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오신 하나님 그것이 우리에게는 재물보다 명예보다 그 어떤 세상의 값진 것보다 가장 귀한 우리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한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살아갈수록 삶의 문제는 어려워 보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철이 없어서 모르고, 청년의 때에는 하늘의 별이라도 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내 인생조차도 간수하기 어렵고, 더욱이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을 실감합니다.

세상에 가난한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세상에 아픈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사람이 늙고 병드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면 살수록 삶의 문제가 가볍고 쉬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하는지,. 왜 슬픈 사건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인생마다 기가 막힌 사연들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는 것 같은 일상생활도 개인적으로 파고들면 하루 살기가 힘듭니다. 인간이 범하는 죄가 놀랍습니다.

비윤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 신앙적인 일들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성도의 신앙도 꺼져가는 등불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 사랑을 잊어버렸고.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헐벗었는지, 얼마나 병이 났는지도 모릅니다. 물질주의와 세상의 풍조가 큰 파도와 같이 덮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단의 공격으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인생의 문제입니다.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하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죽음 이었습니다. 그러나 즉음을 선포하신 하나님은 또한 살길을 주셨습니다. 온 세상의 호흡이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오직 한길 우리가 살길을 주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흔히 애기하는 2%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부분적인 교체나 수리가 아닙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가 변하고 세상이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죽느냐 사는냐는 우리의 선택 입니다.

종교지도자들 구약 미가서5:2절에서 메시야의 탄생지를 찾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 탄생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메시야의 탄생을 모른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지보다 무관심이 더 큰 잘못이었습니다. 그들은 무관심만 아니라, 알고도 메시야를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왜 베들레헴으로 경배하러 가지 않았습니까? 메시야 예수님에 대한 관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야가 와서 할 일보다, 지금 이대로가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는 필요 없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이 있다면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이나 성전은 있었지만 생명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없이는 아무것도 새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세상이 이렇게 힘들고, 괴롭고, 죽고, 살고, 죄로 인해 뒤죽박죽이 된 것은 예수 없이 사람의 힘으로 무엇인가 해 보려고 했던 인본주의 사상의 결과 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신앙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예수가 없는 성경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가 없는 예배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가 없는 봉사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가 없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가 없는 전통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가 없는 직분이 어디 있습니까?
오직 예수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주님과 함께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