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맞이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포기할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에는, “공부를 포기할까?” 혹은 “인생을 포기할까?”라고 농담을 하더니, 결국 한 아이는 저녁 식사 이후에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기로 했고, 다른 아이는 저녁 시간에 농구 중계를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순절이 되면 뭔가 즐기던 것을 포기(giving up)하고 살아보는 영적 훈련을,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훈련시켜 준 청소년부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순절에 사람들이 가장 흔히 하는 일이 ‘금식’입니다. 원래 히브리말에서 ‘금식’은 ‘음식을 끊는 것’이 아니라, ‘몸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몸을 괴롭게 하는 이유는 영적인 갈망을 깨우기 위함입니다. 몸이 너무 편안해지거나 물질적인 즐거움에 너무 깊이 탐닉하게 되면, 영적인 갈망을 잊기 쉽습니다. 육적인 욕구가 만족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몸을 괴롭게 하여 우리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영적 갈망을 깨워 일으키는 것을 아주 좋은 영적 훈련으로 여겨왔습니다.

‘몸을 괴롭게 한다’는 말을 몸에 대한 ‘학대’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몸과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의 귀한 선물로 여겨, 감사하고 보살피고 가꾸어 줄 책임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몸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심하게 상처를 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하여 늘 건강한 상태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건강에 심한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영적 갈망을 깨워 일으키는 정도에서, 잘 분별하여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몸을 괴롭게 하기’라는 히브리말도 마땅치 않고, ‘금식’이라는 우리말도 마땅치 않습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포기하기’(giving up)가 마음에 듭니다. 우리가 그동안 즐기던 것들 혹은 우리 몸이 익숙해 있던 것들을 40일 동안 포기함으로써 영적 갈망을 깨워 일으키며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사순절 동안 우리가 힘써야 할 일입니다.

아직도 사순절이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포기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혹시, 늦었지만, 뭔가를 포기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사순절 새벽기도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새벽의 단잠을 포기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한 주일에 한 끼 혹은 하루를 금식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골프에 지나치게 중독된 것 같으면, 그것을 잠시 포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것 하나를 골라 잠시 포기하심으로써 영적 시각을 되찾도록 힘써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번 40일 동안, 저는 새벽 단잠과 함께 분주함을 포기했습니다. 새벽기도회 시간부터 점심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고 말씀을 준비하며 주님 앞에 머물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분주함을 포기하는 것이 어떻게 몸을 괴롭게 하는 일이 되느냐구요? 수다스러운 사람에게 있어서 침묵이 고문이듯, 분주하게 살던 사람에게 있어서 ‘머물러 섬’은 고행입니다. 새벽기도회를 위해 충분한 시간 동안 머물러 앉아 매일 마가복음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요즈음 송이 꿀보다 더 달다는 말씀의 묘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새벽기도회에 나오셔서 이 맛을 함께 맛보시지 않겠습니까? (2007년3월4일)

/글 김영봉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