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율법의 목적들

자 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않다면 그냥 버리면 될 것이 아닙니까? 구약은 성경에서 찢어 버리고 신약만 믿으면 될 것이 아닙니까? 율법을 지킴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지 못한다면 왜 무엇 때문에 우리가 율법을 가지고 논해야 합니까? 그냥 버려 버리면 되지요. 얼핏 들으면 옳은 말 같지만 율법을 버렸을 때 올 그 결과를 보게 된다면 그런 말은 잘못된 논리의 비약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율법의 목적은 죄를 규정하기 때문에 중요 합니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은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지시등과 같은 것입니다. 자동차에 열이 넘쳐흐를 때 온도계에 불이 들어오면 무언가 잘못 되었다 하는 것을 알려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자동차는 치명적이 되어서 그 엔진은 고철로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당신에게는 문제가 되겠지만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고 무시하고 운전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은 예외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탐심을 예로 듭니다. 율법이 탐심을 규정해 주지 않는 다면 아마도 자신이 무엇을 탐하고 있어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아주 철저한 바리새인 출신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십계명중 9계명은 언제나 거리낌이 없다고 자부 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10계명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유일하게 우리의 내면의 죄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욕망을 가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속입니다. 살인 합니다. 뭐든지 다 합니다. 바울은 고백 합니다. 율법이 이것을 지적하기 전까지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잘못된 욕망을 알지 못했노라고, 율법은 옳고 그른 것을 규정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두 번째로 율법은 죄가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롬 7: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롬 7: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율법은 우리가운데 숨겨진 죄악의 본성을 자극하여 죄를 드러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롬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어떻게 율법이 나로 죄를 짓게 합니까? 욕망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누가 하지 말라 하면 오히려 하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으로 욕망을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도 예를 들었듯이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하는 것, 이것은 우리에게 스스로가 우리 삶에 주인이고 싶어 하는 본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물 컵에 물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이 물은 며칠을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더러운 흙탕물입니다. 얼핏 보면 깨끗해서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찻숟갈로 그 밑바닥을 휘저으면 온갖 더러운 오물들이 다 떠오릅니다. 냄새가 다시 나고 마실 수가 없게 됩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찻숟갈이 나쁜 것입니까? 아니면 물이 나쁜 것입니까? 찻숟갈이 물을 더럽힌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물은 원래 더러운데 그것을 드러낸 것 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와 같이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는 죄성을 자극하여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부패 하였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찻숟가락은 결코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를 변화 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세 번째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 합니다.

율법은 단지 우리의 죄성을 자극 하여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할 뿐입니다.

(롬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롬 7: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율법을 지킴으로 생명에 이르는 것은 불가 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하여서 구세주가 필요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법이란 것을 보세요. 날이 갈수록 새로운 법이 만들어집니다. 아미도 미국 건국한 이래로 법전의 두께가 두세 배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에 죄가 줄어들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법이 아무리 잘 만들어 진다고 해도 사람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죄에게서 멀어 지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율법이 사람과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듯이 영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수많은 어떤 규칙을 지킨다고 우리들의 영적인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율법의 목적은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계시 하는 역할을 합니다.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왜 선합니까? 바로 율법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한 율법에 나타나 있기에 불완전한 우리가 그것을 지킨다는 것을 불가능 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율법은 죄가 얼마나 치명적 악인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롬 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평소엔 조금 잘 생겼다고 생각 하던 사람이 제일 잘생긴 사람 옆에 서 있으면 왜 그리 못생겨 보이는지.. 마찬가지로 가장 완전한 것에 우리를 비추게 뵈면 결국 모든 불완전한 요소들이 다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롬 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면 이것을 해결할 길이 무엇입니까?

(갈3:23-24)믿음이 오기 전(前)에 우리가 율법(律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啓示)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律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引導)하는 몽학선생(蒙學先生)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義)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전체의 목적을 말하라고 한다면 스스로 구원 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함인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천국 갈 수 없다는 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 누가 완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겸손하게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자비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완전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자유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감사 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는 여러분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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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http://ncfw.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