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T(대표 미셀 김) 주최 '1907년 부흥성회 100주년:성찰과 부활' 대회의 둘째 날. 최수관 목사(뉴저지 초대교회 부목사)의 환영 인사 및 기도로 시작된 심포지엄의 첫 강연자는 트리니티 대학에서 한국, 중국 및 일본의 역사 및 미국외교 관계에 대해서 강의하는 'Donald N. Clark' 박사였다. 그는 천주교를 통한 한국으로의 첫 기독교 전파, 개신교의 전파, 평양 대 부흥운동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 및 구한말과 일제시대 기독교인들의 사회 참여와 그 영향 등에 대해 강연했다.

'Donald N. Clark' 박사는 또한 1907년,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울 정도로 큰 부흥을 일으켰지만,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은 현재 한국 기독교인과 교계에 큰 숙제를 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남북의 분단으로 말미암은 상처와 서로간의 격차, 기독교 인구의 꾸준한 감소, 교단간의 분열과 자질이 부족한 목회자들로 말미암아 양성되는 끊임없는 불미스러운 일들, 월남인들과 새터민들의 꾸준한 유입에 대한 교회들의 책임들에 대해 고민하고 슬기롭게 극복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연을 맺었다.

두 번째 강의는 김현식 교수(전 평양사범대, 예일대 교수. 현 조지 메이슨대 연구 교수)의 '하나님의 이끄심 따라 내가 살아온 길'이었다. 김 교수는 북한에서 40여년 간 공산주의자로서, 38년간 평양 사범대 로어 교수로서, 1950년 남북전쟁 참가자 및 가장 존경 받는 영예군인으로서, 또한 20년간 김일성 처가쪽 자녀들 과외 학습지도 교수로서, 3년간 러시아 국립사범대 초빙교수로서 살아왔던 북한 고위 엘리트계급이었다.

그는 이번 강의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간증하면서 "저는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예수를 믿었던 사람이었고, 어머니의 기도를 통해 지금까지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기도, 하나님의 이끄심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는 이렇게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

러시아 국립사범대의 초청으로 3년 여 동안 한국어를 가르치던 중, 전쟁시기 월남하여 시카고에 살고 있던 누님을 42년 만에 만나게 되면서 김교수는 결국 남한으로 오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던 최순직 목사를 만나 신앙을 다시금 회복하게 된다. 그는 현재 독실한 기독교인 아내 김현자씨(한복 연구가)와 함께 북한 선교 및 통일을 위해 연구 및 출판, 문서선교 사업 등을 펼쳐 나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간증의 형식으로 이야기 한 후 우리가 통일을 위해 또한 북한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을 위해 기독교인으로서의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우리는 먼저 북한을 잘 이해해야 하며, 남한을 김일성 주의화 해 세계를 김일성 주의화 하려는 김일성•김정일의 속셈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 전쟁도발의 억제력을 가지고 있는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1950년 한국전쟁 시, 전혀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우리들을 위해 피 흘려 죽은 미군들(당시 5만여명 전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미동맹 유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 때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오지 않았더라면 남북한 모두가 다 지금 북한 꼴이 되었을 것.”이라며 특히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크리스천들이 이런 면에 있어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북한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쓰여진 성경책 및 문서선교를 위한 책들을 만들고, 북한학생들을 위한 영어사전을 만드는 등의 일들이 바로 북한 선교 및 통일을 준비하는 중요한 작업들이 될 것이다"며 참석한 이들에게 이러한 문서, 교육 사역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는 어머니의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우리가 평양의 기독교 재 부흥을 위해 기도한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북한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이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100년 전 기독교 평양 대부흥과 같은 부흥이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 기도를 통해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의 옛 지위를 되찾게 될 것이다."

점심 이후 있었던 워크숍 시간에는 의학•법률•청소년선교•기초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그들이 펼쳐 나가고 있는 북한을 위한 사역들에 대해 나누었다. 또한 선교사인 아버지와 함께 평양 대부흥의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모펫 박사와의 차와 나눔의 시간도 준비되었다.

워크숍이 끝난 후 모두들 한 자리에 모여 CRAM(Christ Reaching Asia Mission Worldwide)에서 섬기고 있는 패트리샤 김 목사의 사역 발표를 들었다. 김목사는 파란 눈, 금발의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미국인이지만, 미국 신학교에서 김찬영 목사를 만나 결혼, 한국으로 오게 된다. 27년간 아동치료, 고아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다 은퇴의 시기,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북한을 마음에 품게 되어 현재는 북한에 양로원•고아원•농장들을 건립해 사역을 하고 있다.

저녁시간에는 '되찾는 땅'이란 주제로 예배 음악회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의 땅, 한 때는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그 곳을 다시금 하나님의 땅으로 되찾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함께 모으는 시간이었다. 같은 민족을 향한 사랑을 품고 그 때의 그 부흥이 그 땅에서 다시금 일어나길 염원하는 1세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땅 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북한을 향한 마음의 부담감을 품은 1.5세•2세 청년들, 자신의 민족이 아니지만 주님의 마음을 품고 북한을 돕기 위해 헌신하는 미국인들. PSALT가 준비한 '1907년 부흥성회 100주년 : 성찰과 부활' 대회 아래 모인 이들은 1박 2일의 일정 동안 간절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됨을, 부흥을, 부활을 염원하며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