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리스도 안에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벌주시는 분이 아니고 교정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시103 10-12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심지어 죄를 짓는 다고해도 하나님의 심판- 징벌을 받는 것이 아니고 마치 부모가 자녀를 교육함 같이 우리를 고쳐주시고 바르게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못 했을 때 단지 벌을 주고 마는 부모는 자녀를 생각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만을 생각 하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화풀이를 한 것뿐입니다. 네가 내 인생을 얼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를 귀찮게 하고 있다. 이런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가 그 잘못을 되풀이 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다루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올바른 것을 하도록 이끄시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 된 행동을 하면 이로 인해서 죄의식을 갖는데 하나님이 벌주실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동차가 시동이 안 걸리면 하나님이 벌주시는가 보다. 일터에서 일이 안 풀리면 아~~하나님이 벌주시는 가보다. 어떤 채식주의 자는 타코에 고기 조각이 잘못 들어가 있어도 ‘하나님이 나를 달구시는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 화내고, 외면하고, 심지어는 떠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단순하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켜서 성숙으로 이끄시는 분이지, 화풀이를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등을 돌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인데 왜 상속자를 버리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 입니다. 부족하고 연약 하다고 자신의 가족을 버리는 사람은 인간 세계에서도 사람 취급을 못 받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시겠습니까?

물로 인간세계에서는 자신에게 해를 끼치거나, 죄를 지은 전과자를 향해서 싸늘한 시선을 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따스한 품으로 맞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정죄 하지 않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4. 정죄함이 없다는 뜻은 우리를 향한 축복을 거두시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엡1:3)

누가 이 축복을 받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입니다. 물론 우리가 어떨 때에는 이러한 복을 스스로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차버리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결과로서 이러한 것이 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축복 주시는 것을 멈추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으면 손해를 받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죄가 운데 빠지게 되면 좋은 기회를 상실 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엉망이 됩니다. 심지어 가정도 깨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복을 차버린 것이지 하나님이 복주임을 중단 한 것은 아닙니다.

에서가 스스로 자기 복을 팥죽 한 그릇에 판 것이지 하나님이 그 축복을 멈추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한 식탁에 연회에 초대되어 앉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식탁에는 끊임없이 음식이 나옵니다. 그러나 혹시 실수로 음식을 바닥에 떨어뜨린다거나 아니면 피치 못할 일로 음식을 버린다면 청해 주신 분에게는 예의가 아니지요 이런 것을 하나님이 아시면 매우 서운해 하시겠지요. 그리고 우리 자신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 상에서 떠나라 이런 말씀은 안하신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바로 이러한 축복에서 끊어져지지 않음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이러한 축복을 허비 하고 충분히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후회하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축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라이선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피하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치 않음으로 우리도 우리자신을 정죄 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려고 자기 스스로가 자신에게 벌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 하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 하는 것을 신성 모독이라 부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치 않는다면, 우리도 스스로를 정죄 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자유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지난 로마서 강해를 통해서 우리는 모든 인류가 두 가지로 양극화 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아담 안에 있든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 있던지 말입니다. 아담 안에 있으면 죄 짓고 타락하고,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된 채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삶으로 새 창조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죄함이 없는 자유로운 삶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마치 중력의 법칙과도 같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공중으로 던지면 반드시 땅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체동역학이라는 분야를 보면 일정한 스피드를 각도를 주어서 가하면 물체가 중력을 능가해서 공중으로 뜬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비행기와 같은 거대한 물체도 날라 다닙니다. 이 죄와 사망의 법을 능가하는 새로운 법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2절에 나오는 성령의 법인 것입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7장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보았습니다. 나는 곤고한 자라는 탄식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인 공간에 성령께서 오시니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8장에 이 성령이라는 단어가 무려 19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변하게 하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의 법을 다른 법으로 대체 하실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죄와 사망의 법을 성령의 법으로 바꾸시는가? 3-4절에 보면 여기에는 다섯 가지가 포함됩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1.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2. 그리고 보내신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신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천사의 모습도 아니고, 단지 대사나, 메신저로 오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와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왜 일까요?

3. 그것은 바로 이런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러, 속죄의 제물로 오신 것입니다.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3) For what the Law could not do, weak as it was through the flesh, God [did:]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and [as an offering] for sin,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구약에서 보면 속죄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속죄제는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와는 다르게 죄라는 요소가 이 제사에는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죄가 고백되어지며 심판이 있고 피 흘리는 희생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내 죄에 대한 죄 값을 어떻게라도 치르게 해 주시옵소서 해서 짐승을 잡아서 그 피로 속죄 하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그 제사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입니다. 궁극적인 제사는 바로 우리 예수님이 제물 되실 때에만 완전히 효력이 발생 하는 것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4. 그럼 이것으로 무엇이 성취 된 것입니까?

어떤 효력이 발생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정죄를 받으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정죄함을 받지 않지요? 네~·주님이 이미 정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 한 죄에 대해서 이미 정죄를 받으면 같은 죄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 복음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5. 이로 인해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충족 된 것 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대로 순종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성령께서 내 속에서 역사 하시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안 되는데 성령께서는 된 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는데 성령이 우리 속에서 역사 하시면 도저히 불가능 하게 보이던 일들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속담에 기는 놈 위에 뛰는 놈이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이런 말이 있는데 요즈음 한 가지가 더 있다고 합니다. 나는 놈 위에 붙어 다니는 놈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날개가 없기 때문에 결코 날지 못합니다. 그러나 날 수 있는 길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나는 놈에게 붙어 있으면 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법이 원하는 수준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에게 붙어 있으면 같이 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저에게 역사 하실 때에 능히 모든 일들을 감당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갈 때에 갈등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갈등에서 실패하고 패배 한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를 정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그때에 우리는 성령님의 힘을 빌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실패와 죄책감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다시 일어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영적인 싸움을 새롭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 안에서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