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한 일은 많았다. 20세기(1902~2000)를 사는 동안 교회는 그에게 많은 것들을 빚졌다. 교회 만이랴. 한국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 기관(대광 중·고등학교 등)을 설립하고 각종 구호단체(보린원, 월드비전 등)는 물론 연합기구(한기총)를 만들어 교회와 나라에 바쳤다.
그러나 가진 것은 많지 않았다. 지난 21일부터 서울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그의 유품들 중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것이 없다. 손때 묻은 성경과 즐겨 쓰던 금테안경, 노구를 지탱하던 지팡이에 낡은 신발 두 켤레, 깨알같은 글씨가 적힌 설교 노트들……. 모두 빛바랜 것들 뿐이다. 여전히 빛을 내고 있는 건 한켠에 보이는 몇 개의 상패들(템플턴상과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뿐.
“나는 솔직히 우리 자손들에게 남길 유산은 하나도 없다. 문자 그대로 나는 내게 속한 집 한 칸, 땅 한 평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부자였던 사람이다. 많은 유산은 남기지 못했지만 큰 뜻을 남겼고 헤아릴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을 상속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의 유품들이 그 어떤 것들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추모 세미나, “그의 사역 이 글에 다 담을 수 없었다”
소천 10주기를 맞은 올해, 그를 추모하는 많은 행사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28일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에서 10주기 추모 세미나가 열렸다. 박명우 박사(경민대), 변창욱 박사(장신대), 안교성 박사(장신대), 하충엽 목사(영락교회)가 그의 선교사상과 국내·외 선교 및 북한선교를 돌아봤다. 각 논문들을 모으니 1백 페이지가 넘었다. 발제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사역을 오늘 이 글에 다 담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박명우 박사는 “그의 선교사상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였고 하나님 나라에 의한 선교였고 하나님 나라의 선교였다”며 “이런 하나님 나라의 중심성은 현대 선교신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인 선교의 양극성을 극복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창욱 박사는 “한국의 개신교회는 지난 세기에 경험했던 획기적이고 폭발적인 성장을 향수로 간직하면서 미래의 방향을 심히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며 “한경직 목사는 영혼만 치유했던 것이 아니라 육체도 치유했고, 개인만 치유했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세상도 치유하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을 아우르는 통전적이며 전인적인 봉사를 했다. 그의 이러한 선교신학은 정체 내지 쇠퇴기에 접어든 한국교회에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교성 박사는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선교적 교회였기 때문에, 서구교회와 달리 초교파선교회가 아닌 교단선교부가 국외선교를 감당했고, 교단 정치가 선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한경직 목사가 노회 및 총회 등 교단에 영향력을 미치는 교단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과 개교회의 영향력이 큰 한국교회에서 영락교회를 담임했다는 사실은 그가 선교사상가이기보다 선교운동가였고, 선교신학의 활성화보다는 선교사역의 동원화에 더 크게 기여했음을 보여준다”고 한경직 목사의 실천적 삶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하충엽 목사는 “한경직 목사가 북한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통해 북한을 돕지 않았더라면, 템플턴상의 상금을 북한선교를 위해 내놓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북한선교사역의 공간이 창출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영락교회 북한사역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직 선교의 틀을 신학적으로 다듬기만 한다면…”
그러나 박명우 박사는 “한국교회가 이토록 좋은 신학적 보고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가 한경직 선교의 틀을 여러 가지 신학적 방향성으로 다듬기만 한다면 한경직의 신학은 한국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세계교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신학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경직 목사가 생전에 보던 성경에는 이런 기도문이 적혀 있다.
“서울 영락교회는 진리의 등대, 생명의 원천으로서 영원히 민족복음화의 중심, 자유 민주주의의 보루, 사회 정화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박명우 박사의 말대로 한국교회가 한경직 목사의 신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무엇보다 그의 삶을 따라 산다면 이 기도문 첫 머리의 ‘서울 영락교회’가 ‘한국의 모든교회’로 바뀌어 목회자들의 성경에 적히지 않을까. 영락교회에 걸린 ‘한경직 목사님은 과거가 아닙니다. 미래입니다’라는 글귀가 꽤 오래 마음을 붙잡는다.
