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든 신앙이든 자유는 억압을 당하는 상황 속에 서야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최근까지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해왔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의 중심에는 물질적 풍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순례자들(The Pilgrims)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신대륙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당시 순례자들(The Pilgrims)은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젖어 있는 영국교회를 벗어나 새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바람은 영국교회 입장에서는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영국국교회 외에 다른 교회에 참석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영국교회에 참석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벌금을 내고 투옥을 당했고, 그룹을 이끌던 Henry Barrowe 와 John Greenwood는 사람들을 부추긴 죄목으로 처형당했습니다.

모두 150명쯤 되는 사람들이 영국을 떠나 암스테르담 라이덴(Leiden, Amsterdam)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영국을 떠난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곳도 만족스런 곳은 아니었습니다. 언어, 문화, 풍속이 달라서 생활이 어려웠고 자녀들이 영국의 예절과 문화를 잃어버리고 네덜란드사람을 닮아가는 것도 걱정스러웠습니다. 순례자들은 다시 고민하다 새로운 세계로 떠날 결심을 하고 11년간의 네덜란드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순례자들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실고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항해는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극심한 폭풍우가 몰아쳐 갑판에 나가지 못하고 Cargo space에 모여 시편을 노래하며 서로를 위로해야 했습니다. 65일간의 항해 끝에 1620년 12월 11일 Plymouth항에 도착했습니다. 순례자들이 도착했을 때는 겨울이라 심한 추위와 식량난 등으로 그 해 겨울에 102명 가운데 44(46명?)명이 죽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살아남기 위해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과 싸워야 했습니다.

먹을 것도 부족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순례자들을 도와준 사람은 마음씨 좋은 인디언이었습니다. 인디언들은 옥수수 등의 곡물을 가져다주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주었습니다. 순례자들은 다음 해 씨를 뿌렸지만 여름엔 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이 말라 죽어갔습니다. 순례자들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비가 내려 농작물이 살아나고 가을엔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고마운 인디언들을 초대해 90여명이 모여 추수한 곡식과 야생 칠면조 고기 등을 나눠 먹으며 하나님께 감사 파티를 가졌습니다.

이처럼 최초의 추수감사축제(The first thanksgiving feast)는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뜻 깊은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칠면조 요리는 추수감사절을 상징하는 음식이 되어 ‘Turkey Day’로 불리기도 합니다. Turkey 고기가 맛 있어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때를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월절 절기에 누룩없는 떡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Thanksgiving Day를 앞두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이웃의 사랑과 신앙의 자유에 감사하며 한 주간을 보내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