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4대에 걸쳐 선교와 봉사활동을 해 온 린튼 가문의 드와이트 린튼(한국명 인도아) 목사 추모예배가 18일 미국 애틀랜타 체스넛마운틴장로교회(담임 존 바투직 목사)에서 열렸다.
평생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을 위해 살다간 린튼 목사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에는 300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해 예배당을 가득 메웠고 이 중 70여 명은 한인 목회자와 교인들이었다. 추모사를 전한 5명 중 4명이 한인 1세와 2세인 것만 보아도 그의 생애가 얼마나 한국에 헌신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추모사에는 “한국을 사랑한 분, 한인 목회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 언제나 달려오셨던 분”이라는 증언이 쏟아졌고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한국교회, 한국인들과의 따뜻한 추억들도 많았다.
추모사를 전한 헨리 고 목사(PCA교단 한인교회협의회 코디네이터)는 “린튼 목사님은 한국인들에게 큰 하나님의 사람(Great man of God)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며 “그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고, 한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방식을 이해한 사람이었다. 한인 목회자들에게 문제가 있을 때는 언제나 달려왔다. 또 미국 땅에서 태어난 한인 2세들을 향한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PCA내 2세 목회자를 위한 컨퍼런스를 시작한 분도 바로 린튼 목사님”이라며 한국인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린튼 목사의 업적을 기렸다.
린튼 목사의 30년 지기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김대기 목사(PCA 한인교회협의회 전 코디네이터, 현 성광장로교회 담임)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는 조용하고 자비로웠고 멋진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교단을 넘어 한국인들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줬다”며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어떤 때는 큰 형처럼, 어떤 때는 친구처럼, 어떤 때는 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말 못할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같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보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가 밟은 길을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린튼 목사는 애틀랜타 2세 교회인 오픈도어커뮤니티처치를 개척한 장본인으로 오픈도어처치 전, 현 목회자도 참석해 추모사를 전했다. 오픈도어처치 전 담임이었던 앤디 김 목사는 “내가 기억하는 린튼 목사님은 자애롭고, 문화를 넘어 친구가 되셨던 분”이라며 “대학생 때 모든 소망을 잃고 내 삶을 포기하려 했을 때, 린튼 목사님을 만나 회심하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를 목회의 길로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린튼 목사님은 그 길을 붙들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현 오픈도어처치의 담임인 스티브 나 목사는 “열매로 그를 알리라 하셨던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는 그가 남긴 수많은 열매들을 보고 있다”며 “그는 한국을 위해 많은 헌신을 했고, 많은 젊은이들을 목회의 길로, 기독교인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의 열매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 가족들이 차례로 나와 아버지로서, 삼촌으로서의 린튼 목사를 회고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늘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유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3남 2녀 중 한 아들은 “평생 동안 검소한 삶을 사셨고, 천국에 자신의 보물을 쌓아두시는 데 전념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생전 린튼 목사가 다녔던 교회의 담임 존 바투직 목사는 “요셉처럼 위대한 신앙적 가문을 계승하신 분, 문화와 문화 간의 다리가 됐던 분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의 필요를 알고 채워줄 수 있던 분이었다”고 전했다.
애틀랜타교회협의회 장석민 회장은 “한국교회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린튼 목사님을 기리는 추모 예배나 행사를 교협 차원에서 따로 갖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으며, 조지아의 한 원로목회자는 지역에 린튼 목사님처럼 한국교회를 돕는 미국 목회자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린튼 목사님 같이 헌신적인 분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린튼 목사는 구한말 호남지방에서 근대 교육과 의료선교 활동을 펼친 유진 벨(1868~1925) 선교사의 외손자로 1927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이후 미국 컬럼비아 신학대학원을 수학한 후 1952년 선교사로 한국에 돌아와 25년간 머물며 호남신학대 학장을 지냈다.
은퇴한 이후에도 조지아 주를 중심으로 사역의 열정을 놓지 않았던 린튼 목사는 1980년부터 1987년 6월까지 미국장로교단(PCA) 국내선교부 소수인종부 담당자로 한인선교, 흑인선교, 중국인선교 등의 총책임자를 역임했고, 1989년 6월부터 1996년까지 미국장로교단 교육부 다문화선교사역 책임자를 지냈다.
린튼 목사는 1987년 12월 김대기 목사와 함께 마리에타에 위치한 성약장로교회를 개척해 1990년 12월까지 시무했으며, 한인 2세를 위한 오픈도어커뮤니티처치를 둘루스 지역에 개척하고 한인 2세 목회자를 청빙해 이어가게 했다. 또한 2006년에는 3월 5일 김대기 목사와 조지아선교대학을 설립해 교수와 이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린튼 목사는 지난 11일 밤 애틀랜타 체스트넛마운틴장로교회에서 열린 한 장례식에 참석한 뒤 승용차로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향년 83세였다. 유족으로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아내 마지 린튼 여사와 자녀 3남 2녀가 있다.
