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고대 사본이 발견된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1947년 초 이스라엘의 겨울, 우기가 시작된 때이다. 사해의 북서쪽 쿰란 유적지 가까운 곳에 베두윈 타암라 (Ta’amra) 부족이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양을 돌보던 베두윈 소년은 저녁이 되어 장막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양을 세어보던 소년은 양 한 마리가 부족한 것을 알고 근처 동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나 야행성 짐승이 동굴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어 소년은 조심스럽게 돌멩이를 동굴 안으로 던졌다. 그러자 돌멩이가 질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은 호기심을 갖고 좁은 동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자 동굴 한 쪽에는 몇 개의 항아리가 있었고 소년은 그 중 한 항아리 안에서 7개의 두루마리를 발견하였다. 감추어졌던 성경 사본이 2천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고고학이 과학적인 학문으로 자리잡은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고고학 유물 가운데 쿰란에서 발견된 성경 사본을 가장 진귀한 보물로 꼽는다.

▲사본이 발견된 항아리
소년은 자신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몇 일이 지난 후, 소년은 7개의 사본을 베들레헴의 두 골동품 상인에게 팔았다. 이렇게 팔린 성경 사본은 또 다시 전혀 다른 두 사람에게 팔렸다. 7개의 사본 가운데 4개의 사본은 예루살렘의 그리스 정교회 대주교인 Athanasius Samuel에게, 그리고 다른 3개의 사본은 히브리 대학 고고학과 수케닉 교수 (Eliezer Lipa Sukenik)에게 팔렸다.

당시는 예루살렘 치안이 매우 불안하던 때였다. Athanasius Samuel은 1948년 4개의 사본을 몰래 미국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1949년에서 1951년까지 몇 대학 도서관, 박물관, 미술 전시관 등을 돌면서 사본을 구입할 적임자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1954년 Wall Street에 광고한 후에 비로소 성경 사본을 팔 수 있었다. Athanasius Samuel으로부터 사본을 구입한 사람은 Sukenik 교수의 아들인 Yigael Yadin으로 그는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전쟁 당시 군 사령관이었고 후에는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고고학자로 활동했던 학자였다. 이가엘 야딘은 이스라엘 정부를 대신하여 성경 사본을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1947년, 베두윈 소년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던 7개 사본은 1955년 초에 비이르러 드디어 이스라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1965년 이래 지금까지 성경 사본은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 성경 사본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성경 사본이 발견된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다시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 후에 현대 이스라엘은 몇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한 전쟁으로 혼란을 거듭하였다. 1949년 잠시 휴전을 맺은 상태에서 요르단 정부의 고고학 협회는 처음 사본이 발견된 동굴을 다시 발굴에 나섰다. 당시 요르단 고고학 협회는 예루살렘에 소재한 고고학 연구소인 Ecole Biblique et Archeologique Francaise와 협력 관계에 있었다. 당시 프랑스 고고학 연구소의 책임자는 도미니칸 수사로서 학자였던 롤랑 드보 (Roland de Vaux)였다. 드보는 처음 베두윈 소년에 의해 사본이 발견된 1동굴에서 7개의 사본에 속해 있던 다른 사본들을 발견하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고고학자들과 베두윈들 간에 다른 사본을 찾으려는 경쟁이 치열해 졌다. 이후 몇 년 동안 10개의 동굴에서 약 950개가 넘는 다른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이 사본들은 모두 상태가 양호한 것들이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본이 발견된 곳은 4동굴 (사진)이다. 4동굴은 쿰란 유적지 바로 건너편에 있는데 이곳에서만 약 15,000개 이상의 사본 파편들이 발견되었다.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전시된 4동굴에서 발견된 이사야 성경 사본


발견된 사본들은 모두 주전 3세기에서 주후 1세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거의 2천년 이상 항아리에 보관된 관계로 사본들은 대부분 조각나 있었다.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견된 사본은 열 개를 조금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쿰란에서 발견된 성경 사본은 성경의 사본 연대를 주전 3세기까지 소급하여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성경 사본이다.

거의 대부분은 양과 염소 가죽에 쓰여졌으며 일부 파피루스에 기록된 사본도 있다.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며 일부 아람어 또는 그리스어로 기록된 사본도 있다.

쿰란에서 발견된 사본은 모두 세 범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에스더서와 느헤미야서를 제외한 구약 전체 약 200개의 성경 사본이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 사본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두 번째는 성경이 아닌 위경 (apocrypha and pseudepigrapha)의 사본이다. 이 가운데는 희년서 또는 에녹서도 포함되어 있다. 희년서와 에녹서는 에디오피아어로 기록된 후대의 사본이 남아 있으므로 그 내용을 서로 비교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쿰란 공동체의 해석서이다. 하박국 주석, 공동체 규율서, 최후의 전쟁에 대한 규칙이 포함되어 있다.

쿰란 공동체의 해석서는 다양한 문학적 장르로 기록되었다. 법적 문서, 예배 의식, 주석, 묵시적 문서도 있다. 이것은 쿰란 공동체가 당시 다른 유대인 분파들인 바리새인, 사두개인들과 견해를 달리했던 것을 반영한다.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성경 사본을 기록한 주인공으로 에센파로 이해한다. 쿰란 공동체는 주전 1세기부터 주후 68년 로마에 의해 쿰란이 멸망하기까지 이곳에 거주하였다. 쿰란에서 발견된 사본 일부는 야하드 공동체 (the Community of Yahad)에 의해 기록되었다. 반면 다른 사본들은 다른 곳에서 기록된 것으로 쿰란 공동체로 가져온 것이다.

1956년 11번 동굴에서 사본이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쿰란 일대를 대대적으로 탐사했음에도 현재까지 더 이상 새로운 사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11번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그 중에는 성전 사본도 포함되어 있다.

성경은 결코 짧은 기간에 기록되지 않았다. 성경은 긴 역사를 갖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문자로 기록하셨으며 누구든 글로 기록된 성경을 믿음으로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자신의 뜻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매일 읽고, 많이 읽고,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빛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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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멤피스장로교회)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