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는 석필을 불교는 조각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기독교는 찬송의 종교이다. 이 찬송은 소망을 잃은 자에게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하고 힘을 잃은 자에게 새 힘을 솟아오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며 슬픈 자에게 위로가, 기쁜 자에게 큰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의하여 살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듯이 언제나 마음에서 참된 찬송을 부르는 생활을 해야 되겠고 성경을 바로 깨닫기 위하여 노력하듯이 찬송을 올바로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별히 요즘의 찬송은 경배와 찬양 등이 많이 강조되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시간이나 그 비중에 있어서 30%에서 50%이상까지 차지하는 경향이 많이 있으며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감정이나 마음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같이 절대적으로 완전히 영감된 것으로는 볼 수 없지만 작사, 작곡자의 전통적인 신앙과, 체험적인 신앙에서 영감된 찬송으로 볼 수 있기에 작시, 작곡자가 원하는 음악적인 면과 영감에 의한 영적인 면 등이 찬양의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개인이 아니고 단체가 찬양을 할 경우 조직적인 면, 즉 시스템 적인 면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질서가 없으면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찬양은 내적인 믿음의 외형화이다”. 여기서 내적인 믿음은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는 믿음을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세주라는 믿음인 것이다. 구원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진정한 찬양을 드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찬양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일반 음악 연주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는 찬양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찬양의 멜로디에 성경적인 가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 믿음이 없다면 찬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에 시편 33: 3의 말씀처럼 공교하게 찬송할 수 있도록 음악적인 면도 소홀함이 없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믿음 선조들은 이 찬송가를 노예 해방의 기쁨으로 불렀고, 승전의 기쁨으로 불렀으며, 핍박 중에서도 불렀고, 장래 있을 소망으로 죽어가면서도 찬송을 불렀다.

정리해 보면 찬양은 영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으로 구성 되어있으며, 여기에 단체가 찬양을 할 경우 조직적인 면이 추가가 된다.

그런데 어떤 경우라도 영적인 면이 항상 우선임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찬양은 인간인 사람이 영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