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의 左派的(좌파적) 특징은 사실 이상할 게 없다. 소수자·약자에 대한 사랑, 자비, 연민을 특질로 한 종교는 평등과 분배를 우선하는 레프트코드(left code)와 맥을 같이 한다.

한국 종교계의 惡臭(악취)는 좌파적 특징에서 나오지 않는다. 金正日이라는 국가와 민족의 절대적 惡(악)에 대한 寬容(관용)을 종교로 포장한 僞善(위선)이 문제인 것이다.

북한은 헌법 상 두 가지 개념을 갖는다. 하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정권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 살고 있는 2400만 동포들이다. 헌법의 해석에 따르면, 북한정권은 解體(해체)시켜야 할 反국가단체이며 북한주민은 解放(해방)시켜야 할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이 해체와 해방의 대상으로 구분되기에 이 나라 국민이 해야 할 親北(친북)의 대상은 북한정권이 아닌 북한주민이다. 민족공조, 민족주의의 대상 역시 「정권」이 아닌 「주민」이다.

북한정권은 國家(국가)와 憲法(헌법)의 窓(창)이 아닌 民族(민족)과 人權(인권)의 窓(창)을 통해 들여다 볼 때도 해체시켜야 할 대상이다.

金日成·金正日 父子는 인간이 가진 善惡(선악) 양면 중에서 惡(악)의 성질을 자극해 인간을 흉기로 만들었다.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피비린내가 한반도를 뒤덮었다. 「공산주의」라는 증오의 과학은 金父子에 의해 殺戮(살육)으로 표출됐다. 金日成은 1950년 외세인 중공을 끌어들인 南侵(남침)전쟁으로 52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았다. 金正日은 1990년대 개혁·개방을 거부한 채 체제에 적대적 계층에 배급을 중단했고 결국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金日成·金正日이 60년 간 통치한 북한의 오늘은 끔찍한 지옥의 모습이다. 북한은 굶주림에 몰려 식량을 훔치고, 소를 팔고, 전기선을 끊어 파는 경우까지 「公開處刑(공개처형)」 대상이다. 남한의 영화·드라마 비디오를 팔다가 걸려도 처형되고, 남한방송을 듣고 남한노래를 불렀다며 죽임당하는 곳이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국경을 넘는다. 脫北(탈북)은 북한에서 가장 큰 반역죄에 해당한다. 짐승처럼 유랑하는 탈북자들은 중국 내 15만~30만 명에 달하며 여성의 비율은 60~70%에 이른다. 충격적인 것은 탈북여성의 80% 이상은 인신매매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2003년 북한 당국은 20~30대 행방불명 여성이 15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는데, 대부분 중국에 팔려온 것이란 분석도 있다.

탈북여성들은 산간벽지, 유흥가 등으로 팔려 다니며 강제결혼, 性폭행, 원치 않는 임신, 각종 부인과 질병에 시달린다. 결혼을 해도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무시와 구타, 북한거주 가족에 대한 그리움, 不法체류신고 협박 및 체포 그리고 「强制送還(강제송환)」의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어느 날 들이닥친 중국 공안은 탈북자들을 잡아가고, 북한 당국은 변방의 구류장으로 끌고 간다. 변방의 구류장에서 수많은 탈북자들은 지금도 「뽐쁘질」·「통닭고문」·「비둘기고문」 등 저주스런 고문으로 죽어간다. 만일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강제송환되면 「강제낙태」·「영아살해」라는 유린을 당해야 한다.

북한은 「政權(정권)」과 「住民(주민)」이라는 二元的(이원적) 개념을 갖는다. 그리고 정권은 暴壓者(폭압자), 주민은 暴壓(폭압)당하는 소수자·약자이다. 진정한 종교적 양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폭압자에 대한 분노와 폭압당하는 이들에 대한 사랑, 자비, 연민을 느껴야 옳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많은 종교인들은 오직 폭압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살려달라며 부르짖는 同族(동족)의 절규엔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북한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고, 연장시키는 데 정력을 쏟고 있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주민이 아닌 정권을 도우며 「인도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다. 소위 「인도적」으로 정권을 돕는 종교인들은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황당한 주장에서 『그래도 주민에게 약간은 돌아간다』는 무지한 변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속내엔 동족의 아픔에 둔감한 완악한 마음과 정권을 도와야 남한의 평화가 온다는 얄팍한 이기심, 그리고 사상적으로 북한에 동조하는 반역적 이데올로기까지 자리를 틀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건 내가 아닌 남을 살리라는 종교적 神聖(신성)과는 거리가 먼 어두움이다.

고통 받는 북한동포를 인도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은 중국 내에서 돼지나 염소 값에 팔려 다니는 동포여성들을 구출하는 것, 탈북자와 조선족을 통한 직접지원, 對北삐라를 통한 物布(물포)작전(물건·식량 등을 삐라로 날리는 것), 지하 종교인에 대한 지원 등 다양하지만 종교계 主流는 이런 방식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종교인들이 북한정권이라는 절대 惡을 관용하면서 점차 善과 惡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 있다.

안보와 법치를 파괴하는 깽판세력과 연합하고, 무질서와 혼란의 향도 노릇을 자처하기도 한다. 한국의 고질적 병폐가 돼버린 불법시위 폭력집회 중앙엔 어김없이 기독교·천주교·불교의 거룩한 의복을 걸친 종교인들이 자리해 있다. 500명 넘는 경찰을 다치게 만들고 180대에 달하는 경찰버스를 불태운 2008년 촛불난동에 대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폭도들을 옹호하는 사제들의 모습은 대표적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비판받는 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상처와 망신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다. 그들이 외치는 정의와 사랑이 2010년 한반도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진심으로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임박한 북한정권의 붕괴를 대비하고 자유로운 민족통일과 풍요로운 북한재건의 미래를 함께 준비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리버티 헤럴드 김성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