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 선교의 주체와 대상, 내용과 시기”
하나님의 선교가 어떤 일(혹은 누구 때문에)로 멈출 수 있을까? 최근 거의 북한정부(북녘동족과 구별)가 일으켰다고 믿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로 우리들끼리 동족선교에 대한 말들이 많다. 이러할 때 몇 가지 동족선교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다시 한번 집어본다면, 선교는 그저 물질로 돕는 차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선교=지원’으로만 오해를 한다. 분명한 것은 선교의 내용은 복음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고, 선교의 주체는 바로 ‘성령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동족선교의 행위도 그 대상(북녘동족)과 내용(예수복음) 그리고 주체(하나님)를 정확히 인식함이 매우 중요하다. 비록 그곳이 북한땅일지라도 선교는 주님이 오실 그 날까지 중단될 수 없는 주님께서 명하신 일인 것이다.
만약에 우리민족의 초대선교사에 있어서, 대원군의 칼과 탄압이 무서워서 선교사가 오지 않았다면, 또 대동강에 내리자 마자 처참하게 순교한 선교사(대원군이 집정하여 쇄국정책을 펴고 있는 동안,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끝에 이 땅에서 처형된 영국 ‘토마스’ 선교사 등)들의 죽음 때문에 각 나라의 선교단체와 교회들이 더 이상 선교사님들을 보내지 않았다면(“코리아는 인권은 물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국가이고 은혜를 모르고 거짓말을 잘 하는 백성이므로 우리의 선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라며), 우리의 믿음과 교회가 오늘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까? 선교사들이 고백했던 글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2,000만의 한국백성들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마음을 볼 수 있고 결국 이러한 선교가 오늘의 한국교회를 있게 했다. 이렇듯 하나님의 선교는 인간세력의 거부나 도발 등 그 어떤 무력으로도 중단시킬 수 없다.
또 한가지 동족선교에 대해 분명히 알 것은 ‘선교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다. 동족선교의 대상은 다름아닌, 이번 도발 사태와는 전혀 무관한(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무고한 북녘동족(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숨어서 복음을 지키고 있는 주의 백성들 포함)들이라는 점이다. 창조이래로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의 술수는 우리의 시각에 혼선을 주는 데에 명수였다. 우리가 타협하지 말아야 할 대상(세상권세)과 우리가 사랑하고 긍휼을 주어야 하는 대상(구원시켜야 할 동족)을 교묘하게 동일화시켜서 우리의 선교대상에 혼선을 야기시켰다. 만약 우리가 동족선교의 대상을 구분하지 못해서 민족복음화를 위한 동족선교를 중단한다면 결국 누가 제일 쌍수를 들고 좋아하고 흠흉한 미소를 짓겠는가?
이제 하나님의 선교를 성령의 생각(틀) 안에서 해석하고 초대교회사의 선교(순교)를 따라서 실천해야 한다. 로마의 극악한 핍박(카타콤) 속에서 순교를 통한 믿음의 선배들은 결국 선으로 악을 이겼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각 시대와 공간과 문화를 지배했던 어둠의 세력들은 물론 유물사관의 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까지도 하나님의 선교(그의 사랑, 그의 복음)는 불변의 진리이심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왜 하나님의 능력을(찬송가 가사의 “우리 주 목소리 한번만 발하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믿는다고 하면서, 한 입김으로도 날려보낼 인간체제와 불법권력의 술수에 왜들 인간적 혈기만 내고 함께 모여 기도의 능력(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이 되시게 하는 행위)을 모색하지는 않는가! 이는 선교의 주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선교의 주체가 사람 혹은 단체가 된 경우)에 기인한다.
이제 우리가 더 많이 기도하고 뜻을 모아 선교의 주체(주도)가 하나님이 되시도록 해야 한다. 언제까지 찬반여부만을 따질 것인가? 주님께서는 육신의 몸(선교의 주체)을 입으시고 죄많고 악이 득세하는 이세상(선교의 대상)으로 침투(선교의 내용)해 오시지 않았나? 특별히 주님은 “나는 이스라엘의 길잃은 양(선교대상)에게로 보냄을 받았다”며 동족에 대한 선교를 우선시하며 결국 이방인의 구원도 이루셨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억압과 탄압 그리고 배고픔에 굶주린 북녘의 동족들을 곧 자기 자신이라고 오늘도 슬피 울부짖고 계시며 남은 동족의 구원(선교의 시기)을 우리더러 이루어 달라고 신음하고 계시지 않는가! 만약 그 암훌한 땅에서 ‘병들고 배고픈 동족들이 현재의 우리 자신들’이라면 과연 “그 x 때문에 선교하지 맙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어떤 경우와 상황이든 북한동족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선교는 그가 이루실 때까지 계속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꼭 한번 떠올려 보자! 우리들의 동족선교로 수많은 북녘의 동족들이 구원을 얻고, 이 세상 가장 끈질겼던 분단의 벽을 뛰어 넘게 하신 영화로우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당당하게 세계 만백성을 향해 그분이 하신 사랑을 증거할 날을,,, 만약 그날이 되어, 하나님의 놀라우신 한국선교의 완성으로 결국 세계 각국과 백성들은 야훼의 위대하심을 듣고 보게 된다면, 바로 동족선교가 곧 세계선교에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 아닌가!
