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20대 초반엔 잘나가는 미모의 일류 여대생으로 살았고, 30대 초반인 지금은 세상에 소금과 빛을 전해주는 ‘행복 전도사’ 겸 작가이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도 밝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큰 감동을 줬던 이지선(32) 씨다.
“누구나 각자 인생의 고통이 있고,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그러하셨듯, 여러분 마음 가운데도 동일하게 천국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10일 시온산중앙장로교회(박상규 목사)에서 열린 간증집회에서 만난 이지선 씨는 겸손하면서도 당찼다. 그는 2000년 7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졸업을 반 년 앞두고, 만취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얼굴을 포함한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그녀……. 다 타버린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잘라냈고 상처를 덮기 위해 이식한 피부들이 서로 당겨서 몸도 불편해졌다. 흉측한 몰골로 변신한 그녀는, 모든 걸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을 소망으로 이끌어냈고, 사고가 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어둠과 절망 가운데 힘들어하는 영혼들에게 행복 전도사로 각인되고 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지 벌써 7년이 지났다. 2004년 지인의 도움으로 어학 연수를 떠난 그는, 보스턴대학에서 재활상담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복지 석사학위를 취득, 현재 UCLA 사회복지 박사과정 1년을 마친 상태다. 그동안 펴냈던 <지선아 사랑해>와 <오늘도 행복합니다>의 개정합본판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에 이어 유학생활을 주제로 네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지난 1월엔 MBC 나눔 홍보대사로 위촉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음은 이지선 씨와의 일문일답.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올 땐 어떻게 하나.
“의지적으로 끊어내려고 노력한다. 우릴 무너뜨리려는 어두운 그림자는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 때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 제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세요’ 하고 기도한다. 또 한 가지 방법은 감사하는 것이다. 지금도 순간 순간 하나님이 주신 건에 대해 보이지 않아 낙심될 때가 있다. 하지만 감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달라진다.
처음엔 힘들면 주위 사람을 찾기도 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말씀해 주신다고 생각해서 엄마한테 달려가 기도해 달라고도 했고, 목사님들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나와 일대일의 깊은 관계를 맺어가길 원하고 계신다는 걸 알고 기도하려 노력하고 있다. 심플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 분을 경외하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힘들었을 때, 하나님이 내게 공부해야 할 이유를 주셨다.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라는 것이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 사람들 앞에서 전하고 있고, 이걸로 힘이 되고, 스스로도 새롭게 마음을 다짐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대해 (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뜻하신대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함이다.”
-간증집회서 ‘사고 후 얻게 된 보물’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그 보물이 뭔가.
“고난 자체가 보물이다. 이번에 개정합본판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를 내면서, 스스로 정리를 해 봤다. 그 인생의 비밀을 깨닫는 것 자체로도 보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의 보물은 ‘가족’이다. 가족이 소중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고를 겪으면서 이렇게까지 가족이 소중한지 미처 몰랐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엄마, 아빠, 교회 식구들도 하나같이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 주셨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도 내겐 ‘보물’이다. 그 ‘감사’라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생의 근본적인 것까지 다 포함된다.
고난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 같다. 고난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백이 더 진실해진 것 같다. 사고 전에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착각할 때도 많았다. 하나님을 가져다 이용하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내 힘으로는 하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고백을 간직하고 산다.
요즘 ‘생명의 삶’ 큐티 책자로 아침마다 신명기를 묵상하면서 ‘내가 정말 이스라엘 백성 같구나’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 속에서 왔다갔다 방황하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때 마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참으로 하나님만이 나의 주(主)이시며,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계심을 바라보게 된다.”
-현재 출석 교회는 어디인가.
“민종기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충현선교교회의 청년부 예배에 나가고 있다. 가끔 새생명비전교회(담임 강준민 목사)에 나가기도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 겨우 박사 1년차를 마쳤다. 돌이켜보면 정신없이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지난 1년간 외부 일도 많고 해서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는데, 계속해서 잘 버티고 공부가 ‘사명’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할 계획이다.”
