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테너, 한국의 파바로티, 노래하는 거인, 춤추는 테너……. 그에 관한 수식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시드니에서의 그의 공연을 관람한 사람이라면 이 수식어를 떠올릴 것이다. ‘천상의 목소리’. 이날 그의 찬양은 ‘하나님을 위해 노래하는 그의 예배’이자 ‘한 영혼을 위한 그의 고백’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몹시 빼어나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목소리와 노래만으로 무대 위에 서지 않는다. 그의 삶을 가지고 무대 위에 올라선다. 무대에서 입술과 혀로만 사역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 속에서도 행함과 진실함이 가득한 예배를 드리길 원한다. 그렇기에 수천 번도 더 불렀을 찬양이지만 찬양을 부를 때 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송송 맺혀 있었다.
지난 1월 23일 오후 7시 시드니온누리교회 본당(Sydney Onnuri Church, C3 Centre West)은 박종호 찬양 콘서트를 참석하기 위해 몰려든 약 9백여 명의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층과 2층 예배당 전 좌석을 채워 앉고도 자리가 모자라 좌석 중간중간마다 의자가 놓여졌다. 시드니의 많은 성도들이 함께 하는 찬양축제의 장이었다.
7시 시드니온누리교회 찬양팀의 찬양으로 박종호 찬양 콘서트는 개막됐다. ‘평안을 네게 주노라’는 찬양으로 무대 위에 나선 박종호 성가사는 ‘여호와 우리 주여’ ‘시편 23편’ ‘내가 영으로’ ‘당신만은 못해요’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등의 주옥 같은 찬양을 부르며 관객들과 호흡을 함께했다. 찬양 중간중간마다 그의 인생과 신앙, 사역의 여정 안에서 겪은 하나님의 은혜와 간증 등을 풀어내며 관람객들의 눈시울을 촉촉히 적시게 했다. 때론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 관객을 절대 지루하게 하지 않는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관람객들의 배꼽을 휘어잡았다.
그는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을 위해 미련한 투자를 하느니,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전하는 전도자의 삶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서울대 출신의 촉망받는 성악가의 길을 접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낙담과 절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성가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교회에서 사역하다 보니, 교회들은 오히려 저보다 세상의 유명한 성악가를 더 선호하고 인정했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포기하고 헌신한 자보다 세상에서 성공한 자를 더 선호하는 모습에 기운이 빠지고 낙담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사역하는 내내 내가 잡고 있는 하나님의 손을 그만 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의 학교에 입학하기 일주일 전, 뇌졸증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의 이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내가 하나님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매일 나의 두 손을 잡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방탕한 삶으로 그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아버지를 뵙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를 뵙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부여잡고 아버지에게 영접기도를 가르쳤다. 그러자 의식없이 기계에 의존해 숨만 간신히 쉬던 아버지의 오른쪽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용서하라”고 관객들에게 간곡히 말했다.
현재 박종호 성가사는 음반판매 수익금으로 4백여명이 넘는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다. 한국 예수전도단과 연합해 선교사 의료후원과 복지후원을 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에이즈 환자를 위한 고아원과 인도에 에이즈 병원을 설립했다.
그의 이러한 선행은 수 차례의 전도여행에서 겪었던 체험에서 비롯됐다. 전도여행에서 그는 본국에서 지원이 끊겨 아이들 학교조차 보내지 못하는 뉴욕 버팔로 출신 선교사를 만나기도 했고, 영국 이슬람 지역에서는 한 선교사가 뇌종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도 돈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져 생활하며 선교를 하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 후에는 음반과 간증서적이 판매되었고, 판매 수익금은 모두 선교사들의 후원을 위해 사용된다.
시드니 온누리교회 이기훈 목사는 “새해를 시드니의 성도들과 찬양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개최하게 됐다”며 “이번 찬양 콘서트를 통해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예배와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다시 살아나길 원한다”고 밝혔다.
시드니청운교회 최진영 씨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박종호 성가사의 찬양과 간증을 들으며 큰 은혜를 받았다”며 “아내와 아이들, 가족들이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집회라 더욱 좋았다”고 말했다.
