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누구며, 그 분이 무엇을 하셨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나 자신은 초점에서 제외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고, 은혜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탕자(눅15장)는 자기 자신이 행한 잘못이나 죄가 무거웠지만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관용, 변함없는 사랑을 기쁨으로 받아들였고 자유함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형은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도 자유로워지기를 포기했습니다.

사소한 염려와 비판적인 의혹에 갇혀서 매일의 삶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인상이 늘 어두웠으며, 걱정 많은 환자처럼 규율과 규칙에 매였습니다. 나누어주는 즐거움을 몰랐고, 완고했으며, 늘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원망하고 불안하고 때로는 자학했습니다.

은혜를 소멸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직장에도 있고, 교회 안에도 있으며, 심지어 가정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비판하고, 정죄하며, 삶의 기쁨과 희망을 짓밟는 사람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개조차 들 수 없는 나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이 놀라운 복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은혜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쁘고 행복해서 가슴이 떨립니다.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 세상 만물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이것이 1단계입니다.

두번째 단계는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가면서 나 자신의 죄가 얼마나 깊고 무거운지 깨닫게 되고, 그래서 겸손해지는 단계입니다. 벼가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이듯, 내가 대단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 안에 욕심과 위선과 음탕과 헛된 자랑과 허망한 생각들을 직시하고, 주님께 고백하면서 토해내고 싶어집니다. 진실하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단계가 바로 2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 단계는 주님께서 나를 위해 겪으신 고난과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파서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됩니다. 주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종이 되어 행복해지고, 주님 위해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인생은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직도 주님의 사랑을 모르는 영혼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그들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4-15)

예수님을 아직까지 영접하지 않은 분들을 섬기고자 하는 갈망이 나의 생을 이끄는 것입니다. 스포켄에 이런 사람이 많아질 때,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계절이 속히 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사순절 네번째주일에, 이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