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울면서 이 세상에 나와서 울면서 떠나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문제에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교통순경이 차를 잡았습니다.
순경 : 신호 위반입니다. 면허증 좀 주세요.
운전자가 창을 열면서 말합니다.
운전자 : 좀 봐주세요! 낮에 술을 마셨더니.
순경: 아니 음주운전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를 더합니다.
아내 : 한번만 봐 주세요 이이가 아직 면허증이 없어
서 그래요...
순경 : 아니 무면허까지
뒤에 있던 할머니와 손자가 가세해서 투덜거립니다.
할머니 : 거 봐라. 훔친 차는 얼마 못 간다 그러지 않았냐?.
손자 : 내가 은행 털 때부터 알아 봤어.
문제더미 속에 있는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우리가 가진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답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8장에서 공부한 것을 정리해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 ‘나는 선하지 못해, 나는 변하지 못할 거야’ 라는 생각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으로 자유하다는 것과 어떠한 것도 우리를 죄의 지배에 묶어 놓을 수 없다. 승리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살면서 모든 것이 다 허물어져 가는 느낌, 그러한 절망감에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십니다. 이러한 문제를 잘 다루기 위해서 세 가지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어떤 고난을 당하든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결코 혼자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고난도 역경도 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눈다는 사실입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여러분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누구와 나누십니까? 누구와 말을 합니까? 어떤 분은 이런 경우 상의 할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긴장이 고조가 됩니다. 어떤 분은 이럴 때 불평불만이 꽉 차 있는 사람하고
상의를 합니다. 그럴 때 바로 쓴 뿌리가 자리를 잡습니다. 이 사람은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하기에 바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요즈음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 뭐가 힘들어 난 이런 것도 다 했는데. 몸이 안 좋아요! 그럼 난 이런 병도 앓았는데. 아이들 땜에 정말 어쩔 줄 모르겠어요! 그럼·우리 애들은 이 정도였는데. 항상 자기 문제를 들고 나와서 말하는 사람 입을 막아 버립니다. 그럴 때 쓴 뿌리가 쌓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기를 잘하는 사람하고 상의 하게 되면 결국 나약함만 더 생기게 됩니다. 도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를 예수님과 나누면 다릅니다. 왜냐면 그분은 우리가 겪은 그 모든 고통을 함께 다 겪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도 잃는 슬픔도 겪었습니다. 가슴 아픈 배신도 당했습니다. 유혹도 경험 했습니다. 어리석은 제자들 3년 반이나 데리고 다니면서 좌절도 많이 경험 하셨습니다. 가족 간의 이해부족의 고통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슬픔, 좌절, 연민, 고통당할 때 주님께로 달려가면 그분은 이런 것을 우리와 같이 체험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로 하시고 함께 그것을 담당해 주십니다. 이것이 참된 Fellowship이고 주님은 이런 교제로 인해서 우리와 점점 깊이 사귐이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이라는 걸 당하는데 고난 속에서 우리는 공부를 합니다.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이 있다, 이렇게 말한 분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1학년은 생각하기를 이런 고난이라는 문제를 만나면 불평과 원망부터 합니다. 왜 하필 ‘나’입니까? 2 학년은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고통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합니다. 불가불, 억지로, 억지로 참고, 참고 나가는 그런 사람이 2학년입니다.
3학년은 ‘나는 고난을 견딜 수 있다. 약속을 믿고 고난을 견딜 수 있다’ 합니다. 가능성까지 생각을 한답니다. 그러나 4학년이 되면 ‘나는 이 고난을 겪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수준입니까? 고난학교의 우등생은 ‘이 고난은 내게 필요한 것이다.’ 고난이 주는 의미를 생각합니다. ‘적어도 내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어느 목사의 어린 아들이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전에는 흔들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신앙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선교지에서 하나님을 섬겨 왔고 그들의 자녀들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런 일을 그들에게 행하는가? 목사의 슬픔은 그를 비틀거리게 했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그 일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였습니다. 어느 날 나이가 지긋이 든 목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보게 내가 그것을 말할 수 있네 하나님도 역시 그 일로 인하여 울고 계신다네 "
이 대답은 슬픔에 싸인 목사의 마음속 깊은 곳에 공명하는 화음을 울려 주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고 우리에게 생겨나는 일들은 그것들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만큼 하나님도 슬퍼한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와 함께 담당을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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