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마 제일침례교회 M52 사역의 일환으로 진행된 자선음악회에서 간증을 위해 강단에 오른 최윤미씨(33)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린 아이를 둔 밝고 건강한 30대 초반 엄마의 모습이었다. 어떤 간증을 전할지 귀를 기울였던 청중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누구보다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그녀에게 힘찬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녀는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2년이 지나갈 무렵 기다리던 아이를 갖게 됐다. 임신기간 중 주변 사람들이 ‘임산부가 맞느냐’고 물을 정도로 너무나 건강했으며, 기형아 검사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던 그녀는 자신이 장애 아이를 둔 엄마가 될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네 살 준영이는 당시 39주를 채우고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남들보단 한 뼘이나 더 큰 키와 장군같이 늠름한 손과 발을 가진 건강한 사내아이로 세상에 태어났다.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듯 모든 것이 평온한 가운데 갓 태어난 준영이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즈음, 뜻하지 않게 준영이는 출행 후 삼주가 지날 무렵 심한 고열을 했다. 그저 가벼운 감기쯤으로 생각하고 찾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의 상황은 부모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고, 준영이는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을 앓게 됐다. 예후가 좋지 않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응급실을 찾은 바로 다음날, 준영이는 몇 번의 무호흡과 함께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코마상태에 빠졌다.
“모든 것이 너무나 순식간에 갑자기 쓰나마 같이 밀려 온 터라, 그저 악몽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 악몽에서 깨어나라고 병원 비상구 복도에 앉아서 가슴에 멍이 들 만큼 제 주먹으로 가슴을 쳤습니다. 빨리 이 악몽에서 깨어나라고... 하지만 그 것은 저희 부부가 감당해야할 현실이었고, 그 현실은 정말 제가 감히 말씀드리지만, 생지옥이나 나름이 없었습니다.”
그 후 2개월이 넘는 병원 생활을 끝내고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전과는 다른 준영이었다. 뇌의 80퍼센트 이상의 손상으로 먹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으며, 빨지 못하는 준영이에게 우유 30밀리리터를 먹이는데 2-3시간은 기본이었다. 눈의 구조는 정상이지만 뇌에서 사물이나 사람을 인지하고 못해 눈을 떴으나 볼 수 없었고, 뇌신경계 형성이 되기도 전에 뇌가 대부분 손상된 터라, 운동이나 인지 등 모든 방면에서 어려움을 가지게 됐다. 담당 교수는 “평생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만 지낼 거라”는 말도 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준영이와 최윤미 씨 부부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최 씨는 병실 화장실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면서 남편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존재하기는 하냐고? 왜 하필 나냐고? 내가 뭘 그렇게 나쁜 짓을 했다고, 나는 지금껏 그냥 평범하게 열심히 살았고, 세상엔 나보다 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나냐고? 왜 하필 나냐고?...” 절규하며 따져 물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남편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난 더 이상 믿지 않을 거라던 그녀는 미국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어려서 부터 주위의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이중적인 행동에 상처를 받았던 그녀는 군대 종교병과에서 근무하던 남편을 따라 형식적으로 교회에 출석했지만 구원의 확신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힘겨운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계속적으로 손짓을 보냈고 그녀는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구주로 모시게 됐다.
“비록 내가 믿지 않는 딸이었지만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엔 제가 있었으며, 하나님이 제게 주시지 않았지만 나에게 허락하신 그 고난과 시련 속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최윤미씨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움켜질수록 우리를 더욱더 옥죄게 하는 염려와 불안을 주님 앞에 내려놓았다. 새해가 되면 늘 첫 번째 기도 제목이 “우리 준영이 제발 목 좀 가누게 해주세요.” 이었지만 올해 새해 첫 기도 제목은 “하나님께 우리 준영이를 온전히 믿고 맡기는 내려놓음의 믿음을 허락케 해달라는 것”으로 바뀌었을 만큼 그녀의 바람과 소망도 달라졌다.
