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들어 섰으니 한 살이 추가된다.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세어보게 된다. 이것이 보통 자기나이를 세는 한국의 전통적인 방법이다. 양력이 아닌 음력을 기준하는 연세들으신 분들에게는 새해에 대한 개념에 차이가 있다. 음력으로는 2009년 11월 중순이기에 아직 한 살이 젊은 것이다. 그런 모순을 볼 때 미국사람들이 생일을 기준해서 한 살씩 추가하는 것은 합리적인 것 같다. 지금 연세가 60세 이상된 많은 분들은 음력으로 된 생일을 양력으로 바꾸어 버리는 수가 많다.
안 그러면 양력을 쓰는 세상에서 해마다 생일 날자가 바뀌어 아이들에게 혼란을 준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즉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가 다음날 1월 1일에 두 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12월 생 자녀를 일년 후에 호적에 올리는 이도 있다. 한국은 지금도 신생아 출생신고를 해당 관청에 신고해서 법적인 나이가 효력을 내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병원에서 주는 출생증명서가 정확한 자신의 생년월일이다. 한국에서 6,70년 전에는 출생신고를 몇 년 후에 했다. 왜냐하면 홍역을 비롯한 많은 질병과 약의 부족으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고비를 넘긴 후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 원 나이보다는 젊게 기록돼있다.
호적도 6. 25사변 때 분실되거나 불에 타 없어져서 다시 만들면서 생년월일의 착오가 나기도 했고 더욱이 이북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호적에 올릴 때에 젊은 사람들은 전쟁으로 늦어진 학교의 입학을 위해, 또는 군에 입대하기위해 아니면 군인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생년월일을 원래 나이와 다르게 기록한 일들이 많아서 '고무줄나이'라는 말이 생겼다.
한인들은 처음 만나면 나이를 묻는다. 좋은 뜻으로 형님이 되면 윗 사람으로 모시고 동생 벌이 되면 사랑을 베풀고 싶은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학교의 선후배도 비슷하다. 일년 선배를 깍듯이 대접하고 후배에게는 때때로 차나 밥이라도 사주는 선배들의 훈훈한 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풍토는 직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풍토는 한국의 오래된 상하문화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사람들은 평면(평등)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나이에 관해서도 굉장히 포괄적이고 차별이 별로 없다. 즉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면 5년이든 10년이든 나이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결혼을 하거나 친구도 된다. 학교의 선후배나 직장도 마찬가지로 공통점을 찾아 서로 친분관계를 맺고 산다. 이런 풍토는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만일 한국처럼 구별과 차별이 심하면 새 땅에 새로 뿌리내리는 외국인에게는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에 대하여는 여려 각도로 볼 수 있다. 원래 내 나이, 호적의 나이가 있고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이가 있다. 즉 가능한 젊게 사는 사람의 나이와 반대로 세상 돌아가는 대로 혹은 비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나이는 너무도 차이가 있다. 또 한편 남들이 보는 내 나이가 있다. 그 면이 더 중요하다. 원래 나이보다 젊게 봐주고 생각과 행동이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으로 봐주는 일은 너무도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나이보다 더 늙게 보고 고집불통이고, 잔소리 많고, 인색한 사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봐주면 슬픈 일이다. 마치 늙은 암탉처럼 낳아야 할 알은 제대로 낳지 못하고 먹기는 많이 먹으면서 젊은 닭들을 따라다니며 자꾸 쪼아대고 문제만 일으키는 추한 늙은이로 비치면 흔히 하는 말로 선천적으로 구제불능이다.
연초가 되면 한 지혜자의 말이 떠 오른다. 내 나이를 셀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구절이다. 즉 자기 나이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몸부림이다. 또 한 사람 바울은 새해에 해당되는 좋은 말을 남겼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고. 그렇다. 지난 일 년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도 깊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집착되어 있으면 빨리 늙는다. 바울은 더욱 좋은 말을 했다. 자신의 육체는 날마다 늙어가지만 안에 있는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분은 나이가 해마다 더 추가되는 것을 속 사람이 성숙해 가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 얼마나 긍정적이고 멋진 삶인가. 새해에도 속 사람이 날마다 성숙해 지는 한해가 되기를 빌며.
