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북한 문을 개방하여 북한 주민들을 살리라! 정치범수용소를 폐쇄시키라!
로버트 선교사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북한해방 기도운동을 시작했을 때(2009년 1월), 그는 곧바로 한국의 좌우 이념대립 상황을 알게 됐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북한해방 기도회에 좌우를 막론하고 다 불러주세요. 우리가 모여 함께 북한동포의 학살을 회개하며 그들의 자유와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나되게 하실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면 좌파와 우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연합됩니다.”
그는 여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가 기도를 인도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회개가 일어났다. 북한의 참상과 동포들의 고통에 무심하고 무감각한 우리들의 이기심과 안일함에 가슴을 치게 되고, 연이어 이 참상을 끝내기 위해 우리가 연합해 기도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들 안의 경쟁과 분열, 교만과 비용서, 사랑없음을 회개했다. 그가 인도하는 회개는 우리를 통곡하게 만들었다. 이 시대적 아픔을 지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회피하면서 자신과 소속한 단체의 프로젝트와 아젠다를 핑계삼고, 매일 굶주려 죽어가는 포로된 동족의 불행과 이산된 가족들의 피눈물과 불면, 악몽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우리 모습에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이 기도운동에 동참한 청년들 가운데는 친노파도, 김대중 지지자도, 민주당 지지자도 있었다. 그러나 동포의 생명과 자유를 구하는 회개와 기도 앞에 우리는 하나가 됐다. 우리는 이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북한의 참상과 그 고통에 동참하는 사랑을 이야기했다.
로버트 박은 지상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자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이들을 치유하고 사랑하는 삶을 이 서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배경도 경력도 학력도 이념도 관심과 주제가 아니었다. 다만 탈북민들의 분석대로 그는 햇볕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다. 탈북자 구출을 무상으로 해온 어느 한국교회 목사님은 그 정책의 지지자셨다. 그 분은 한국에서도 알콜 중독자와 가난한 노인들, 탈북민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신다. 나는 그를 “예수님 같은 분”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그 역시 탈북자들의 어떤 일탈 행위나 또 특수 사역상의 어떤 어려움과 배신행위에도 불구하고 일절 사람에 대한 원망과 탓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오직 그에게는 신뢰와 용서와 사랑만이 있었고, 같이 일하는 동안 이런 그분 앞에 나는 한없이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서울역 광장에서 북한인권 사진전과 서명전을 하던 가을 어느 금요일 오후, 그날은 미국인 청년여성 M과 나 둘이서 노숙자들과 알콜 중독자가 서성이는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흑기사처럼 나타나 우리의 봉사(음료, 빵)를 도와주며 지속된 저녁 기도회까지 지키며 함께 북한기도에 동참해준 K형제는 김대중 지지자였다. 그는 가톨릭 수사의 시종이며 그 일대의 노숙자들을 지키는 밤의 수호천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 상식을 넘어서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길거리에서 배웠다. 다만 그동안 내 눈이 그런 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문제는 내 눈, 내 마음에 있었다.
지난 10월 그 서울역 9번 출구, 남대문 경찰서로 나가는 곳에서는 로버트 박을 노숙자로 여겨 그에게 노숙자들이 무상으로 목욕하고 빨래할 수 있는 곳과 무상 점심,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 새 삶을 살 수 있는 시내(외) 공동체를 열심히 알려주는 ‘거지의 아버지(대부)’ H집사를 만났다. 이는 그에게 소중한 정보로 잘 정리해 인근 모든 노숙자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사안이었다. 로버트 박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H집사를 결코 알아보지 못했으며, 말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위 두 형제는 분명코 일반인들 눈에는 비정상의 흔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결핍된 것, 노숙자와 거지의 인간됨과 아픔을 같이 느껴주는 연민과 행함이 있었다.
북한해방 기도와 북한인권 시위는 이런 배경과 맥락에서 전개됐다. 나는 우리 한국인들이 북한 주민들이 겪는 참상을 진실로 알게 된다면, 연일 방송과 언론에서 실상이 보도된다면 인정많은 한국인들이 마냥 않아서 구경만 하지 많을 것임을 확신한다. 북한에서 태어나 지도자 잘못 만난 그들의 운명이라 탓하며 남한에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가슴 쓸어내리는 그런 유아적인 한국인들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언론들에게 요청하며 간청하는 바는 연일 탈북민들을 만나 취재·보도하고 현재 북한 상황을 통일 때까지 지속적으로 보도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정 많은 남한의 동포들이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의 지하철 참사에 비견이 안 되는 북녘 전 동포의 참상과 정치범수용소의 처참한 현장, 아이들의 영양실조와 아사 행진에 신속히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우리의 동정심을 보이고 봉사할 수 있도록 북한 문을 개방하는 데 앞장서 달라는 것이다.
로버트 박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는 우리 한국인들과 세계 지도자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북한 문을 개방해 북한 주민들을 살리고 정치범수용소를 폐쇄시키라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의 몫을, 한국은 한국의 몫을, 유엔은 유엔의 역할을,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는 모두 자신들의 역할을 다해 주기를 간청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에 선한 소원을 갖고 남북통일을 이뤄내 북한 주민들을 살리고 자유롭게 해 주자고 간절한 절박함으로 목숨을 담보해 외치고 있다. 2010년 우리 모두에게 그것은 지상과제 1순위라 일깨워주고 있다.
