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죽음과 삶이 눈앞에 있습니다. 재판의 결과가 어떠하든 어떤 상황을 만나든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의지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하늘에 둔 기대와 소망으로 부끄럽지 아니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과 같이 살든지 죽든지 이전과 같이 더욱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를 증거함으로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존귀하게 되는 삶이 되길 증거하고 있습니다.

23절을 보면 죽기를 원하기도 하고 살기를 원하기도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모하는 주님을 눈으로 만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세상을 속히 떠나 주님을 만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구원받을 사람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27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계신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치욕적인 말입니다. 믿는 자가 행함을 나타내야 하는데 믿지 않는 자들보다 못한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 합당하고 성화가 드러나는 삶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신앙의 길을 걷다 보면 어려움을 주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에서는 바울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이지만 기쁨의 서신입니다. 4절에 보면 간구할 때마다 기쁨으로 기도하고 기쁨으로 간구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기도가 기쁨이 됩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나에게 복이 되고 주님을 대면하는 시간이며, 응답받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인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이런 저런 방법이지만 한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면 기쁘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돌아올 때 기쁜 것입니다. 나에게 영혼이 돌아올 때 기쁨이 있습니까? 내가 구원받았다고 다가 아닙니다.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고 변화 받는 다는 것이 소중한 것입니다.

시애틀 땅을 전부 준다고 해도 내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절대로 바치지 않습니다. 내 영혼이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영혼이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얻어도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냐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영혼이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 기쁨이 되살아나기를 축복합니다.

25절에도 보면 믿음의 진보와 기쁨이 나옵니다. 우리가 상대방이 믿음을 갖고 돌아오면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돌아오는 것도 기쁘고, 그 영혼에게 믿음의 진보가 있을 때 기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기쁨입니다. 기도하는 기쁨, 영혼이 돌아오고, 주안에서 잘 자라는 기쁨, 이것을 우리가 소유하며 살기 바랍니다.

29절에 보면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해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의 영광도 있지만 광야도 있고 음침한 골짜기도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국에 있을 천국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길을 가도 주님과 함께 걷는다면 결코 헛된 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