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절 성탄절이 다가왔다. 성탄(크리스마스)의 상징은 동방박사다. 아람인의 복장을 한 네 노인이 낙타를 타고 별의 인도를 받아 사막을 지나서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하며 예물을 드리는 모습은 성경에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많은 수수께끼는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속시원하게 풀지를 못했다. 즉 어느 나라 사람이며 몇 명이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어떻게 구세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믿고 집을 떠났으며 또 당시 유대의 왕인 헤롯을 찾아가 유대인의 왕을 찾아 왔으니 도와달라고 한 말 등 등은 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당시에는 어떤 사건이나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중요한 요점만을 기록하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방박사들이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첫째는 아기예수를 찾아가는 절대적인 믿음이다. 유대 땅에서 태어난 아기는 한 가족이나 국가를 초월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라고 믿었다. 그 구세주의 교훈과 삶을 본 받는 그 사람은 잘되고 또 그 사회는 바르게 크게 부흥발전할 것을 확신했다. 역사를 새로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기회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기회를 만드는 것인데 동방박사는 후자에 속한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의 첫번째 제자이며 전도자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나를 중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기위해 종교도 가지고 또한 누구를 만나지만 동방박사들은 반대로 구세주를 중심으로 자신은 그를 따라가는 심정으로 아기 예수를 찾아 간 것은 교인들이 배우는 바 크다.

두번째는 찾아가는 고난의 여정이다. 멀고 먼 길, 물이 없어 초목은 물론 사람도 없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을 몇주간이고 몇 달이고 가는 길은 너무도 힘든 여정이다. 그 곳에는 무역 상인들을 노리는 무장 강도들이 있어서 한 번 잘못 걸리면 목숨까지 잃는 위험한 길이다. 더욱 안내자도 없이 하늘의 별을 따라서 갔다. 별은 밤에야 볼 수 있으니 밤길은 낮 보다 몇 배 힘들고 위험한 일이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목적지에 도달하는 그 신념을 존경한다. 많은 교인들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보호밑에서 천사의 도움을 받아 병도 실패도 좌절도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다가 마음대로 안되면 내 믿음이 약해서 내가 원하는대로 안 되는가? 아니면 하나님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접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동방박사들은 아무리 역경과 시련이 온다고 해도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뜻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진해서 목적을 성취하는 면을 본받게 된다. (참고 마16:24-27)

세번째, 그 들은 당시 최고로 귀한 황금과 유향, 그리고 몰약을 예물로 준비해 가지고 가서 두 손으로 아기 예수에게 드렸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주로 짐승으로 최고로 좋고 흠이 없는 것을 골라서 드린 것 처럼 그 정신은 신약시대에도 전승된다. 그러나 제물은 짐승이 아니고 사람으로 바뀐다. 그렇다고 사람을 나무위에 올려놓고 불로 태우는 것이 아니고 교인이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바로 짐승의 피보다 더 귀한 제물이 되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은 그 일을 했다.(참고 롬12:1, 요4:23-24,히9:11-22)

과수원 주인의 이야기다. 자기들은 좋은 과일을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만들고 자기들은 새들이 파 먹다 남은것, 바람에 떨어진 것, 상처난 것들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귀한 것을 드리고 또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교인의 본분이기도 하지만 훗날에 자신에게 몇 배의 상급이 돌아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기쁘게 바친다.

인간은 본래 욕심쟁이다. 99마리의 양을 가진 부자가 이웃에 사는 가난한 노 부부가 자식처럼 사랑하는 한 마리 양을 빼았아 100마리를 채우는 부자의 욕심이 나와 너 인간의 마음이다. 욕심이 난무하는 곳에는 싸움과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보자! 하늘의 보좌를 비우시고 천한 인간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하며 예물을 드리며 자신들도 아기 예수처럼 살기를 다짐한 동방박사의 삶을 오늘의 보통사람들이 모방하는 일은 멋진 성탄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