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명성장로교회 김양해 목사
제목 : 신 들메를 풀기도
성경본문 : 누가복음 3장 16-17절
날짜 : 2009년 12월 13일 주일
어떤 유명한 가수가 무대에 섰습니다. 무대에는 오직 여러분이 좋아하는 그 가수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없어졌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내가 가장 듣기 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고, 모든 조명이 그 가수를 비추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수의 목소리와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무대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무대 위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서 계십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인생의 무대 위에 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말씀하신 메시야시고 만백성의 구세주가 되신 분이라고 증거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이 오직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며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모든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부름 받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늘 요한은 그의 신 들메를 풀기조차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 들메를 풀기조차도.. 마태복음은 그의 신을 들기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한은 신발을 들고 다니는 종, 주인의 신을 벗기고 신기는 비천한 종의 일도 너무 너무 영광스럽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천한 일도 내게는 과분하다고 증거 합니다. 대강절을 맞이하며 세례요한의 고백이 우리의 마음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는 아무리 적은 일이라도 사소한 일이라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합니다. 적은 것이 큰일을 그르치게 하기도 하고 성취하게 하기도 합니다.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는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는 작은 일이 없습니다.
요단 강변에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한 나무는 자신은 궁전 식탁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다른 나무는 큰 배가 되어 온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나무는 어느 이름 없는 마구간의 여물통이 되었습니다. 나무의 꿈과는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구유위에 한 아이가 누웠는데 그 아이는 예수님이셨습니다.
또 다른 나무는 작은 돛단배가 되었습니다. 큰 배가 되고 싶던 나무가 갈릴리 어부의 작은 배가 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자신의 신세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자한 한 분이 자신의 배에 오르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인생의 소망을 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분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나무는 어떤 죄수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십자가 가 되었느냐고 한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메어 달린 분은 온 세상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여러분 자신만의 아름다운 꿈을 가졌던 세 그루의 나무가 자신의 꿈과는 전혀 다르게 초라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이 세상의 어떤 나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꿈과는 달랐지만 이 나무들은 나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지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일,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님께 쓰임 받는 모든 일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주님의 일에는 작고 큰일이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 속에서 우리 자신이 주님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이 큰일이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 일지라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하는지 눈여겨보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거나 자랑스러운 일이라면 그 일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눈에 창피스럽다면 발뺌을 합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지느냐에 따라 우리는 일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작을지라도 우리의 작은 능력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충성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작은 일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 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모라비안들이 서인도 제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모라비안들은 한 가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과 같이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그들과 같이 다시는 바꿀 수 없는 노예가 되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적다고 생각하십니다. 내가 최선을 다한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십니다. 때론 작은 일이 그리스도의 역사를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아무리 미천한 신분으로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해도 주님은 언제나 우리 보다 낮은 자리에서 우리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천한 일을 할 때 주님과 더 깊은 영적인 교재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작은 일을 통해 우리의 큰 믿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낮은 곳에서의 섬김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려고 하는 노력보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여러분 적은 일에 열심을 품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작은 일을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풍성하시길 축원합니다.
제목 : 신 들메를 풀기도
성경본문 : 누가복음 3장 16-17절
날짜 : 2009년 12월 13일 주일
어떤 유명한 가수가 무대에 섰습니다. 무대에는 오직 여러분이 좋아하는 그 가수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없어졌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내가 가장 듣기 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고, 모든 조명이 그 가수를 비추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수의 목소리와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무대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무대 위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서 계십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인생의 무대 위에 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말씀하신 메시야시고 만백성의 구세주가 되신 분이라고 증거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이 오직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며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모든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부름 받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늘 요한은 그의 신 들메를 풀기조차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 들메를 풀기조차도.. 마태복음은 그의 신을 들기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한은 신발을 들고 다니는 종, 주인의 신을 벗기고 신기는 비천한 종의 일도 너무 너무 영광스럽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천한 일도 내게는 과분하다고 증거 합니다. 대강절을 맞이하며 세례요한의 고백이 우리의 마음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는 아무리 적은 일이라도 사소한 일이라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합니다. 적은 것이 큰일을 그르치게 하기도 하고 성취하게 하기도 합니다.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는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는 작은 일이 없습니다.
요단 강변에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한 나무는 자신은 궁전 식탁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다른 나무는 큰 배가 되어 온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나무는 어느 이름 없는 마구간의 여물통이 되었습니다. 나무의 꿈과는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구유위에 한 아이가 누웠는데 그 아이는 예수님이셨습니다.
또 다른 나무는 작은 돛단배가 되었습니다. 큰 배가 되고 싶던 나무가 갈릴리 어부의 작은 배가 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자신의 신세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자한 한 분이 자신의 배에 오르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인생의 소망을 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분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나무는 어떤 죄수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십자가 가 되었느냐고 한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메어 달린 분은 온 세상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여러분 자신만의 아름다운 꿈을 가졌던 세 그루의 나무가 자신의 꿈과는 전혀 다르게 초라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이 세상의 어떤 나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꿈과는 달랐지만 이 나무들은 나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지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일,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님께 쓰임 받는 모든 일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주님의 일에는 작고 큰일이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 속에서 우리 자신이 주님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이 큰일이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 일지라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하는지 눈여겨보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거나 자랑스러운 일이라면 그 일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눈에 창피스럽다면 발뺌을 합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지느냐에 따라 우리는 일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작을지라도 우리의 작은 능력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충성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작은 일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 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모라비안들이 서인도 제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모라비안들은 한 가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과 같이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그들과 같이 다시는 바꿀 수 없는 노예가 되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적다고 생각하십니다. 내가 최선을 다한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십니다. 때론 작은 일이 그리스도의 역사를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아무리 미천한 신분으로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해도 주님은 언제나 우리 보다 낮은 자리에서 우리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천한 일을 할 때 주님과 더 깊은 영적인 교재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작은 일을 통해 우리의 큰 믿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낮은 곳에서의 섬김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려고 하는 노력보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여러분 적은 일에 열심을 품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작은 일을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풍성하시길 축원합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