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두 번째 동성애자 주교 임명으로 물의를 일으킨 미국성공회가 세계성공회의 제재에 당면했다. 이번 주 초 세계성공회는 현재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에큐메니칼 대화에서 미국성공회를 제외시킨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세계성공회 총무 케네스 키어런 주교는 미국성공회에 보낸 서한에서 “대화 참여에 대한 (미국성공회의) 회원 자격이 정지됐다”는 세계성공회의 입장을 밝혔다고 크리스천포스트(CP)는 보도했다.

이같은 제재는 지난 5월 세계성공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성공회가 12년째 동성 연인과 동거 중인 메리 글래스풀 사제를 부주교로 정식 임명한 데 따른 것으로, 세계성공회 수장인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뜻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윌리엄스 대주교의 평소 온건주의적 성향을 감안할 때, 이번 조치는 이례적인 것이라고 성공회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2003년 11월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 사제를 주교로 임명하면서부터 시작된 미국성공회 내 보수파와 진보파 간 갈등은 결국 분열을 낳아, 보수파들은 미국성공회에서 탈퇴해 북미성공회를 새롭게 조직했다.

세계성공회 내에서도 미국성공회의 동성애 포용 정책은 보수파 회원들의 극렬한 반대를 불러와, 전체 7천7백만여 성공회 회원 가운데 절반 가량인 3천5백만여 보수파 회원들을 대변하는 세계성공회미래회의(GAFCONO)의 결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윌리엄스 대주교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세계성공회 리더십이 동성애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시해 왔다.

미국성공회는 동성애자 사제 허용 외에도 교회 내에서 동성 커플들을 축복하는 의식을 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안을 2003년 통과시키기도 했으며, 세계성공회 내에서는 미국성공회 외에 캐나다성공회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의 진보파와 ‘동성애자들을 보호하되 동성애는 분명한 죄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의 보수파 간 갈등은 따라서 지역적으로는 미국과 캐나다 교회, 그리고 기타 세계 성공회 간의 갈등 구도로 대표되어 왔다.

급기야 지난 2005년부터 램버스회의(세계성공회 주교 회의로 10년에 한번 개최)가 열린 2008년까지는 미국-캐나다 성공회와 기타 세계 성공회가 일시적으로 분리 운영되기도 했다. 교단 분열이라는 극단적 결론을 피하기 위해 당시 램버스회의에서 윌리엄스 대주교는 이 문제에 대해 모라토리엄(유예 기간)을 선언했다.

크리스천포스트(CP)는 지난 달 “모라토리엄 위반은 용인될 수 없다”고 밝힌 윌리엄스 대주교의 언급을 통해 볼 때, 이번 미국성공회의 두 번째 동성애자 주교 임명이 가져올 파장에 대한 우려가 즉각적인 제재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성공회 대표인 캐서린 제퍼츠 셔리 수좌주교는 세계성공회측에 “이같은 조치는 세계성공회는 편협함을 드러내는 실수다. 모두가 한 문제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불평했다고 신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