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시를 기억하시는지요? 사랑하기 전에 보던 달과 사랑하고 나서 보는 달은 전혀 다릅니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공부는 하면 할수록 제가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어렵고 복잡한 우주여행같이 느껴집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고 인생 경험이 쌓일수록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정말 제한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녀를 기르며 목회를 하면 할수록,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기대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임을 실감합니다.

세상 지식은 불완전하여 어제까지 견고하던 이론도 오늘은 뒤집어질 수 있음을 봅니다. 아무리 좋은 논리도 반대 논리가 있고,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은 언제나 진리임을 깨닫습니다. 성령님이 체험케 하신 사랑은 변질되지 않는 사랑임을 느낍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실을 성령님은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지 못했고, 확인할 수 없지만, 성령님은 이 신비를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나의 죄와 허물을 씻어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요, 주님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임을 믿어지게 해주신 분은 성령님입니다.

그 어떤 책에서도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성령님은 내가 하나님의 손에서 만들어진 존재임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심을 자각하게 해주셨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이성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까? 냉철한 철학적 판단으로도 이것은 해석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 머리로 알 수 없었지만 성령께서 알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놀랍지 않나요? 셀폰 단축 다이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주님은 내 마음을 이미 아십니다. 내 소원을 아시고, 내 마음을 아십니다. 내가 이겨낼 수 없는 슬픔도,
감당할 수 없는 고난도 성령님이 힘을 주시면 가능하지요. 세상은 성령님을 모르지만, 성령님은 우리를 아시고, 우리도 성령님을 압니다. 열번 죽었다 살아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3)

성령님을 사랑하는 형제, 이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