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안티기독교의 득세와 관계없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생명을 걸고 이 한 마디를 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라틴어로 “Christianus Sum”이라고 외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 <초대교회 순교록-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가 출간됐다.

합동총회 출판국 브랜드인 ‘익투스’가 펴낸 이 책은 “다원성과 관용을 미덕으로 하여 신앙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복음이 약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생생한 기록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용기와 신앙을 배우게 함에 있다”고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다. 최근 WCC 개최를 둘러싼 논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책은 시간이 흐르면서 덧입혀지고 채색이 덧칠될 가능성이 있는 전설이나 설화, 사화들과 달리 객관적인 당시 재판 기록과 역사적 서신들을 직접 번역했다. 이차 번역인 영어도 배제한 채 라틴어와 헬라어 본문을 직역했다.

예화로 많이 알려진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캅의 순교 이야기도 당시 기록물로 정확히 옮겼다. “여든여섯 해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겼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나쁘게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내가 저주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폴리캅은 체포되기 사흘 전 기도하는 중 보았던 베개가 불에 타는 환상처럼 팔이 묶인 채로 불꽃에 사그라질 운명이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불꽃은 둥근 천장을 가진 방의 형상을 만들어 내며 타오르며 마치 바람을 가득 받은 배의 돛처럼 불룩해져서 순교자의 몸을 사방으로 둘러쌌다. 불 한가운데 서 있던 그의 몸은 타지 않았고, 용광로 속에서 정련되는 금과 은처럼 불 속에 그대로 있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말할 수 없이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고, 이교도들은 폴리캅의 몸을 불로 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형 집행인에게 단검으로 찌를 것을 명령했다. 명령을 이행하자 상처에서 많은 피가 쏟아져 나와 타오르던 불은 꺼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모든 군중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선택된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이 놀라운 차이에 놀라고 말았다.

책에는 폴리캅 이외에도 그의 제자 이레네우스, 저스틴 등 35편에 이르는 순교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름 없던 가난한 농부와 여인들, 백부장과 그의 재판을 기록하던 속기사, 상인과 노예들까지 거룩한 고백의 행렬에 동참하고, 자신이 부른 그 이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던졌다.

역자인 김영희 교수에 따르면 순교 기록은 순교자들에 대한 심문과 판결 과정을 법정 속기사들이 기록한 관청의 공식 기록과, 순교자들의 재판에 직접 참석해 재판 과정을 지켜본 기독교인들의 증언 등 두 가지로 분류된다. 폴리캅의 경우 두번째 종류다. 책에는 서기 120-372년에 이르는 다양한 순교 이야기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