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이다. 예수님하면 떠오르는 말이 사랑이다. 사랑의 나눔이 없는 교회는 더 이상 예수님과 상관없다. 교회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에 대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다. 좋은 소문이 나는 교회가 부흥한다.

사랑을 배푸는 것은 말 이상의 수고가 따른다. 사랑의 수고에는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자녀를 양육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돈을 생각해보자. 출산부터 18세까지 양육하는데만도 수 만불이 들어간다. 대학 학비에서 혼수비용까지 부담한다면 엄청난 액수다. 이게 다 사랑의 수고다.

교회가족 사이에서도 사랑의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사랑의 나눔이 일상적인 일이 된 교회가 좋은 교회다. 대단한 일로 생각하면 못한다. 어려울 때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것은 가족이나 연인들이면 누구나 하는 일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생활비를 줬다고 대단하고 특별한 일을 한 것인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 몸에 쓸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다. 말로 끝내는 사랑은 가믐에 비를 내리지 않는 구름과 같이 야속하고 허망하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말로만 “평안을 기원한다, 춥지 않게 잘지내라, 몸상하지 않게 잘 챙겨 먹어라” 그러면서 그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약2:15,16참고).

‘비밀 산타클로스’ 래리 스튜어트(58)는 26년간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워싱턴• 뉴욕•시카고• 캔사스시티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눠준 금액이 약 130만달러나 된다고 한다. 그는 1971년 겨울 휴스턴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당시 회사가 망해 이틀 동안 굶다가 한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시켜먹고는 지갑을 잃어버린 척했다. 그 때 식당주인이 다가와서 바닥에서 20달러를 주운 척하며 “아 이 사람아, 돈을 떨어뜨린 것 같네”라며 손에 쥐어 줬다. 도움받은 고마움이 평생 돕는 삶을 살게 만들었다.

어느 예화집에서 읽은 ‘마음에 붙이는 일회용 반창고’ 이야기다. 수지라는 어린이가 최근에 딸을 잃고 슬퍼하는 이웃집 아주머니를 찾아갔다. 수지는 아주머니에게 “엄마가 그러시는데 아줌마가 딸을 잃어서 마음에 상처가 났고 그래서 너무 슬프다고 그랬어요.” 수지는 일회용 반창고를 건네며, “아줌마, 마음에 난 상처에 이걸 붙이세요. 그러면 금방 나을 거예요.” 아주머니는 갑자기 목에 메이고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그녀는 수지를 품에 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고맙다. 수지야, 정말 고맙구나. 이 반창고가 내 상처를 금방 낫게 해줄 거야.”

사랑은 고통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조직이다. 누군가 암의 고통 속에 죽어갈 때 안됐다는 마음이 들지만 고통까지 느껴지진 안는다. 그러나 어린 자녀가 기침으로 괴로워할 때 기침소리는 가슴을 찔러온다.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교회는 혈육처럼 사랑의 신경조직이 살아나야 한다. 형제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사람이 진정한 가족이다. 형제 사랑에 관해 시애틀에서 소문나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