평생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을 위해 살다간 린튼 목사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에는 300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해 예배당을 가득 메웠고 이 중 70여 명은 한인 목회자와 교인들이었다. 추모사를 전한 5명 중 4명이 한인 1세와 2세인 것만 보아도 그의 생애가 얼마나 한국에 헌신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추모사에는 “한국을 사랑한 분, 한인 목회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 언제나 달려오셨던 분”이라는 증언이 쏟아졌고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한국교회, 한국인들과의 따뜻한 추억들도 많았다.
추모사를 전한 헨리 고 목사(PCA교단 한인교회협의회 코디네이터)는 “린튼 목사님은 한국인들에게 큰 하나님의 사람(Great man of God)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며 “그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고, 한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방식을 이해한 사람이었다. 한인 목회자들에게 문제가 있을 때는 언제나 달려왔다. 또 미국 땅에서 태어난 한인 2세들을 향한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PCA내 2세 목회자를 위한 컨퍼런스를 시작한 분도 바로 린튼 목사님”이라며 한국인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린튼 목사의 업적을 기렸다.
린튼 목사의 30년 지기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김대기 목사(PCA 한인교회협의회 전 코디네이터, 현 성광장로교회 담임)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는 조용하고 자비로웠고 멋진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교단을 넘어 한국인들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줬다”며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어떤 때는 큰 형처럼, 어떤 때는 친구처럼, 어떤 때는 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말 못할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같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보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가 밟은 길을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린튼 목사는 애틀랜타 2세 교회인 오픈도어커뮤니티처치를 개척한 장본인으로 오픈도어처치 전, 현 목회자도 참석해 추모사를 전했다. 오픈도어처치 전 담임이었던 앤디 김 목사는 “내가 기억하는 린튼 목사님은 자애롭고, 문화를 넘어 친구가 되셨던 분”이라며 “대학생 때 모든 소망을 잃고 내 삶을 포기하려 했을 때, 린튼 목사님을 만나 회심하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를 목회의 길로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린튼 목사님은 그 길을 붙들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현 오픈도어처치의 담임인 스티브 나 목사는 “열매로 그를 알리라 하셨던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는 그가 남긴 수많은 열매들을 보고 있다”며 “그는 한국을 위해 많은 헌신을 했고, 많은 젊은이들을 목회의 길로, 기독교인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의 열매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 가족들이 차례로 나와 아버지로서, 삼촌으로서의 린튼 목사를 회고했다. 그는 가족들에게 늘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유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3남 2녀 중 한 아들은 “평생 동안 검소한 삶을 사셨고, 천국에 자신의 보물을 쌓아두시는 데 전념하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생전 린튼 목사가 다녔던 교회의 담임 존 바투직 목사는 “요셉처럼 위대한 신앙적 가문을 계승하신 분, 문화와 문화 간의 다리가 됐던 분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의 필요를 알고 채워줄 수 있던 분이었다”고 전했다.
애틀랜타교회협의회 장석민 회장은 “한국교회를 위해 평생을 바치신 린튼 목사님을 기리는 추모 예배나 행사를 교협 차원에서 따로 갖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으며, 조지아의 한 원로목회자는 지역에 린튼 목사님처럼 한국교회를 돕는 미국 목회자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린튼 목사님 같이 헌신적인 분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린튼 목사는 구한말 호남지방에서 근대 교육과 의료선교 활동을 펼친 유진 벨(1868~1925) 선교사의 외손자로 1927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이후 미국 컬럼비아 신학대학원을 수학한 후 1952년 선교사로 한국에 돌아와 25년간 머물며 호남신학대 학장을 지냈다.
은퇴한 이후에도 조지아 주를 중심으로 사역의 열정을 놓지 않았던 린튼 목사는 1980년부터 1987년 6월까지 미국장로교단(PCA) 국내선교부 소수인종부 담당자로 한인선교, 흑인선교, 중국인선교 등의 총책임자를 역임했고, 1989년 6월부터 1996년까지 미국장로교단 교육부 다문화선교사역 책임자를 지냈다.
린튼 목사는 1987년 12월 김대기 목사와 함께 마리에타에 위치한 성약장로교회를 개척해 1990년 12월까지 시무했으며, 한인 2세를 위한 오픈도어커뮤니티처치를 둘루스 지역에 개척하고 한인 2세 목회자를 청빙해 이어가게 했다. 또한 2006년에는 3월 5일 김대기 목사와 조지아선교대학을 설립해 교수와 이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린튼 목사는 지난 11일 밤 애틀랜타 체스트넛마운틴장로교회에서 열린 한 장례식에 참석한 뒤 승용차로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향년 83세였다. 유족으로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아내 마지 린튼 여사와 자녀 3남 2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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