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없어졌기 때문에 누가 가져간 줄 알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리아를 부르실 때도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우리 주님의 시신을 가져갔다면 돌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사람들과 몇 몇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이어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 곁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근심하였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사랑으로 섬겼지만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울게 됩니까?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고난이 있을 때 울게 됩니다. 그 상황이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셨음에도 슬퍼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며 울고 있진 않습니까?

마리아가 운 이유는 결과를 몰랐기 때문에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생명이었고 부활 승천하시어 우리의 주가 되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예수님의 무덤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만을 찾고자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결과를 모르고 과정만 바라보며 울고 있진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모두 과정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끝이라고 생각될 때 예수님은 우리의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끝이 아닌 것입니다.

쌀을 가지고 밥을 지을 때 물로 여러 번 씻어야 합니다.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잘 씻어야 이후에 깨끗한 물이 나오고 그제야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습과 인생가운데 더럽고 버려야 할 것들을 여러 가지 환경으로 다듬으시고 씻으십니다.

우리가 부분만 바라보면 암담하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바라보면 결코 주저앉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가운데 눈물이 있다면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삶 가운데 오셔서 죽음을 이기시고 세상의 모든 권세자들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첫 말씀은 ‘평안 하라!’ 입니다. 죄와 근심, 두려움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인간들을 향해서 죄와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서 평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숨을 쉬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먼저는 하나님 생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은 우리의 숨과 우리의 힘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힘과 생명을 받아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인 되었던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중보자가 되십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와 사망을 이기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힘입어 부활의 증인된 사명으로 복음전파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