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하고, 또 흔한 척도는 무엇일까. 옳고 그름의 당위성을 떠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설교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 같다. 목회자는 오직 설교로 말하고 설교로만 규정된다는 주장도 있으니, 이것에 기대자면 설교는 목회의 처음이자 끝이다. 본사는 기획 인터뷰 ‘설교를 말하다’를 통해 설교라는, 그 끝없고 오묘한 세계를 엿본다.

▲이윤재 목사는 지난 7월 금식기도 중에 故 이중표 목사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인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지난 8월부터 매주일 이 구절을 강해 중이다. ⓒ본사 DB

분당 한신교회 이윤재 목사는 요즘 말씀에 젖어 산다. 물론 늘 그랬지만, 성경 ‘갈라디아서’로 강해설교를 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그는 지난 8월부터 매주일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설교해오고 있다. 이 목사의 영적 아버지이자 ‘별세목회’의 창시자, 故 이중표 목사가 일평생 가슴에 새겼던 구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삶으로 살아내려는 끝없는 몸부림 속에서 이윤재 목사는 비로소 ‘거지(巨知)’(故 이중표 목사의 호)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지난 7월, 금식기도의 한 가운데서.

“이 구절의 의미를 꼭 깨닫고 싶었어요. 별세목회의 핵심이자, 기독교 메시지의 본질이기도 한 이 구절을 말이죠. 절실했습니다. 그만큼 그 의미를 깨닫고 받은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어요.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었고 성경 전체가 마치 하나로 합쳐진 것 같았죠. ‘원 이즈 포 올, 올 이즈 포 원’(One is for all, all is for one). 이 말처럼요.”

이 목사와는, 사실 구면이었다. 그의 목회와 인생을 주제로 지난해 가을 처음 만났다. 그는 그 때도 말을 참 잘 했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 아는 사람이었다. 질문이 끝나면 바로 핵심을 짚어 말했고, 예화는 적절하면서도 위트가 있었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이 있다. 설교 역시 이 두 단어로 요약되지 않을까. ‘무엇을, 어떻게’. 그를 다시 찾은 이유다.

-지난 몇 주 간, 갈라디아서를 설교하고 계십니다. 강해설교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본문이 정해져있고 흘러가는 주제와 맥이 있으니, 설교자 입장에선 오랫동안 집중해서 설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어떤 흐름이 있다는 건, 신앙의 성숙이라는 차원에서 설교자에게나 성도들에게 모두 유익한 것 같아요. 설교문을 모아 책으로 펴낼 수 있다는 점도 좋구요.”

-처음 예배에 참석해 설교를 듣는 새 신자 입장에선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은 항아리에 있을 때도 물이지만 컵에 담겼을 때도 물이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설교의 형태가 어떻든, 복음의 메시지는 성령의 능력을 타고 한 영혼에게 전달됩니다.”

-목회에 있어 설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과대평가해서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설교가 중요하긴 하나 인간이 선포하는 말씀만이 목회의 전부가 아니기에 과대평가해선 안 되고, 그렇다고 설교가 예배 순서 중 하나라고만 보기엔 그 영향력이 대단하므로 과소평가해도 안 되는 것이죠. 중요한 건 설교를 통해 얼마나 성령의 임재와 감동이 전해지는가에 있지 않을까요.”

-설교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네요.

“스위스 제네바에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과거 칼빈이 설교했다는 교회에 들른 적이 있는데, 설교 단상이 굉장히 높은 곳에 있더군요.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뭐랄까, 굉장히 권위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때 누군가 제게 그랬어요. 당시에는 설교를 ‘프로클레임’(Proclaim)이라고 했다고. 뜯어보면 프로(Pro), 앞으로 나아가 클레임(Claim), 주장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설교는 그 어떤 에세이나, 권유의 글이 아닌 선포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해요. 대단한 일을 하는 거죠.”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요.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해요. 고민 없이 나오는 입바른 웅변은, 달변은 될 수 있어도 감동을 주진 못합니다. 어떤 본문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표현해 전달할지 고민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고 또 그리스도가 아닌 내 욕심대로 다른 걸 전하려는 유혹을 고민하고…. 때론 내가 전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 괴로워도 하면서.”

▲이 목사는 좋은 설교를 위해선 설교자가 부단히 노력하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시대를 읽기 위해 일주일에 신간 5~6권을 읽고, 설교원고는 사전에 외워 실제 설교 때는 원고를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본사 DB

-설교에 반드시 담겨야 할 건 무엇인가요.

“케리그마(kerygma)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 그 자체의 메시지…, 치열한 삶을 살다 온 성도들에게 본질이 아닌 다른 걸 말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건 시간낭비에요.”

-물론, 그걸 전하는 방식도 중요하겠죠.

“그럼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선 철저히 성도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그 방법에는 설교자들마다 고유의 방식이 있으니 고정된 원칙은 없다고 봐야죠. 다만 표현은 현대적일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 하지만, 설교의 시피치적 측면에선 묵은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소신입니다. 포도주, 즉 메시지는 오래 묵상하며 깊은 맛을 내되 표현방식은 현대인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최신의 것을 선택해야 해요.”

-그러자면 설교자는 늘 시대를 읽어야겠군요.

“네. 전 주로 독서에서 그것을 얻습니다. 일주일에 5~6권의 신간 서적을 읽어요. 새로 나온 책에는 현대인들의 관심과 문화가 담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주 월요일은 꼭 서점에 가요. 해외에 갈 일이 있거나 멀리 여행을 갈 때도 항상 책은 챙깁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중요한 부분은 따로 정리를 해둬요. 그래서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인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그것에서 설교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한국교회 설교가 단순히 윤리적 차원이라며 비판 받기도 합니다.

“윤리적이기만 한 설교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하죠. 그런 건 꼭 목회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윤리적인 강조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교회의 윤리적인 면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시대엔 말이죠. 복음적 메시지와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합니다.

세계적 영성 신학자이자 유명 작가이기도 한 리처드 포스터는 ‘은혜는 훈련으로, 훈련은 은혜로’라고 했는데, 설교자가 꼭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은혜 받은 그리스도인은 신앙적 훈련을 감수하지만, 그러한 훈련이 자칫 율법주의로 빠지면 다시 은혜가 필요하고 이 은혜는 또 더욱 철저한 훈련으로 이어지고…. 그렇기에 설교엔 이 두 가지가 모두 담겨야죠.”

-설교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나요.

“설교 원고를 쓰지만 실제 설교 때 그것을 보지 않아요. 단상에선 오직 성경책 하나뿐이죠. 원고를 보면서 설교하면 원고에 눈을 두기에 정작 성도들과 아이컨텍(Eye contact)을 할 수 없고 게다가 성도들에게 목회자가 원고에만 의존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원고 없이 설교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그야말로 원고를 달달 외울 정도가 돼야죠. 하지만 그만큼 장점도 많습니다. 역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주시는 성령의 영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요. 그래서 주일에 여러 번 설교하면서도 매번 강조점이 다르고 성도들이 받는 느낌도 다르죠.”

-지금의 설교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습니까.

“다 그렇듯이 저 또한 신학교를 나오고 목회 경험을 쌓는 동안 무수히 설교를 듣고 따라하는 과정을 거쳤죠. 조금 더 잘하려고 하고 매번 최선을 다하려 애쓰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이만큼 늘었구나 하고 깨달아요. 하나님의 은혜죠.”

-마지막으로 설교에 대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장을 위해 설교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건 가장 큰 설교의 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