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욥 5:7) 라고 욥이 말했듯이 에덴동산의 축복을 벗어난 우리 인간은 줄 곳 고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고난은 오늘도 인간들을 괴롭히고 있고 우리는 날마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기근, 지진, 도난, 사고...'암'으로 사형선고 받은 사람들, 사업이 망가져 거지 신세가 된 사람들,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람들, 마약 중독으로 숨진 사람들, 사고로 불구자가 된 사람들, 스트레스로 정신병원으로 간 사람들...끊임없는 인생의 불행한 사건들을 들으면서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연결지어 보며 깜짝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의 사건들은 먼 산에서 불이 난 것 같은 광경을 바라보는 듯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가까운 친구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의 감정 개입은 달라집니다. 염려와 근심과 기도와 관심을 쏟게 되고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들의 눈물에 동참 하게 됩니다.

어려운 일 을 당할 때 동참해 줄 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가장 연약하고 힘들고 어렵고 고통당할 때 우리 모두는 우리를 이해해 주고 함께 해 주는 친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참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친구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상처를 안겨주고 더욱 비참하고 외롭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누가 참 친구냐 아니냐는 고난을 당해 본 사람이 알 수 있게 됩니다. 슬픔과 좌절과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친구라고 찾아주는 사람들 중에는 친구의 고난에 동참해 주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우쭐 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삼기 때문입니다. 고통 하는 사람 앞에서 "괜찮습니다. 문제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생각하십시오. 이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제법 긍정적인 사람처럼 큰 소리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을 앞에 놓고 싱글벙글 웃으며 농담을 하고 '기뻐하십시오, 찬양 하십시오'라고 설교하며 전혀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상태에 동참해 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난당한 이유를 심판하고 고발이나 하듯이 '회개' 하라고 부르짖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내 놓고 명 '주석'을 전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대의 상황이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이해해 주지도 못하는 상태로 자기중심적인 의견이나 생각을 내세우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도 위로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2 차 암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 입문에서 대기 중에 있었습니다. 간호사가 전화를 바꾸어 주기에 받아보았더니 30 년 '치구' 라고 말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러 자기 집으로 오라는 초청을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현 심각한 상황을 알렸습니다만 그녀는 제 입장을 전혀 자기 속에 입력하지 않았고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바람처럼 그녀 귀를 스쳐간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2000여불을 들여서 바캉스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며 즐거운 샾핑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함께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고 떠들었습니다. 저는 수화기를 놓아버렸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고 웃는 자와 함께 웃어주는 것이 친구로서 줄 수 있는 선물입니다만 '친구' 라고 말하면서 울 때 싱글거리든지 '울지 말라' 윽박지르는 사람, 즐거워 웃을 때 굳은 얼굴을 하고 붕 떠서 풍선 날리는 기분이 된 친구를 바늘로 꼭 찔러 웃음을 걷어가는 사람... 친구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참 친구 하나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는 아내나 남편, 자식들과 부모...그러나 그런 관계 속에서도 참 친구는 보기 드믄 일입니다.

욥 을 보아도 자식을 열씩이나 낳고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삶 을 공존한 그의 아내가 그의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욥 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기에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참 좋은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욥 의 고난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자기들의 고난만큼이나 중하게 생각하고 함께 아파하고 고통하며 눈물을 나누었습니다. 욥 이 가장 약하고 초라하고 병든 모습이었을 때 자신의 상태만큼이나 진지하게 생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슬픔을 나타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괴로워 해 주었을 뿐 할 말을 잃었습니다. 7 일씩이나 말없이 곁에서 욥의 고난에 동참해 준 것입니다. 욥의 상태를 자신의 감정에 이입 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그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친구들로서 욥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내게 참 친구가 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여러분께서도 '나는 그의 참 친구다' 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대상이 있으신지요? 함께 울어주고 함께 웃어주는 친구 말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판단이나 의견을 벗어버리고 말없이 함께 주시는 참 친구.......

기독교 신앙인들은 참 된 친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분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울 때 함께 울어 주시고 웃을 때 함께 웃어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질병과 사고와 사망을, 또 문제 전체를 대신 짊어 져 주신 친구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처참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우리를 그 무서운 상황에서 건져 주시기 위하여 자기의 살 과 피를 내어주시어 구원해 주신 친구이십니다.(요 6:47-58) 그분이 주신 친구의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요 10:9-11)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 삶 속에서도 그분은 늘 우리와 함께 해 주고 계시고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슬픔에 동참해 주십니다. 그분을 참 친구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다시는 외롭지 않습니다.(요 15:13-15) 세상에서는 참 친구가 없으셔도 예수님을 친구로 모신 사람들은 그래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