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한인장로회(KPCA) 교단의 제35회 총회에서 샘사역 보고를 하기 위해 5년만에 서울을 방문했다. 그간 변화의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5년전 머리에 입력되었던 모습들(하드웨어)이 변한 것도 큰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고, 생각들(소프트웨어)은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음에 크게 놀랐다. 그 이유를 정치/경제 등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택시기사 몇 분들을 통해 들어보니, 하나는 치솟는 물가로 인한 경제적인 이유였고, 다른 한 면은 최근의 남북관계로 인한 생각들의 큰 대립양상 때문이었다.
필자가 만났던 한 60대의 택시기사 분께서는 “지금은요, 결혼해서 자식 하나만 낳고 살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입니다. (중략)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 이런 세상에 또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증오에 가까운 말을 했다. 그 이유를 조심스레 물었더니, “시골에서 조용히 농사짓고 살았는데 지인들의 권유로 집과 전답 다 팔아 서울로 이사와 그저 보통으로 살아보겠다는 소박한 꿈으로 정직하게 사업도 했고, 가정을 이루고 두 자녀 대학졸업 할 때까지 비싼 등록금을 다 대었건만, 자녀들이 취직은 고사하고 빚만 지고 현재까지 부인과 맞벌이를 하며 죽지 못해 겨우 산다”며 울먹거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자녀들에게 그 엄청난 대학 등록금만 출혈을 안 했어도 이렇게 빚을 지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 교육의 현실을 원망했고(필자도 서울에 열흘을 머무르는 동안 고등학교 2학년인 조카를 볼 수가 없었는데, 과목당 최소 50만 원 하는 학업수업을 밤 11시까지 또 하고 귀가해서였다), 자녀들이 대학만 졸업하면 경제적으로도 잘 될 줄로 판단한 자신까지 책망했다. 인생에 있어서 기본적인 생활들이 무너져 내리는 안타까운 현실의 사연들과 함께 최근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여야의 정치적 대응(지자제 선거로)들은 공통분모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의 유지와 향상은 국가의 정치(여야)의 공동적 합의에서 창출되는 것이기에 이 양자 즉, 국민(기본)과 정치(공동)는 따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민들의 기본적인 가정생활(경제, 사회, 문화, 교육, 윤리 규범)들이 무너져 내리고, 정치는 북한정부와 북한동족을 제대로 못 파악함으로 인해 분열을 심화한다면 과연 그간 어렵게 이룩한 피땀의 수고가 모두 허사가 되지 않을까? 점점 위기가 고조되는 갈등을 멈추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라도 모두가 수긍하는 큰 대지(원칙)를 잡고 세부적인 의견들에는 서로의 부분집합들을 차분하게 세워보자! 이제부터라도 서로가 합의한 공동약속에 모두가 순복하는 실천을 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그렇지 않고 계속 싸우고 비난하고 자기주장만 고집하여 분열하면 기본적인 삶들도 점점 무너져 모두가 다 공멸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도 악한 자(세력)들도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치단결(공동)하며,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원하는 것(기본)을 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눅11장)고 경고하셨다. 우린 그간 너무 오랫동안 이념과 감정으로(개인과 집단) 분열해 왔다. 이제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의 하나 됨(구체적인 공동목표)을 통해 이루시려는 뜻(세계선교)으로 대체한다면, 적어도 더 이상 ‘다시 이 나라(공동)에는 태어나지 않고 싶다’는 기본이 상실된 말을 그렇게 쉽게 듣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현재 우리가 갑론을박하는 내용은 전혀 모른 채, 단지 먹을 양식이 없어 죽음을 눈앞에 둔 이 천만 명의 북한주민과 어린이(기본)를 우리가 살려내려는 공동적 실천(이것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구체적인 아젠다)이 만약 미주의 한인교회와 신앙인들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교회들은 현재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남과 북의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며, 우리의 민족선교는 세계평화에 제대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자가 서울에서 만났던 그 택시기사 아저씨도 원래 바라고 살고 싶었던 그런 나라를 보게 되고 양식과 복음을 애타게 기다리는 북녘의 동족들에게도 주님의 나라가 조국산하에도 임하게 됨을 보게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우리의 기본(기도)과 공동(사랑)이 너무 절실하다.
