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인터넷 신문에 “건강!자다가도 벌떡…건강 강박증에 빠진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으로 요즘 건강에 대한 관심들이 지나쳐 거의 중독증세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자는 이와 같은 지나친 강박증을 홀릭(holic)이라는 “중독자"라는 뜻의 연결형 단어로 표현하였습니다. 동아일보 에 보도된 기사의 일부를 아래에 인용합니다.

* * * * *

건강기능식품 홀릭

회사원 S씨는 야근을 끝낸 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다가 불 켜진 약국을 발견하고 주저하지 않고 들어섰다. 5000원을 주고 알약과 함께 타우린, 홍삼추출액 등이 들어 있는 드링크제를 샀다. “몇 년 전만 해도 피로해소제는 일용 노동자처럼 고단한 삶에 찌든 사람들이 먹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그녀이지만 “지금은 과음한 다음날, 야근한 날 피로해소제를 챙겨 먹지 않으면 굉장히 내 몸에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심 씨의 회사 사무실 책상에는 비타민C, 종합비타민제, 철분제 등 비타민 약병이 대여섯 개 늘어서 있다. 피부가 거칠어지고 기력이 쇠하다 싶을 때 먹는 여성호르몬 보충제, 피부의 잡티를 없애주는 알약도 있다. 영양제가 혹시라도 바닥나는 날은 괜히 기분이 안 좋고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야 만다. 집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홍삼 달인 물을 빈 페트병에 채워놓고 물 대신 마신다.

운동 홀릭

한 인터넷업체의 S팀장의 경우, 그는 평소 점심 식사를 자주 거르는 대신 헬스장에 가서 트레드밀(러닝머신)을 탄다. 남들은 시속 5km 정도로 놓고 걷기를 한다고 하지만 서 팀장은 시속 10km에 놓고 무조건 뛴다. 주말에는 집 근처 수영장에서 적어도 3시간은 보낸다. S 씨는 아내가 1년여 전 아들(8)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더욱 운동에 몰두하게 됐다. 가족이 함께 살 때는 주말에 운동에 몰두하느라 부부 싸움까지 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왼쪽 무릎은 너무 달려서 무리가 가는 바람에 불편한 상태. 하지만 그는 전문 트레이너나 의사에게 조언을 받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자신의 몸은 스스로 잘 알고, 운동을 오래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믿는다

검진 홀릭

40대에 들어선 뒤부터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해 장에 혹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김 씨는 지난 10년간 유명하다는 내과, 이비인후과, 암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검진만 수십 차례 받았다.
동네병원에서 가벼운 위염 말고는 특별한 병이 없다는 진단을 수차례 받았지만 안심하지 못하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김 씨는 분명히 자신의 몸에 병이 있는데 의사들이 찾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김 씨는 대학병원 서너 군데를 옮겨가며 전신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위 내시경 검사, 초음파 검사, 대장 내시경 검사를 모조리 받은 뒤에도 병이 없다는 진단이 나오자 의사를 붙잡고 “배를 가르는 수술을 해서라도 확인해 달라”고 해 의사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금연 홀릭

매년 초, 자신의 생일에, 아내의 생일에, 결혼기념일에 금연 선언을 하지만 본인이 선언을 하면서도 스스로 짧으면 일주일, 길면 세 달 안에 다시 흡연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금연 선언을 하는 건 선언하는 그 순간만이라도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 * * * *

몸에 좋은 식품을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고, 몸에 좋지 않은 습관들을 삼가는 것은 사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반드시 관심을 가지고 챙겨야 할 것이며, 이러한 관심이 없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몸에 무리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음식도, 운동도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마땅히 챙겨야할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만 지나쳐 버리게 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무엇이든지 적당한 것이 좋다는 것으로 글을 맺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적당(適當)하다는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는 “적당”하다는 단어를 어떤 일을 일정한 기준도 없이 요령껏 엇비슷하게 하거나, 말썽만 없을 정도로 대강대강 하는 상태를 적당하게 한다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전에서 “적당”이란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적당이란 “사물의 정도, 수준, 상태 등이 그 기준에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잘 어울리는 상태”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당이란 단어를 본래의 의미와는 정반대로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적당한 삶이란 아무런 기준도 없이 요령껏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과 기준에 따라 그 기준에 지나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적당하게 산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정한 기준에 지나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살아가는 삶의 본래의 모습이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구원의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에는 우리의 삶이 건강이든, 신앙이든, 관계이든 하나님께서 정한 기준에 비추어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적당하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적당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