주님을 만나기 전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준영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하루에 몇 십번씩 한숨만 내쉬던 그녀는 이제 장애인의 천국인 미국 땅에 살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게 됐고, 그 가운데서도 건강한 둘째 현준이(2)를 키우면서 남들에겐 당연하게 생각 되는 작은 변화에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심에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저희부부에게 남들과 다른 작은 것에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안타깝고 힘든 인생의 여정으로 보일 수 있는 삶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저희 부부를 준영이로 인해 더욱더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사랑하게 만드셨습니다. 욥기 23장 10절 말씀을 보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광야의 삶을 살아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삶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윤미씨는 요즘 하루 24시간도 모자라 서너 시간 잠을 잘 시간도 없는 매일의 삶 가운데 간호사라는 비전을 품고 있다. 최씨는 “하나님은 제가 지치지 않고 오히려 그 시련을 즐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여 주셨고, 무엇보다 이런 제 삶 가운데 공부 할 수 있는 즐거움과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며 “우리 주위를 돌아보며 많은 환우들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낼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녀는 “저의 작은 간증으로 조금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으면 한다”고 당부하면서 어려울 때 신앙으로 든든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최용석, 최윤미씨 준영, 현준 가정 |
그녀는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2년이 지나갈 무렵 기다리던 아이를 갖게 됐다. 임신기간 중 주변 사람들이 ‘임산부가 맞느냐’고 물을 정도로 너무나 건강했으며, 기형아 검사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던 그녀는 자신이 장애 아이를 둔 엄마가 될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네 살 준영이는 당시 39주를 채우고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남들보단 한 뼘이나 더 큰 키와 장군같이 늠름한 손과 발을 가진 건강한 사내아이로 세상에 태어났다.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듯 모든 것이 평온한 가운데 갓 태어난 준영이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즈음, 뜻하지 않게 준영이는 출행 후 삼주가 지날 무렵 심한 고열을 했다. 그저 가벼운 감기쯤으로 생각하고 찾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의 상황은 부모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고, 준영이는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을 앓게 됐다. 예후가 좋지 않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응급실을 찾은 바로 다음날, 준영이는 몇 번의 무호흡과 함께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는 코마상태에 빠졌다.
“모든 것이 너무나 순식간에 갑자기 쓰나마 같이 밀려 온 터라, 그저 악몽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 악몽에서 깨어나라고 병원 비상구 복도에 앉아서 가슴에 멍이 들 만큼 제 주먹으로 가슴을 쳤습니다. 빨리 이 악몽에서 깨어나라고... 하지만 그 것은 저희 부부가 감당해야할 현실이었고, 그 현실은 정말 제가 감히 말씀드리지만, 생지옥이나 나름이 없었습니다.”
그 후 2개월이 넘는 병원 생활을 끝내고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전과는 다른 준영이었다. 뇌의 80퍼센트 이상의 손상으로 먹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으며, 빨지 못하는 준영이에게 우유 30밀리리터를 먹이는데 2-3시간은 기본이었다. 눈의 구조는 정상이지만 뇌에서 사물이나 사람을 인지하고 못해 눈을 떴으나 볼 수 없었고, 뇌신경계 형성이 되기도 전에 뇌가 대부분 손상된 터라, 운동이나 인지 등 모든 방면에서 어려움을 가지게 됐다. 담당 교수는 “평생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만 지낼 거라”는 말도 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준영이와 최윤미 씨 부부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최 씨는 병실 화장실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면서 남편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존재하기는 하냐고? 왜 하필 나냐고? 내가 뭘 그렇게 나쁜 짓을 했다고, 나는 지금껏 그냥 평범하게 열심히 살았고, 세상엔 나보다 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나냐고? 왜 하필 나냐고?...” 절규하며 따져 물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남편에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난 더 이상 믿지 않을 거라던 그녀는 미국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어려서 부터 주위의 기독교인들이 보이는 이중적인 행동에 상처를 받았던 그녀는 군대 종교병과에서 근무하던 남편을 따라 형식적으로 교회에 출석했지만 구원의 확신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힘겨운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계속적으로 손짓을 보냈고 그녀는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구주로 모시게 됐다.
“비록 내가 믿지 않는 딸이었지만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엔 제가 있었으며, 하나님이 제게 주시지 않았지만 나에게 허락하신 그 고난과 시련 속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최윤미씨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움켜질수록 우리를 더욱더 옥죄게 하는 염려와 불안을 주님 앞에 내려놓았다. 새해가 되면 늘 첫 번째 기도 제목이 “우리 준영이 제발 목 좀 가누게 해주세요.” 이었지만 올해 새해 첫 기도 제목은 “하나님께 우리 준영이를 온전히 믿고 맡기는 내려놓음의 믿음을 허락케 해달라는 것”으로 바뀌었을 만큼 그녀의 바람과 소망도 달라졌다.
주님을 만나기 전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준영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하루에 몇 십번씩 한숨만 내쉬던 그녀는 이제 장애인의 천국인 미국 땅에 살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게 됐고, 그 가운데서도 건강한 둘째 현준이(2)를 키우면서 남들에겐 당연하게 생각 되는 작은 변화에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심에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저희부부에게 남들과 다른 작은 것에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안타깝고 힘든 인생의 여정으로 보일 수 있는 삶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저희 부부를 준영이로 인해 더욱더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하며, 사랑하게 만드셨습니다. 욥기 23장 10절 말씀을 보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광야의 삶을 살아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삶을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윤미씨는 요즘 하루 24시간도 모자라 서너 시간 잠을 잘 시간도 없는 매일의 삶 가운데 간호사라는 비전을 품고 있다. 최씨는 “하나님은 제가 지치지 않고 오히려 그 시련을 즐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여 주셨고, 무엇보다 이런 제 삶 가운데 공부 할 수 있는 즐거움과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며 “우리 주위를 돌아보며 많은 환우들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낼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녀는 “저의 작은 간증으로 조금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으면 한다”고 당부하면서 어려울 때 신앙으로 든든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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