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좋은 생각하며 사시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좋은 행동하며 사십시다.” 우리교회 슬로건입니다. 외치면서도 나에게 너는 그렇게 사느냐? 고 물을 때가 많습니다.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다가 얻은 결론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30대 어떤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이 하소연을 합니다. 부부싸움만 하면 아내가 남편에게 대든다고 합니다. “너 수능시험성적 몇 점이야!” 아내는 남편보다 공부를 잘해서 수능시험 점수를 25점 더 받았다 합니다. 이것이 남편에게는 평생의 짐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하도 지긋지긋해서 “그놈의 수능시험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다.”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공부 잘하는 여자하고는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주변에 조언하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기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기쁨이 장점이 되지 못한 다면 그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복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각색의 병자를 고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능력이 대단하십니다.” 하며 고침 받은 사람을 보고 기뻐해줍니다. 그런데 기뻐해 주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런 일에는 본인도 기쁘지만, 이웃들도 기쁜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요, 그 사람의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에 뿌리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기뻐할 줄 모르는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쳤다면 기뻐해야 되는데 오히려 “안식일을 어겼네.”라고 트집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병든 생각과 병든 행동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도하라, 생각하라, 행하라, 을 말하기 이전에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나님도 창조를 마치신 후에 “좋았더라!” 고 하셨습니다. 대상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은 능력입니다. 어떤 일을 못하더라도 기뻐해 줄 수 있는 것은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는 분이 있습니다. 본인은 전도 하지 못해도 그런 사역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계속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새벽기도를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새벽 기도하는 것을 기뻐해 줍니다. 그런 사람이 있기에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의 믿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한 것” 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무엇을 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그저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장차 올 메시야를 바라보고 기뻐했다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심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비판적이고 공격적입니다. 어떤 것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일이 잘되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면 “그거 우연찮게 한번 됐겠지?”하면서 빈정대고 맙니다. 자세히 들어보지도 않고 가장 나쁜 가능성만을 상상하며 말해버립니다. 어떤 초신 자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에 기뻐할 수 없는 것은 병든 것입니다. 장점이 기쁨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