안 그러면 양력을 쓰는 세상에서 해마다 생일 날자가 바뀌어 아이들에게 혼란을 준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즉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가 다음날 1월 1일에 두 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12월 생 자녀를 일년 후에 호적에 올리는 이도 있다. 한국은 지금도 신생아 출생신고를 해당 관청에 신고해서 법적인 나이가 효력을 내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병원에서 주는 출생증명서가 정확한 자신의 생년월일이다. 한국에서 6,70년 전에는 출생신고를 몇 년 후에 했다. 왜냐하면 홍역을 비롯한 많은 질병과 약의 부족으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고비를 넘긴 후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의 원 나이보다는 젊게 기록돼있다.
호적도 6. 25사변 때 분실되거나 불에 타 없어져서 다시 만들면서 생년월일의 착오가 나기도 했고 더욱이 이북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호적에 올릴 때에 젊은 사람들은 전쟁으로 늦어진 학교의 입학을 위해, 또는 군에 입대하기위해 아니면 군인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생년월일을 원래 나이와 다르게 기록한 일들이 많아서 '고무줄나이'라는 말이 생겼다.
한인들은 처음 만나면 나이를 묻는다. 좋은 뜻으로 형님이 되면 윗 사람으로 모시고 동생 벌이 되면 사랑을 베풀고 싶은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학교의 선후배도 비슷하다. 일년 선배를 깍듯이 대접하고 후배에게는 때때로 차나 밥이라도 사주는 선배들의 훈훈한 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풍토는 직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풍토는 한국의 오래된 상하문화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사람들은 평면(평등)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나이에 관해서도 굉장히 포괄적이고 차별이 별로 없다. 즉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면 5년이든 10년이든 나이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결혼을 하거나 친구도 된다. 학교의 선후배나 직장도 마찬가지로 공통점을 찾아 서로 친분관계를 맺고 산다. 이런 풍토는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만일 한국처럼 구별과 차별이 심하면 새 땅에 새로 뿌리내리는 외국인에게는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에 대하여는 여려 각도로 볼 수 있다. 원래 내 나이, 호적의 나이가 있고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이가 있다. 즉 가능한 젊게 사는 사람의 나이와 반대로 세상 돌아가는 대로 혹은 비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나이는 너무도 차이가 있다. 또 한편 남들이 보는 내 나이가 있다. 그 면이 더 중요하다. 원래 나이보다 젊게 봐주고 생각과 행동이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으로 봐주는 일은 너무도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나이보다 더 늙게 보고 고집불통이고, 잔소리 많고, 인색한 사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봐주면 슬픈 일이다. 마치 늙은 암탉처럼 낳아야 할 알은 제대로 낳지 못하고 먹기는 많이 먹으면서 젊은 닭들을 따라다니며 자꾸 쪼아대고 문제만 일으키는 추한 늙은이로 비치면 흔히 하는 말로 선천적으로 구제불능이다.
연초가 되면 한 지혜자의 말이 떠 오른다. 내 나이를 셀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구절이다. 즉 자기 나이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몸부림이다. 또 한 사람 바울은 새해에 해당되는 좋은 말을 남겼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고. 그렇다. 지난 일 년 동안에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도 깊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집착되어 있으면 빨리 늙는다. 바울은 더욱 좋은 말을 했다. 자신의 육체는 날마다 늙어가지만 안에 있는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분은 나이가 해마다 더 추가되는 것을 속 사람이 성숙해 가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 얼마나 긍정적이고 멋진 삶인가. 새해에도 속 사람이 날마다 성숙해 지는 한해가 되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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