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 한인학생회(KSA), 스탠포드 정치 동아리 SIG(Stanford in Government)가 공동으로 17일 스탠포드 대학 Tresidder Union, Oak Lounge에서 북한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스탠포드 한인학생회(KSA), 스탠포드 정치 동아리 SIG(Stanford in Government)가 공동으로 17일 스탠포드 대학 Tresidder Union, Oak Lounge에서 북한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가장 먼저 발제한 탈북자 출신의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한성주 대표는 "고향은 평양이며, 2000년에 탈북했고, 2004년도에 한국에 입국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왜 북한을 나왔는지 북한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한국에서 하는 일을 말하려고 한다"고 발제를 시작했다.

한성주 대표는 "평양은 북한의 수도로서 조금 윤택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런 내가 왜 탈북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아버지는 고위층이고 부러운게 없이 살았다. 나는 대학교에 다니다가 퇴학을 당했다. 아버지가 김정일이 한 일이 옳지 않다고 말했다는 죄목으로 공개 총살당했기 때문이다. 이후로, 가족은 모두 지방으로 추방당하게 됐고 큰 형은 국가로부터 강제 이혼당하고 정치범수용소로 가게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친구분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탈북하게 됐다. 탈북할 때 많은 것을 고민했다. 왜 아버지때문에 불행을 당해야 하는지, 왜 온 가족이 불행을 당해야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아버지는 자기 평생을 김정일을 위해 바친 분이었다. 큰 잘못도 아니었고 단지 말 한마디로 목숨을 잃은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다. 아버지도 원망을 했고 김정일을 가장 많이 원망했다. 북한이 싫었고 인권도 없고, 정권을 욕하는 죄만으로 사람을 죽인 이 나라가 싫어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북한은 3가지 계층이 있다. 김정일을 좋아하는 계층, 중간 계층, 좋아하지 않는 계층이 있다. 저희 집은 김정일을 좋아하는 계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3번째 계층이 됐고 그 사건 이후로 자살을 여러번 시도하기도 했고 인생을 더이상 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사람이 죽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스탠포드 한인학생회(KSA), 스탠포드 정치 동아리 SIG(Stanford in Government)가 공동으로 17일 스탠포드 대학 Tresidder Union, Oak Lounge에서 북한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탈북자들에 대한 고문 등 사진전시가 진행됐다.
그는 "중국으로 탈북했는데, 그시기가 북한에 식량난으로 수많은 사람이 탈북하던 시기였다. 탈북할때 지키던 사람에게 로비하고 탈북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는 중국에서 4년간 여러가지 일을 했던 것 같다. 4년을 보내면서 이렇게 살면 희망이 없겠구나 하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탈북할 때도 목숨걸고, 한국행을 결심할 때도 목숨걸어야 했다.

한정주 대표는 "북한을 탈북할때도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데, 한국행을 결심할때도 목숨을 건다"고 말했다. 중국 공안이 중국에 있는 많은 탈북자를 체포하면 북송시킨다. 북송되면 최악의 경우 총살당한다. 그는 "나는 중국 북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목숨을 걸고 진입했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진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마지막으로 "2003년도에 한국입국과 동시에 대학교에 들어갔고 지금의 탈북청년연합을 만들게 됐다. 한국사회와 대학사회에 북한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행사와 아카데미 교육사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만 목사, 북한 주민들도 사랑에 반응한다

김선만 목사는 현대아산 금강산 농장을 통해 농업기술을 북한에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 김 목사는 "처음에 북한 주민은 자기들과 전쟁했던 사람이라고 미워했다. 북한 어린이들이 돌을 던졌다. 농장에 있는 북한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에 그만두라는 연락이왔지만,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농장을 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굶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개월 일하면서 잘 운영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금강산으로 북한이 벌어들인 모든 돈은 평양 지도층으로 흘러가고 주민들에게는 실상 아무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금강산 근처 모든 주민들은 한국인들을 미워했다. 나는 금강산 관광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농장이 잘되야만 주민들이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모두가 반대하는 금강산 농장을 계속 유지했다. 그 일로 계속 괴로움을 당했다. 길거리에 있는 북한주민들이 죽는 것을 봐야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스탠포드 한인학생회(KSA), 스탠포드 정치 동아리 SIG(Stanford in Government)가 공동으로 17일 스탠포드 대학 Tresidder Union, Oak Lounge에서 북한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김지선 스탠포드 한인학생회장이 행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농장을 계속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기들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제가 하는 농사기술을 받아들이고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북한에서 가장 온실기술이 뛰어난 농장이 됐다"며 "북한 정부는 문제가 심각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사랑에는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Siegfried Hecker 교수(스탠포드 국제안보협력센터장, 핵 전문가)는 북한을 방문하면서 그동안 찍은 평양을 비롯한 북한 풍경 사진을 보여줬다.