시드니온누리교회 김혜천 씨는 “이번 집회를 통해 세계 여러 곳곳에서 고생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사정을 알게 돼 가슴이 찡했다”며 “이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시드니온누리교회 신재우 씨는 “감동과 용기를 주는 집회였다”며 “자신의 과거를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그의 찬양은 ‘하나님을 위해 노래하는 그의 예배’이자 ‘한 영혼을 위한 그의 고백’이었다. |
그의 목소리는 몹시 빼어나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목소리와 노래만으로 무대 위에 서지 않는다. 그의 삶을 가지고 무대 위에 올라선다. 무대에서 입술과 혀로만 사역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 속에서도 행함과 진실함이 가득한 예배를 드리길 원한다. 그렇기에 수천 번도 더 불렀을 찬양이지만 찬양을 부를 때 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송송 맺혀 있었다.
지난 1월 23일 오후 7시 시드니온누리교회 본당(Sydney Onnuri Church, C3 Centre West)은 박종호 찬양 콘서트를 참석하기 위해 몰려든 약 9백여 명의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층과 2층 예배당 전 좌석을 채워 앉고도 자리가 모자라 좌석 중간중간마다 의자가 놓여졌다. 시드니의 많은 성도들이 함께 하는 찬양축제의 장이었다.
7시 시드니온누리교회 찬양팀의 찬양으로 박종호 찬양 콘서트는 개막됐다. ‘평안을 네게 주노라’는 찬양으로 무대 위에 나선 박종호 성가사는 ‘여호와 우리 주여’ ‘시편 23편’ ‘내가 영으로’ ‘당신만은 못해요’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등의 주옥 같은 찬양을 부르며 관객들과 호흡을 함께했다. 찬양 중간중간마다 그의 인생과 신앙, 사역의 여정 안에서 겪은 하나님의 은혜와 간증 등을 풀어내며 관람객들의 눈시울을 촉촉히 적시게 했다. 때론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 관객을 절대 지루하게 하지 않는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관람객들의 배꼽을 휘어잡았다.
그는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을 위해 미련한 투자를 하느니,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전하는 전도자의 삶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서울대 출신의 촉망받는 성악가의 길을 접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낙담과 절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성가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교회에서 사역하다 보니, 교회들은 오히려 저보다 세상의 유명한 성악가를 더 선호하고 인정했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포기하고 헌신한 자보다 세상에서 성공한 자를 더 선호하는 모습에 기운이 빠지고 낙담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사역하는 내내 내가 잡고 있는 하나님의 손을 그만 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의 학교에 입학하기 일주일 전, 뇌졸증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의 이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내가 하나님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매일 나의 두 손을 잡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날 집회에는 약 9백여 명의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층과 2층 예배당 전 좌석을 채워 앉고도 자리가 모자라 좌석 중간중간마다 의자가 놓여졌다. |
그에게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방탕한 삶으로 그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남겼다.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아버지를 뵙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를 뵙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부여잡고 아버지에게 영접기도를 가르쳤다. 그러자 의식없이 기계에 의존해 숨만 간신히 쉬던 아버지의 오른쪽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용서하라”고 관객들에게 간곡히 말했다.
현재 박종호 성가사는 음반판매 수익금으로 4백여명이 넘는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다. 한국 예수전도단과 연합해 선교사 의료후원과 복지후원을 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에이즈 환자를 위한 고아원과 인도에 에이즈 병원을 설립했다.
그의 이러한 선행은 수 차례의 전도여행에서 겪었던 체험에서 비롯됐다. 전도여행에서 그는 본국에서 지원이 끊겨 아이들 학교조차 보내지 못하는 뉴욕 버팔로 출신 선교사를 만나기도 했고, 영국 이슬람 지역에서는 한 선교사가 뇌종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도 돈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져 생활하며 선교를 하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 후에는 음반과 간증서적이 판매되었고, 판매 수익금은 모두 선교사들의 후원을 위해 사용된다.
시드니 온누리교회 이기훈 목사는 “새해를 시드니의 성도들과 찬양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개최하게 됐다”며 “이번 찬양 콘서트를 통해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예배와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다시 살아나길 원한다”고 밝혔다.
시드니청운교회 최진영 씨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박종호 성가사의 찬양과 간증을 들으며 큰 은혜를 받았다”며 “아내와 아이들, 가족들이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집회라 더욱 좋았다”고 말했다.
시드니온누리교회 김혜천 씨는 “이번 집회를 통해 세계 여러 곳곳에서 고생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사정을 알게 돼 가슴이 찡했다”며 “이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시드니온누리교회 신재우 씨는 “감동과 용기를 주는 집회였다”며 “자신의 과거를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