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오전, 감리교 원로이신 고 안준화 목사님을 위한 장례 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주로 장례식을 집전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예배자의 입장이었습니다. 폭설이 오고 난 다음 날이라서 집에서 조금 일찍 떠났더니, 약 10분 전에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장례식장에 모였습니다. 썰렁한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저는 모처럼 차분히 앉아 마음을 집중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10분 전에 도착하여 예배를 위해 준비 기도를 하고, 또한 예배 순서 하나 하나에 마음을 담아 참여하면서, 저는 속으로 “아, 예배의 자리가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저는 주로 장례식을 집전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예배자의 입장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집례자가 되면 고인에 대해 미리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지만, 막상 예배 시간에는 늘 긴장하게 됩니다. 반면, 예배자의 입장이 되니 아무런 긴장감 없이 차분히 앉아서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순서 하나 하나가 제 마음에 은혜를 안겨 주었습니다.

모처럼 예배의 자리에 앉게 되어 그런 느낌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혹은, 그 날의 장례식장 분위기가 예배에 집중하기에 좋았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어찌됐든, 저는 그 장례 예배를 통해 마음 깊은 은혜를 받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짧지만 깊은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인을 위해 기도하고, 유가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로서 나의 마지막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며 옷깃을 여미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유가족들에게 마음 깊은 위로와 인사를 건넸습니다.

예배의 자리는 참으로 귀합니다. 준비된 마음만 가진다면, 예배는 항상 우리에게 이같은 은혜를 공급해 줄 것입니다. 물론, 예배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높일 때, 우리에게 은혜가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곳은 예배의 자리 외에는 없습니다. 아무리 적은 수가 모였다 해도, 아무리 음악이 시원찮고 설교가 서툴러도, 마음 다해 참여하는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을 높이고 우리 마음에 은혜를 부어 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적 감각이 열려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상 생활에서 동행하는 것, 그것이 ‘삶의 예배’입니다.

그러니 예배의 자리를 더욱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예배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예배가 최우선순위에 있음을 삶을 통해 증명해 보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배 시간보다 10분 일찍 와서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것, 혹은 예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 다해 드리는 것 같은 작은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가 소홀해지면 우리의 영혼은 폐허가 되기 때문입니다. (2011년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