이후, 각 발제자들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 Siegfried Hecker 교수로부터 수많은 북한 사진을 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한성주 대표)제가 살던 평양 모습 그대로다. 평양의 많은 사람들이 관광, 사업차 방문하고 있다. 말씀드렸듯이 평양은 특권층이 살던 지역이다. 만약, 그 평양이 북한의 실제 모습이라면 수십만명이 굶어죽지 않았을 것이다.

▲스탠포드 한인학생회(KSA), 스탠포드 정치 동아리 SIG(Stanford in Government)가 공동으로 17일 스탠포드 대학 Tresidder Union, Oak Lounge에서 북한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오면 북한을 통제하고 좋은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건물 뒤에 가면 수많은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인이 북한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면 북한을 얼마나 잘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외국인이 여행하는 경우에 북한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것을 철저히 통제한다. 북한 주민을 혹시 만날 일이 있다면 '인권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그들은 '인권이 무엇인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이 북한의 삶이다.

- 당신의 친구들은 김정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나.
(한성주 대표)북한은 강력한 세뇌교육이 있다. 탈북한지 10년이 지나는데 부모님 생일이 잘 기억나지 않아도, 김일성 김정일 생일은 자다가 깨어나도 생각난다. 자기를 위해 충성하게 만들고 자기를 위해 가족도 목숨도 버리게 만드는 것이 북한의 교육이다. 나도 배웠고 친구들도 배웠다. 더 이상 나쁜 것을 말할 수 없는 것은 배운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변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도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인가.

▲스탠포드 한인학생회(KSA), 스탠포드 정치 동아리 SIG(Stanford in Government)가 공동으로 17일 스탠포드 대학 Tresidder Union, Oak Lounge에서 북한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북한 정부에서 탈북자를 고문하는 사건을 표현한 삽화가 동시에 전시됐다.
(김선만 목사) 북한에 간지 일년 반 되면서, 몇 사람과 아주 친하게 됐을때 종교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그들과 아주 친했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북한에 종교가 있냐고 물어봤다. 그들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나는 북한이 밖으로 홍보하는 교회 외에 따로 예배드리는 곳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 말을 하자마자 사람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종교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기도하는 모습 보고 신앙이라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농장에서 위기를 당했을때,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보았다. 6,7년지난후에 농장 사람들에게 기도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들은 종교를 모르고 있었지만 신앙의 힘은 알고 있었다. 종교를 말할 수 없었지만 종교를 보여줄 수는 있었다. 그들은 목사라는 말 자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북한을 자유롭게 다녀갈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철저히 조심한다. 종교에 대해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 탈북자는 중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

▲스탠포드 한인학생회(KSA), 스탠포드 정치 동아리 SIG(Stanford in Government)가 공동으로 17일 스탠포드 대학 Tresidder Union, Oak Lounge에서 북한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북한 정부에서 탈북자를 고문하는 사건을 표현한 삽화가 동시에 전시됐다.
(한성주 대표)중국 탈북자는 3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나은 아이는 중국 국적이 아니며 이 애들까지 포함한 수이다. 탈북 여성들은 임신매매를 당하고 있고 남자들은 열심히 일하고도 탈북자란 이유로 돈도 못받고 중국공안에 다시 붙잡혀 북송되는 일이 상당히 많다. 북송되면 총살당하는 경우도 있다.

나라가 못먹여 살려서, 먹고 살려고 나온 사람을 죽이는 나라가 북한이다. 나도 4년 동안 피해다녔다. 중국 경찰차 소리만 들어도 놀랬다. 발 뻗고 잔 적이 없었다.

- 탈북자가 한국에서 사는 삶은 어떤가

▲스탠포드 한인학생회(KSA), 스탠포드 정치 동아리 SIG(Stanford in Government)가 공동으로 17일 스탠포드 대학 Tresidder Union, Oak Lounge에서 북한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북한 정부에서 탈북자를 고문하는 사건을 표현한 삽화가 동시에 전시됐다.
(한성주 대표)탈북자로서 한국에의 정착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남북한이 60년을 갈라져 살았다. 서로 교육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다시 시작하면서 살아야 했는데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 통하고 문화가 통한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색안경을 끼고 부정적으로 탈북자를 보는 사람도 있어서 더욱 열심히 살았다. 많은 탈북자들과 대화하면서 탈북자들을 색안경을 끼지말고 그냥 인간으로 봐달라고 말한다.

불법적이지만 북한과 한국과 통화가 된다. 그리고 북한에서 지금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음악, 드라마를 보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그룹이다. 북한은 볼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말할 자유는 없다. 손은 있지만 쓸 수 있는 자유는 없다. 발은 있지만 이동할 자유는 없다. 그걸 벗어나면 죽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학생보다.. 북한에 대해 무관심해

질의응답 이후로, 참석한 한 스탠포드 한인학생은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북한의 정황을 자세히 모르지만, 북한을 위해 항상 기도하는 부모님으로부터 탈북자 소식과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편, "오히려 한국에서 자라면서 미국에 온 유학생들은 이런 강의를 들으면 처음 듣는 말이라며 놀란다. 한국에 있다고해서 북한 사정을 잘아는 것 같지는 않다. 자기 일 외에는 무관심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