그러나 가진 것은 많지 않았다. 지난 21일부터 서울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그의 유품들 중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것이 없다. 손때 묻은 성경과 즐겨 쓰던 금테안경, 노구를 지탱하던 지팡이에 낡은 신발 두 켤레, 깨알같은 글씨가 적힌 설교 노트들……. 모두 빛바랜 것들 뿐이다. 여전히 빛을 내고 있는 건 한켠에 보이는 몇 개의 상패들(템플턴상과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뿐.
“나는 솔직히 우리 자손들에게 남길 유산은 하나도 없다. 문자 그대로 나는 내게 속한 집 한 칸, 땅 한 평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부자였던 사람이다. 많은 유산은 남기지 못했지만 큰 뜻을 남겼고 헤아릴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을 상속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의 유품들이 그 어떤 것들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추모 세미나, “그의 사역 이 글에 다 담을 수 없었다”
소천 10주기를 맞은 올해, 그를 추모하는 많은 행사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28일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에서 10주기 추모 세미나가 열렸다. 박명우 박사(경민대), 변창욱 박사(장신대), 안교성 박사(장신대), 하충엽 목사(영락교회)가 그의 선교사상과 국내·외 선교 및 북한선교를 돌아봤다. 각 논문들을 모으니 1백 페이지가 넘었다. 발제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사역을 오늘 이 글에 다 담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박명우 박사는 “그의 선교사상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였고 하나님 나라에 의한 선교였고 하나님 나라의 선교였다”며 “이런 하나님 나라의 중심성은 현대 선교신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인 선교의 양극성을 극복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창욱 박사는 “한국의 개신교회는 지난 세기에 경험했던 획기적이고 폭발적인 성장을 향수로 간직하면서 미래의 방향을 심히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며 “한경직 목사는 영혼만 치유했던 것이 아니라 육체도 치유했고, 개인만 치유했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세상도 치유하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을 아우르는 통전적이며 전인적인 봉사를 했다. 그의 이러한 선교신학은 정체 내지 쇠퇴기에 접어든 한국교회에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교성 박사는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선교적 교회였기 때문에, 서구교회와 달리 초교파선교회가 아닌 교단선교부가 국외선교를 감당했고, 교단 정치가 선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한경직 목사가 노회 및 총회 등 교단에 영향력을 미치는 교단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과 개교회의 영향력이 큰 한국교회에서 영락교회를 담임했다는 사실은 그가 선교사상가이기보다 선교운동가였고, 선교신학의 활성화보다는 선교사역의 동원화에 더 크게 기여했음을 보여준다”고 한경직 목사의 실천적 삶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하충엽 목사는 “한경직 목사가 북한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통해 북한을 돕지 않았더라면, 템플턴상의 상금을 북한선교를 위해 내놓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북한선교사역의 공간이 창출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영락교회 북한사역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직 선교의 틀을 신학적으로 다듬기만 한다면…”
▲ 고 한경직 목사가 생전 사용했던 성경. 그의 기도가 적혀 있다. ⓒ 김진영 기자 |
한경직 목사가 생전에 보던 성경에는 이런 기도문이 적혀 있다.
“서울 영락교회는 진리의 등대, 생명의 원천으로서 영원히 민족복음화의 중심, 자유 민주주의의 보루, 사회 정화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박명우 박사의 말대로 한국교회가 한경직 목사의 신학을 계승 발전시키고, 무엇보다 그의 삶을 따라 산다면 이 기도문 첫 머리의 ‘서울 영락교회’가 ‘한국의 모든교회’로 바뀌어 목회자들의 성경에 적히지 않을까. 영락교회에 걸린 ‘한경직 목사님은 과거가 아닙니다. 미래입니다’라는 글귀가 꽤 오래 마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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