박상원 목사(SAM시애틀 지부장)
필자가 만났던 한 60대의 택시기사 분께서는 “지금은요, 결혼해서 자식 하나만 낳고 살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입니다. (중략)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 이런 세상에 또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증오에 가까운 말을 했다. 그 이유를 조심스레 물었더니, “시골에서 조용히 농사짓고 살았는데 지인들의 권유로 집과 전답 다 팔아 서울로 이사와 그저 보통으로 살아보겠다는 소박한 꿈으로 정직하게 사업도 했고, 가정을 이루고 두 자녀 대학졸업 할 때까지 비싼 등록금을 다 대었건만, 자녀들이 취직은 고사하고 빚만 지고 현재까지 부인과 맞벌이를 하며 죽지 못해 겨우 산다”며 울먹거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자녀들에게 그 엄청난 대학 등록금만 출혈을 안 했어도 이렇게 빚을 지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 교육의 현실을 원망했고(필자도 서울에 열흘을 머무르는 동안 고등학교 2학년인 조카를 볼 수가 없었는데, 과목당 최소 50만 원 하는 학업수업을 밤 11시까지 또 하고 귀가해서였다), 자녀들이 대학만 졸업하면 경제적으로도 잘 될 줄로 판단한 자신까지 책망했다. 인생에 있어서 기본적인 생활들이 무너져 내리는 안타까운 현실의 사연들과 함께 최근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여야의 정치적 대응(지자제 선거로)들은 공통분모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의 유지와 향상은 국가의 정치(여야)의 공동적 합의에서 창출되는 것이기에 이 양자 즉, 국민(기본)과 정치(공동)는 따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민들의 기본적인 가정생활(경제, 사회, 문화, 교육, 윤리 규범)들이 무너져 내리고, 정치는 북한정부와 북한동족을 제대로 못 파악함으로 인해 분열을 심화한다면 과연 그간 어렵게 이룩한 피땀의 수고가 모두 허사가 되지 않을까? 점점 위기가 고조되는 갈등을 멈추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라도 모두가 수긍하는 큰 대지(원칙)를 잡고 세부적인 의견들에는 서로의 부분집합들을 차분하게 세워보자! 이제부터라도 서로가 합의한 공동약속에 모두가 순복하는 실천을 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그렇지 않고 계속 싸우고 비난하고 자기주장만 고집하여 분열하면 기본적인 삶들도 점점 무너져 모두가 다 공멸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도 악한 자(세력)들도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치단결(공동)하며,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원하는 것(기본)을 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눅11장)고 경고하셨다. 우린 그간 너무 오랫동안 이념과 감정으로(개인과 집단) 분열해 왔다. 이제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의 하나 됨(구체적인 공동목표)을 통해 이루시려는 뜻(세계선교)으로 대체한다면, 적어도 더 이상 ‘다시 이 나라(공동)에는 태어나지 않고 싶다’는 기본이 상실된 말을 그렇게 쉽게 듣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현재 우리가 갑론을박하는 내용은 전혀 모른 채, 단지 먹을 양식이 없어 죽음을 눈앞에 둔 이 천만 명의 북한주민과 어린이(기본)를 우리가 살려내려는 공동적 실천(이것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구체적인 아젠다)이 만약 미주의 한인교회와 신앙인들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교회들은 현재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남과 북의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며, 우리의 민족선교는 세계평화에 제대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자가 서울에서 만났던 그 택시기사 아저씨도 원래 바라고 살고 싶었던 그런 나라를 보게 되고 양식과 복음을 애타게 기다리는 북녘의 동족들에게도 주님의 나라가 조국산하에도 임하게 됨을 보게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우리의 기본(기도)과 공동(사랑)이 너무 절실하다.
박상원 목사(SAM시애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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