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행13:36)

he had served his own generation by the will of God, fell on sleep…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설교에서 다윗의 생애를 한 문장으로 묘사하였는데 ‘다윗은 당시에(his own generation) 즉 자신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다’고 한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자신이 살던 세대에 하나님께서 모세로부터 내려오던 성막에서 성전으로 옮기려 하시는 뜻을 알게 되었다. 다윗은 왕으로써 많은 전쟁을 치루었지만 그런 인생의 여정 속에서 전쟁의 승리 자체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됬다. 매일 회막 안의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몰랐던 주의 갈망을 그 성소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다윗은 알았다.

다윗은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그 성소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행13:22, 삼상13:14) 그는 오랫동안 죽음의 위기 속에서 광야를 유리했지만 광야의 방랑 속에서도 주를 향한 예배를 잊지 않았다. 그 바쁜 직업인 왕을 하면서 시편을 150편이나 남길 정도로 그는 예배했고 주 앞에 머무를 수 있다니 놀랍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성전짓는 재료를 준비하게 하셨다. 그에게 왕위와 전쟁의 승리는 목표가 아니라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었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말을 듣고 그는 슬퍼하며 기도하였다.(느1:3,4) 그렇게 금식하며 조상과 자신의 죄를 회개 할 때 왕의 관원이 되었다.(느1:11)그에게 왕의 관원이 된 것은 방법이었다.

그의 목표는 퇴락한 예루살렘 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주의 뜻을 아는 자는 방법과 목표가 분별된다. 일류대학과 출세가 목표인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은 부르심을 이루는 방법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방법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을 잊은 채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그렇게 성공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잊은 채 타락하게 된다. 솔로몬처럼. 그는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으나 그 예배의 결과로 지혜를 얻고 권력과 부귀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을 얻게하신 사명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누리기만 하였고 결국엔 타락했다. 성공이 반드시 인생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길가에 쓸 수 있는 물건인데 버려진 것이 많다. 주인에게 필요없기 때문이다. 성공해도 주의 부르심에 맞지 않으면 주로부터 그렇게 버림받을 수 있다.

솔로몬과 그의 아버지 다윗의 차이는 성공 자체가 아니었다. 솔로몬은 지혜와 권력과 부귀를 누렸고 아버지 다윗이 준비한 재료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지만 그의 시대를 향한 주의 뜻을 몰랐다. 그는 누림 속에서 주를 잊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광야를 유리해야 했고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시 도망가야 했지만 다윗은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섬겼다.

젊음을 시작도 하기 전에 난 실패하고 절망했었다. 기도원에서 부르짖는 사람조차 부러웠다. 무엇인가 구할 목표가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한라산 기도원을 나와서 근처에 공동묘지에 이르렀었다. 절망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 나의 나쁜 친구였다. 그곳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이유를 주께 질문하며 기도가 열리게 되었다. 광야를 유리하던 다윗이 떠올랐고 행13:36의 말씀이 내 영에 화살처럼 꽂혔다. 내가 사는 시대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그 부르심은 절망을 버리게 했고 소망이 되었다. 난 그 때 내가 일어서게 될 것을 알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고 내게 믿음이었다. 지금 나는 아무 것도 없이 일어서고 있다. 이 시대를 향한 주의 뜻을 위해서. 인생의 승리는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을 드리는 순종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