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 캔사스시티의 세인트폴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를 맡고 있는 전영호 목사가 최근 시카고를 방문해 후배 한인 교수와 유학생들에게 권면의 말을 전했다. 미연합감리교회 산하 신학교인 세인트폴신학교는 450명 학생이 공부 중이며 이 중 한인은 6명이다.

전 교수는 한국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한국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이후 콜게이트 로체스터 신학교에서 B.D. 학위와 M.Th. 학위를 취득했으며 드류신학교에서 폴틸리히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중 독일정부장학생으로 독일에서 3년간 공부했다. The North American Paul Tillich Society 회장을 역임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쳤고 한인으로서 The Center for Asian Studies의 편집위원, The Congress of Asian Theologians 등의 멤버로 활동해 왔다.

그는 M.Th. 학위를 취득한 1972년부터 강사 자격으로 미국 신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해 1983년부터는 세인트폴신학교에서 교수 자격으로 후학을 양성해 온, 한인 교수 1세대다. 그 당시만 해도 인종 차별이 뚜렷하게 존재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동양인이 교수로 왔다는 소식에 지역 언론들까지 찾아 와서 “당신이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알고 있다”면서 유교와 불교에 관해 물었다. 그가 “난 기독교를 가르친다”고 했더니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 교수로부터 성경개론 과목에서 좋지 않은 학점을 받은 한 흑인 학생은 “우리 아버지도 목사고 나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워 왔는데 당신이 뭔데 날 평가하냐”며 교수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리를 지르고 소동을 피웠다. 그 난리에 주변의 백인 교수들과 학생들까지 몰려 들었다. 전 교수는 차분히 “자네 아버지처럼 내 아버지도 목사지만 내가 자네보다 성경을 더 모를 수 있다고 인정하네. 그러나 교재에 보면 여기 이렇게 나와 있는데 자네는 이 부분을 그르게 판단하고 있네”라고 차분히 설명했다. 그 흑인 학생은 머쓱한 태도로 돌아갔고 백인 교수들은 전 교수를 격려하며 오히려 저 학생을 퇴학 처분하도록 조치하자고 했다.

전 교수는 “그럴 수 없다”고 그 학생을 변호했고 이 사건은 그렇게 무마됐다. 이후 전 교수가 총장의 만류까지 뿌리치고 더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떠나자 많은 학생들이 전 교수를 다시 강단으로 데려 오라며 총장에게 탄원했는데 그 일에 앞장선 이가 바로 그 흑인 학생이었다. 이 사건은 평생 그의 이력을 따라 다니면서 소수자로서 미국 신학교에 있는 한인 전영호 교수를 만들어 갔다.

그는 그동안 흑인을 비롯한 각종 소수자들이 미국의 인종 차별 문제와 싸우며 길을 열어 왔고 한인들도 그 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동양인이라면 미국 신학교 안에서도 입지가 적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기독교의 관심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가운데 한국은 아시아권 최대의 기독교 국가이며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미국 교회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기에 한인 교수들의 역할도 점차 증대되고 있단 사실이다.

전 교수는 후배 한인 교수들에게 “미국을 가르칠만한 실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라고 전제한 후 “동료 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중시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 신학교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미국인 교수들과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한인들이 훌륭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경쟁심을 갖거나, 오히려 남을 무시하는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다. 좋은 인간관계는 남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 들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스스로 낮추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설 수 없다”고 말했다.

후배 유학생들에게는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위해 공헌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미국에 유학 온 이상 미국교회와 자주 접하면서 세계적 안목과 경험을 쌓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이 익숙한 학문 분야를 계속 연구하는 것보다는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연구하면서 실력을 갖추면 어디서든지 인정받을 수 있는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