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이전: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과 사람을 구별하는 대표적인 말들이 있다. 무한, 영원, 불변이라고 하는 말들이다. 이 용어들은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는 하나님의 특성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유한, 순간, 가변이라고 하는 용어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에게 속해 있는 피조물들의 특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속성상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다. 피조물 중 하나인 사람은 속성상 유한하고, 일시적이며, 끊임없이 변한다. 하나님과 사람을 구별하는 본질적 특성의 큰 획을 긋는 차이점은 이 말들 속에 담겨 있다. 이런 뜻에서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해도 하나님이 될 수 없다. 또,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람과 같이 낮아지셔도,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다 이해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한과 유한, 영원과 순간, 불변과 가변이라는 말들은 인격적인 존재들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지나 칠 때, 일견 교차점이 있어 보이는 것 같으나, 실상은 본질상 전혀 차원이 다른 두 개의 특성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사랑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사랑”이라는 말은 인격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공히 발견되어지는 도덕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도 사랑 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진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는 이런 특성을 공유 속성이라고 불렀다. 공유 속성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이 공히 소유하고 있는 특성이라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공유 속성이라고 말해지는 “사랑”이라는 말도, 하나님과 사람의 선을 긋는 무한, 영원, 불변, 유한, 순간, 가변이라는 용어들을 수식어로 앞머리에 두면,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무한한 사랑과 유한한 사랑, 영원한 사랑과 순간적 사랑, 불변의 사랑과 가변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 때문에 교차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본질상 비교될 수 없는 전혀 서로 다른 특성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능력”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무한한 능력과 유한한 능력, 영원한 능력과 순간적 능력, 불변의 능력과 가변의 능력은 본질상 비교 될 수 없는 “능력”들이다. 이런 뜻에서 “지혜” “거룩” “공의” “선” “진실” 등을 말한다면, 이런 것들은 인격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공히 찾아 볼 수 있는 특성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속성들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요, 사람은 사람일 뿐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베드로 사도가 그의 두 번째 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다 할 지라도, 그로 인해서 사람이 곧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아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영생하시는 것과 같이 영원한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실에 대한 바른 인식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한 없이 겸손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반면, 이 겸손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갖게 만들어 준다.

예를 들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파멸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셔서 참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셨다고 하는 것을 진실한 마음으로 믿는다면, 유한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감사하게 여기겠는가!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만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이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영원한 사랑으로, 불변하는 사랑으로 믿는 자를 사랑 하셔서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사랑 앞에서 “하나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 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회의적인 질문을 할 수 있겠는가? 만일 누가 이런 의혹에 찬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 편에 믿는 자를 사랑하는 사랑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사랑을 받는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나 하나님의 사랑의 성격을 믿는 일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신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능이라는 말이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며 믿음생활을 하는 신자들은 얼마나 될까?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 변하지 않는 능력, 영원히 지속되는 능력, 그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셨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때까지, 믿는 사람들을 지켜 보호 하신다는 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신앙생활을 하다가 마음이 낙심되어 절망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는다고 하면서 낙심하여 절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말하는 그 사람의 “능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 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신 것은 하나님만 갖고 계신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독특한 성품들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런 독특한 성품들은 단순히 지식의 내용으로 입술에 올리거나 머리에만 담아 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성령의 인도와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며 교제하는 중에 믿음의 대상이신 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일상적인 신앙생활 속에서 인격적으로, 영혼 깊이 알아 가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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