험한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 자신을 신성화하고 자신이 마치 성령의 도구처럼, 자기가 하는 모든 말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면을 지적하고자 지난 달 그러한 공개강연회를 개최했다.
-지금은 슐라이허마허를 시작으로 발전한 자유주의 신학과 철저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정통주의 신학과 또한 신죽음의 신학, 해방신학, 과정신학 등 많은 신자유주신학이 흘러나와 21세기의 벽두에 서 있다. 앞으로의 신학이 과연 어디로 흘러 갈 것인지가. 또 한국 신학이 가야할 방향은 어디로 생각하는지.
일평생 기독교 신학을 했는데 알고보니 전부 유럽 신학이었다. 즉, 백인신학이었다. 이 신학은 백인들을 향한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흑인은 어떻게 됐느냐. 황인종은 어떻게 됐느냐. 유럽의 신학자들은 황인종과 흑인을 고려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백인만 생각했다. 하나님과 백인, 이 양자의 관계속에서 어디에 서 있었는가란 질문이 생겼다.
유럽신학은 다른 문화를 경시하고 유럽 문화를 중시하는 신학이다. 내가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의 신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다. 전 우주만물을 지배하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는데, 유럽신학은 백인들만을 위주로 한 신학이다. 하나님을 통솔하게 만든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은 아니다. 그는 인류 전체, 우주 전체를 지배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의 메세지가 전 우주를 상대로 한 메세지다. 이 점을 강조한 신학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통전적 신학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봐야 한다. 앞으로 기독교의 메세지는 모든 인류, 모든 민족을 위한 메시지이어야 한다. 이 신학은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모든 인류의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예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삶을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길러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을 강조하는 삼위일체론적 신학이어야 한다.
이종성 원장
호는 춘계(春溪). 1951년 일본 도쿄신학대학을 거쳐 미국의 풀러신학대학과 루이스빌 신학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196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에서 철학박사, 1985년 일본 도쿄 신학대학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연구한 바 있다. 1957년 영락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했고 1959년 연세대학교 교수, 1966~88년 장로교신학대학교수, 1971~83년 장로회신학대 학장, 1977년 동북아시아 신학교협의회 회장, 198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장 등을 지내면서 한국 신학계의 발전과 장로회신학대학의 국제화를 이룩하는데 기여했다.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으며 현재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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