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간 대대적인 탄압에도 북한에서 기독교인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조선일보가 16일 보도했다.

오픈도어즈가 북한을 8년 연속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으로 선정한 크리스천포스트 보도를 토대로 이 신문은 1945년 해방 전까지 북한에 교회가 2,600곳 있었고, 이 중 평양에만 270여곳이 있었다고 전했다.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그러나 공산정권 수립 이후 교회는 폐쇄되고 목회자는 모두 농장원 등으로 바꾸어야 했다. 처형되거나 6·25전쟁 이전 남하한 북한 기독교인들이 영락교회나 충현교회 등을 세우기도 했다.

북한 헌법 68조는 ‘공민은 신앙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1967년 김일성이 ‘종교는 미신’이라고 한 뒤 기독교인 뿐 아니라 종교인들 모두 처형되거나 추방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평양에 봉수교회나 칠골교회, 가톨릭 성당, 러시아정교회 같은 교회가 있고 신학원이 있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수령님’ 김일성과 김정일의 주체사상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60여년간 갖은 고초를 겪거나 순교했다. 1957년 평북 용천군에서는 종교를 탄압하는 김일성을 지지하지 말라고 했던 사실이 적발돼 이만화 목사 등 36명이 총살되고 130여명이 체포됐으며, 1966년 평북 박천군에서는 13명의 성도들이 5년간 야산 토굴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적발돼 처벌됐다.

이 신문은 로마 시대 수많은 박해에도 카타콤에서 신앙생활을 계속한 것처럼, 현재 북한에서도 40만여명의 지하교인들이 있다고 추정했다. 북한도 이를 자인하고 있는데,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지난 2008년 12월 간첩을 잡았다고 발표한 담화에서 “종교의 탈을 쓰고 불순 적대분자들을 조직적으로 규합하려던 비밀 지하교회 결성 음로를 적발했다”며 지하교회의 존재를 밝힌 바 있다.

북한에서 기독교 신자로 붙잡히면 ‘간첩’으로 몰리고 고문을 당한다. 3년간 감옥에 갇혔던 김모(34) 씨가 국내 선교단체에 보내온 편지에 따르면 가장 힘든 것은 15일간 허리를 90도로 구부리고 서 있게 한 것이고, 겨울에 옷을 다 벗겨서 눈밭을 기어다니게 하거나 바가지로 찬물을 끼얹어 바깥에 1시간을 세워놓고 전기곤봉으로 두드려 맞기도 했다고 한다.

신문은 한 탈북자의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1999년 탈북한 올해 86세의 김모 할머니는 빛바랜 성경을 매일 품에 끼고 자는데, 고어체 한글로 쓰인 이 성경은 1936년판 선한문(鮮漢文) 관주(貫珠) 신약전서다. 조선(朝鮮) 경성(京城) 대영(大英)성서공회에서 발간했다. 18세 때 고향 친구가 선물한 이 성경을 할머니는 북한에서의 삶을 포함해 이때까지 보존해 왔던 것이다. 1993년 사회안전부가 할머니의 집을 수색했을 때, 요원들이 들이닥치기 전 할머니는 성경을 뒤뜰 김치 움에 묻었다. 폭우가 내린 며칠 뒤 성경을 꺼내자 퉁퉁 불어 있었다. 제일 앞인 창세기 쪽은 모두 망가졌고, 할머니는 이를 태워 재를 가족들과 나눠 마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새벽이면 방 한가운데에 성경을 놓고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며 ‘노아의 방주’, ‘모세의 기적’ 이야기들을 들려줬다”고 한다. 딸이 사는 집에 갈 때는 성경을 허리춤에 숨기고 다니기도 했다. 할머니 가족은 1959년 예수를 믿는 것이 발각돼 살던 평양에서 산간 오지로 추방됐다. 남편은 거기서 옥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