/2010년 1월 10일, 강영숙(국제비교사회문화정책연구소 부소장)
로버트 선교사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북한해방 기도운동을 시작했을 때(2009년 1월), 그는 곧바로 한국의 좌우 이념대립 상황을 알게 됐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북한해방 기도회에 좌우를 막론하고 다 불러주세요. 우리가 모여 함께 북한동포의 학살을 회개하며 그들의 자유와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나되게 하실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면 좌파와 우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연합됩니다.”
그는 여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가 기도를 인도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회개가 일어났다. 북한의 참상과 동포들의 고통에 무심하고 무감각한 우리들의 이기심과 안일함에 가슴을 치게 되고, 연이어 이 참상을 끝내기 위해 우리가 연합해 기도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들 안의 경쟁과 분열, 교만과 비용서, 사랑없음을 회개했다. 그가 인도하는 회개는 우리를 통곡하게 만들었다. 이 시대적 아픔을 지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회피하면서 자신과 소속한 단체의 프로젝트와 아젠다를 핑계삼고, 매일 굶주려 죽어가는 포로된 동족의 불행과 이산된 가족들의 피눈물과 불면, 악몽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우리 모습에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이 기도운동에 동참한 청년들 가운데는 친노파도, 김대중 지지자도, 민주당 지지자도 있었다. 그러나 동포의 생명과 자유를 구하는 회개와 기도 앞에 우리는 하나가 됐다. 우리는 이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북한의 참상과 그 고통에 동참하는 사랑을 이야기했다.
로버트 박은 지상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자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이들을 치유하고 사랑하는 삶을 이 서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배경도 경력도 학력도 이념도 관심과 주제가 아니었다. 다만 탈북민들의 분석대로 그는 햇볕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다. 탈북자 구출을 무상으로 해온 어느 한국교회 목사님은 그 정책의 지지자셨다. 그 분은 한국에서도 알콜 중독자와 가난한 노인들, 탈북민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신다. 나는 그를 “예수님 같은 분”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그 역시 탈북자들의 어떤 일탈 행위나 또 특수 사역상의 어떤 어려움과 배신행위에도 불구하고 일절 사람에 대한 원망과 탓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오직 그에게는 신뢰와 용서와 사랑만이 있었고, 같이 일하는 동안 이런 그분 앞에 나는 한없이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서울역 광장에서 북한인권 사진전과 서명전을 하던 가을 어느 금요일 오후, 그날은 미국인 청년여성 M과 나 둘이서 노숙자들과 알콜 중독자가 서성이는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흑기사처럼 나타나 우리의 봉사(음료, 빵)를 도와주며 지속된 저녁 기도회까지 지키며 함께 북한기도에 동참해준 K형제는 김대중 지지자였다. 그는 가톨릭 수사의 시종이며 그 일대의 노숙자들을 지키는 밤의 수호천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 상식을 넘어서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길거리에서 배웠다. 다만 그동안 내 눈이 그런 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문제는 내 눈, 내 마음에 있었다.
지난 10월 그 서울역 9번 출구, 남대문 경찰서로 나가는 곳에서는 로버트 박을 노숙자로 여겨 그에게 노숙자들이 무상으로 목욕하고 빨래할 수 있는 곳과 무상 점심,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곳, 새 삶을 살 수 있는 시내(외) 공동체를 열심히 알려주는 ‘거지의 아버지(대부)’ H집사를 만났다. 이는 그에게 소중한 정보로 잘 정리해 인근 모든 노숙자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사안이었다. 로버트 박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H집사를 결코 알아보지 못했으며, 말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위 두 형제는 분명코 일반인들 눈에는 비정상의 흔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결핍된 것, 노숙자와 거지의 인간됨과 아픔을 같이 느껴주는 연민과 행함이 있었다.
북한해방 기도와 북한인권 시위는 이런 배경과 맥락에서 전개됐다. 나는 우리 한국인들이 북한 주민들이 겪는 참상을 진실로 알게 된다면, 연일 방송과 언론에서 실상이 보도된다면 인정많은 한국인들이 마냥 않아서 구경만 하지 많을 것임을 확신한다. 북한에서 태어나 지도자 잘못 만난 그들의 운명이라 탓하며 남한에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가슴 쓸어내리는 그런 유아적인 한국인들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언론들에게 요청하며 간청하는 바는 연일 탈북민들을 만나 취재·보도하고 현재 북한 상황을 통일 때까지 지속적으로 보도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정 많은 남한의 동포들이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의 지하철 참사에 비견이 안 되는 북녘 전 동포의 참상과 정치범수용소의 처참한 현장, 아이들의 영양실조와 아사 행진에 신속히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우리의 동정심을 보이고 봉사할 수 있도록 북한 문을 개방하는 데 앞장서 달라는 것이다.
로버트 박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는 우리 한국인들과 세계 지도자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북한 문을 개방해 북한 주민들을 살리고 정치범수용소를 폐쇄시키라는 것이다. 미국은 미국의 몫을, 한국은 한국의 몫을, 유엔은 유엔의 역할을,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는 모두 자신들의 역할을 다해 주기를 간청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에 선한 소원을 갖고 남북통일을 이뤄내 북한 주민들을 살리고 자유롭게 해 주자고 간절한 절박함으로 목숨을 담보해 외치고 있다. 2010년 우리 모두에게 그것은 지상과제 1순위라 일깨워주고 있다.
/2010년 1월 10일, 강영숙(국제비교사회문화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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