‘우리의 연합된 마음이 동족의 구원을 기도할 때,
우리 동족들의 눈은 하늘의 영광을 보고, 세계 만백성의 귀는 야훼의 이름을 듣게 된다네…’
박상원 목사_SAM시애틀지부장
하나님의 선교가 어떤 일(혹은 누구 때문에)로 멈출 수 있을까? 최근 거의 북한정부(북녘동족과 구별)가 일으켰다고 믿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로 우리들끼리 동족선교에 대한 말들이 많다. 이러할 때 몇 가지 동족선교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다시 한번 집어본다면, 선교는 그저 물질로 돕는 차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선교=지원’으로만 오해를 한다. 분명한 것은 선교의 내용은 복음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고, 선교의 주체는 바로 ‘성령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동족선교의 행위도 그 대상(북녘동족)과 내용(예수복음) 그리고 주체(하나님)를 정확히 인식함이 매우 중요하다. 비록 그곳이 북한땅일지라도 선교는 주님이 오실 그 날까지 중단될 수 없는 주님께서 명하신 일인 것이다.
만약에 우리민족의 초대선교사에 있어서, 대원군의 칼과 탄압이 무서워서 선교사가 오지 않았다면, 또 대동강에 내리자 마자 처참하게 순교한 선교사(대원군이 집정하여 쇄국정책을 펴고 있는 동안,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끝에 이 땅에서 처형된 영국 ‘토마스’ 선교사 등)들의 죽음 때문에 각 나라의 선교단체와 교회들이 더 이상 선교사님들을 보내지 않았다면(“코리아는 인권은 물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국가이고 은혜를 모르고 거짓말을 잘 하는 백성이므로 우리의 선교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라며), 우리의 믿음과 교회가 오늘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까? 선교사들이 고백했던 글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2,000만의 한국백성들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마음을 볼 수 있고 결국 이러한 선교가 오늘의 한국교회를 있게 했다. 이렇듯 하나님의 선교는 인간세력의 거부나 도발 등 그 어떤 무력으로도 중단시킬 수 없다.
또 한가지 동족선교에 대해 분명히 알 것은 ‘선교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다. 동족선교의 대상은 다름아닌, 이번 도발 사태와는 전혀 무관한(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무고한 북녘동족(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숨어서 복음을 지키고 있는 주의 백성들 포함)들이라는 점이다. 창조이래로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의 술수는 우리의 시각에 혼선을 주는 데에 명수였다. 우리가 타협하지 말아야 할 대상(세상권세)과 우리가 사랑하고 긍휼을 주어야 하는 대상(구원시켜야 할 동족)을 교묘하게 동일화시켜서 우리의 선교대상에 혼선을 야기시켰다. 만약 우리가 동족선교의 대상을 구분하지 못해서 민족복음화를 위한 동족선교를 중단한다면 결국 누가 제일 쌍수를 들고 좋아하고 흠흉한 미소를 짓겠는가?
이제 하나님의 선교를 성령의 생각(틀) 안에서 해석하고 초대교회사의 선교(순교)를 따라서 실천해야 한다. 로마의 극악한 핍박(카타콤) 속에서 순교를 통한 믿음의 선배들은 결국 선으로 악을 이겼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각 시대와 공간과 문화를 지배했던 어둠의 세력들은 물론 유물사관의 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까지도 하나님의 선교(그의 사랑, 그의 복음)는 불변의 진리이심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왜 하나님의 능력을(찬송가 가사의 “우리 주 목소리 한번만 발하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믿는다고 하면서, 한 입김으로도 날려보낼 인간체제와 불법권력의 술수에 왜들 인간적 혈기만 내고 함께 모여 기도의 능력(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이 되시게 하는 행위)을 모색하지는 않는가! 이는 선교의 주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선교의 주체가 사람 혹은 단체가 된 경우)에 기인한다.
이제 우리가 더 많이 기도하고 뜻을 모아 선교의 주체(주도)가 하나님이 되시도록 해야 한다. 언제까지 찬반여부만을 따질 것인가? 주님께서는 육신의 몸(선교의 주체)을 입으시고 죄많고 악이 득세하는 이세상(선교의 대상)으로 침투(선교의 내용)해 오시지 않았나? 특별히 주님은 “나는 이스라엘의 길잃은 양(선교대상)에게로 보냄을 받았다”며 동족에 대한 선교를 우선시하며 결국 이방인의 구원도 이루셨다. 그리고 그는 아직도 억압과 탄압 그리고 배고픔에 굶주린 북녘의 동족들을 곧 자기 자신이라고 오늘도 슬피 울부짖고 계시며 남은 동족의 구원(선교의 시기)을 우리더러 이루어 달라고 신음하고 계시지 않는가! 만약 그 암훌한 땅에서 ‘병들고 배고픈 동족들이 현재의 우리 자신들’이라면 과연 “그 x 때문에 선교하지 맙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어떤 경우와 상황이든 북한동족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선교는 그가 이루실 때까지 계속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꼭 한번 떠올려 보자! 우리들의 동족선교로 수많은 북녘의 동족들이 구원을 얻고, 이 세상 가장 끈질겼던 분단의 벽을 뛰어 넘게 하신 영화로우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당당하게 세계 만백성을 향해 그분이 하신 사랑을 증거할 날을,,, 만약 그날이 되어, 하나님의 놀라우신 한국선교의 완성으로 결국 세계 각국과 백성들은 야훼의 위대하심을 듣고 보게 된다면, 바로 동족선교가 곧 세계선교에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 아닌가!
‘우리의 연합된 마음이 동족의 구원을 기도할 때,
우리 동족들의 눈은 하늘의 영광을 보고, 세계 만백성의 귀는 야훼의 이름을 듣게 된다네…’
박상원 목사_SAM시애틀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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