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우리가 변화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새로운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새로운 아버지십니다. 그 분과의 새로운 관계로 인해서 저와 여러분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새로운 관계가 어떻게 변화를 가져 오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친구를 닮게 됩니다. 그 친구가 가지는 관심에 나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친구가 먹는 음식 나도 따라 먹게 되고 친구가 잘 쓰는 말·나도 모르게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게 되면 원하든 원치 않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14-17절은 새로운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있는 4가지 증거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다는 것이 그 증거 입니다.

매번 우리가 성령께서 인도 하시는 대로 행하면 우리에게 확신이 생깁니다. 바로 우리에게 아버지가 계시구나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다양한 길로 인도 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어떨 때에는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글씨를 쓸 적도 있습니다. 수많은 당신의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인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불기둥도 떠나가고 손가락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선지자도 더 이상 없는 지금엔 어떻게 인도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을 여러분과 제 마음에 두셔서 마치 나침반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가 성령님을 인도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 하시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아들의 영을 받았음으로 새로운 관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여러분 양자란 말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다지 높게 평가되지 못하지만 이 성경이 쓰인 당시 로마의 문화권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특권으로 간주 했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 로마 사람들은 친 자식보다도 양자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양자를 삼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가정교사를 붙여줍니다. 아주 우수한 가정교사를 통해 그의 부모가 어떤 분 이가를 잘 알려주고, 부모가 원하는 교육을 충실하게 시킵니다.

친 자식은 자기 호적에서 제 할 수가 있지만 한번 양자로 입적이 되면 취소가 불가한 것도 이러한 특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양자는 친자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유산을 똑같이 물려받으며 부모의 성을 자기의 성으로 가지고 모든 특권을 동일하게누리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였던 네로도 양자 이었습니다. 양자가 황제도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대하실 때 무서움이 아직도 있습니까? 그것은 잘 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자녀 관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해서 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보면 무서운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마스게임을 해마다 연습하는데 그대 체육선생님 생각만 해도 고개가 설레설레 돌아갑니다. 그분의 몽둥이가 조금만 꽤 부리고 나태하면 날라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만 보면 다들 슬슬 피합니다. 그런데 유독 같은 반 학생이 그 분을 너무 좋아 합니다. 스스럼없이 웃기도 하고 어떨 땐 돈도 타갑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학생의 아버지가 바로 그 체육 선생님 이셨던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는 무서운 분이 아니고 자기를 낳아 주신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섭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그걸 생각 하면서 아 그때 우리는 종의 영을 가졌구나.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운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3. 새로운 관계의 또 하나의 증거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 것입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아바 아버지라는 말은 우리말로 하면 경칭이 아닙니다. 아버님도 부친님도 아닌 아빠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합니다. 왜냐? 그들은 아들의 영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아직도 생소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주기도문이라 하는데 거기에 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라고 기도가 시작이 됩니다. 당시에 예수님이 헬라어가 아닌 아람어를 쓰셨다면 아람어에는 아버지라는 존칭이 없음으로 아빠의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빠 얼마나 놀라운 표현 입니까? Daddy~~ Papa~~ 이 표현 속에는 사랑의 극치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친밀한 관계 속에 우리가 있는가를 알려 줍니다.

4. 성령이 내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그분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을 친히 성령님께서 증거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그 분은 끈임 없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의 유혹에 빠졌을 때에도, 우리가 실패 했을 때에도 계속 우리로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로 인해서 새롭게 변화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변하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실패한 순간에 스스로 면목이 없어서 사단의 미혹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속성이 우리를 새롭게 이끕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변화 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로 인해서 우리는 실패 했어도 일어 설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점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 대문에 인생이 공허합니다. 인생이 허물어질까 걱정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무신다고 해도 다시 세우시기 위해서 허무시는 분입니다. 마치 빌딩을 짓기 위해서 초가집을 허무시는 것과 같습니다.

거룩한 건설을 위해서는 거룩한 파괴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 큰 것을 세우시기 위해서 어떤 때에는 우리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은 것들을 무너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 하시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에 실패 합니다. 병상에 눕게 하십니다.

미국에 예수를 잘 믿는 목재소 직원이 있었습니다. 마흔 넘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니던 목재소가 문을 닫는 다는 것입니다. 실직 통지서가 중년의 남자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입니다. 그는 충격 속에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 합니다. 하나님이 이제 까지 내가 주님과 동행 하였고 기도 하며 살았는데 어찌 이렇게 큰 시험을 주십니까? 이렇게 부르짖는 가운데 “ 작은 모텔을 시작해 봐라 많은 사람들이 불륜의 관계를 맺는 장소를 제공하는데 쓰이는 곳을 많이 사람들이 기분 좋게 묵을 수 있는 건전한 숙박업을 시작해 봐라~"하는 마음의 음성을 듣고는 조그마한 모텔을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작은 모텔에 은혜를 주셔서 세계적인 체인망을 거느린 대 호텔 사업체로 번창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 호텔이 바로 Holiday Inn입니다.

만약 이 사람에게 거룩한 충격과 파괴가 없었다면 늙어 죽을 때 까지 이 목재소에서 저 목재소로 전전하는 직공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큰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게 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거룩한 파괴를 각오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 큰 일꾼으로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