“누구나 각자 인생의 고통이 있고,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그러하셨듯, 여러분 마음 가운데도 동일하게 천국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10일 시온산중앙장로교회(박상규 목사)에서 열린 간증집회에서 만난 이지선 씨는 겸손하면서도 당찼다. 그는 2000년 7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졸업을 반 년 앞두고, 만취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얼굴을 포함한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그녀……. 다 타버린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잘라냈고 상처를 덮기 위해 이식한 피부들이 서로 당겨서 몸도 불편해졌다. 흉측한 몰골로 변신한 그녀는, 모든 걸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을 소망으로 이끌어냈고, 사고가 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어둠과 절망 가운데 힘들어하는 영혼들에게 행복 전도사로 각인되고 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지 벌써 7년이 지났다. 2004년 지인의 도움으로 어학 연수를 떠난 그는, 보스턴대학에서 재활상담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복지 석사학위를 취득, 현재 UCLA 사회복지 박사과정 1년을 마친 상태다. 그동안 펴냈던 <지선아 사랑해>와 <오늘도 행복합니다>의 개정합본판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에 이어 유학생활을 주제로 네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지난 1월엔 MBC 나눔 홍보대사로 위촉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음은 이지선 씨와의 일문일답.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올 땐 어떻게 하나.
“의지적으로 끊어내려고 노력한다. 우릴 무너뜨리려는 어두운 그림자는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 때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 제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세요’ 하고 기도한다. 또 한 가지 방법은 감사하는 것이다. 지금도 순간 순간 하나님이 주신 건에 대해 보이지 않아 낙심될 때가 있다. 하지만 감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달라진다.
처음엔 힘들면 주위 사람을 찾기도 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말씀해 주신다고 생각해서 엄마한테 달려가 기도해 달라고도 했고, 목사님들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나와 일대일의 깊은 관계를 맺어가길 원하고 계신다는 걸 알고 기도하려 노력하고 있다. 심플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 분을 경외하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힘들었을 때, 하나님이 내게 공부해야 할 이유를 주셨다.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라는 것이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 사람들 앞에서 전하고 있고, 이걸로 힘이 되고, 스스로도 새롭게 마음을 다짐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대해 (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뜻하신대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함이다.”
-간증집회서 ‘사고 후 얻게 된 보물’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그 보물이 뭔가.
“고난 자체가 보물이다. 이번에 개정합본판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를 내면서, 스스로 정리를 해 봤다. 그 인생의 비밀을 깨닫는 것 자체로도 보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의 보물은 ‘가족’이다. 가족이 소중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고를 겪으면서 이렇게까지 가족이 소중한지 미처 몰랐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할 정도로……. 엄마, 아빠, 교회 식구들도 하나같이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 주셨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도 내겐 ‘보물’이다. 그 ‘감사’라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생의 근본적인 것까지 다 포함된다.
고난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 같다. 고난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백이 더 진실해진 것 같다. 사고 전에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착각할 때도 많았다. 하나님을 가져다 이용하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내 힘으로는 하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고백을 간직하고 산다.
요즘 ‘생명의 삶’ 큐티 책자로 아침마다 신명기를 묵상하면서 ‘내가 정말 이스라엘 백성 같구나’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 속에서 왔다갔다 방황하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때 마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참으로 하나님만이 나의 주(主)이시며,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계심을 바라보게 된다.”
-현재 출석 교회는 어디인가.
“민종기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충현선교교회의 청년부 예배에 나가고 있다. 가끔 새생명비전교회(담임 강준민 목사)에 나가기도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 겨우 박사 1년차를 마쳤다. 돌이켜보면 정신없이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지난 1년간 외부 일도 많고 해서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는데, 계속해서 잘 버티고 공부가 ‘사명’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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