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뉴스 대표이자 중국어깨동무사역원 대표로 사역하고 있는 최민 목사의 글입니다.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역하고 있는 최민 목사는 올 6월 한국 정동제일교회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웨슬리언지도자대회'에서 주제 강연했으며 이 글은 원고를 정리, 기고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2. 사회 변화에 따라 조선족 교회 전도대상 변화 시급
민족교회에서 중국인 교회로 연합, 탈바꿈 필요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 대이동이 시작됐다. 특히 중국동포들의 집거구인 옛 만주 땅에서의 이농과 도시 진출 바람이 거세다. 거기에다 중국동포들의 해외진출과 한국행이 봄물을 이루면서 농촌 동포마을이 없어지거나 축소 되어가고 있다. 특별히 농촌에서 조선족 청년들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 되었다. 중국조선족의 중심을 이루었던 연변지역의 조선족 인구비례 상황을 보아도 엄청난 변화가 보인다. 중국지방 정부가 밝힌 통계적 숫자로 보면 1953년 연변 조선족 인구비례 57%, 지난해까지 36%로 축소됐다. 현재 마지막 남은 젊은 층 동포들도 농촌을 떠나 시내로 모여들고 있다. (현재 조선족 인구의 엄중 감소와 더불어 농촌 이농, 탈농촌 현상이 보편적이며 농촌학교, 공공시설이 거의 문을 닫은 형편이다.)

현재 연변 지역에만도 삼자교회 200여개에 가정교회 300여개, 도합 500여개 교회가 있다. 그 교회 중 80%- 90%가 농촌교회인데 변화되는 환경을 맥없이 바라볼 뿐 어떤 대응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교회의 존재 여부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최근 거의 모든 민족교회의 성도수 감소, 헌금 등 재정축소, 교회운영경비 부족, 사역자 가정 생활난 등이 겹치며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복음전파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전에 분주하게 찾아오던 선교사들도 떠나가고, 후원도 대부분 끊겼다.

이런 형편에서 조선족교회들이 점점 더 침체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많은 농촌교회들이 간판은 있으나 성도가 없거나, 아니면 겨우 몇 명이 교회를 지키는 실정이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주장하는 해결책의 하나는 조선족교회들이 한족교회와 연합, 또는 한인성도 예배를 개발하여 주류민족인 한족 대상화에 눈길을 돌려 교회의 생존과 앞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좋은 실례가 있다. 원래 길림성 송강하교회는 100여명의 조선족 성도로 전에는 평온하게 목회를 이어왔다. 그러다가 이 교회도 도시화 집중과 동포들 한국행이 이어지면서 조선족 성도들이 어느새 20여명으로 확 줄어들었다. 다행히 이 교회전도사는 앞날을 내다보고 한족 전도와 함께 한족 예배를 도입했다. 마침, 전도사의 중국어 언어 소통 능력과 부인이 한족인 강점을 이용하여 교회의 실패를 반전 시켰고 현재는 한 교회 두 민족예배로 성도수가 오히려 200여명을 넘긴 중형교회로 부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송강하교회가 전도대상 전의로 교회성장의 좋은 경험을 제공해준다. 조선족교회들과 동포사역자들이 우리 민족 주최교회란 울타리를 벗어나 큰 어장인 대 한족 사역으로 전환 및 결부를 통해 민족교회의 활력을 회복하여야한다.

3. 현 조선족교회지도자들의 체질개선 필요.
한인선교는 중국 대륙의 개혁개방 훈풍을 타고 재빠르게 움직여 전 대륙에 선교부흥의 불을 지폈다. 특별히 중국 동북의 모든 지역마다, 촌마다 다 교회가 일어섰다. 도처에서 성경 읽는 소리, 찬양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복음전파의 확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교회를 이끌어 갈 교회 지도자들의 수준과 수양이 따라가지 못한다. 일부 교회 전도사들은 영성은 물론 문화 지식과 인격수양이 교회 지도자로서의 요구와 거리가 멀다. 여기에는 중국의 종교 지도자 배양과 신학교 문제 등 많은 복합적 원인이 존재하나 우리 한인선교의 지도자 배양에도 큰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중국선교 지도자 물색 배양에서 적지 않은 선교사들은 이념 의식을 앞세워 현지 청년 중에 정부 측에 반항심이 있고 자기보호와 사역의 안전에 편리한 대리인적 인물을 물색했다. 그리고 대다수 자기에 대한 충성을 먼저 키우며, 자기 안전보호에 유익한 용기있는 젊은이를 우선 찾지 않았던가? 또한 이들을 자기의 제자로 삼은 후 물심과 의리면의 교양이 중심이었다. 즉 이들을 “양아들”, “조카”, “형님, 동생”등 친인척 관계를 맺어 이들에게 충성 의리를 심어주며 자기한테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그들 중 적지 않은 청년들이 원래 싸움꾼, 건달 습성이 많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인물중에 믿음의 좋은 사람이 나온 역사도 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흑백 논리적 이념관점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용기를 보고 배양대상으로 잡는 것이 또한 많다. 이들이 진정 거듭나기 전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데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옛 관습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특히 중국에서 외국인 선교사의 활동에 언제나 안전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 하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지도자 교양에 돈이란 당근만 썼지, 교육의 따끔한 채찍은 불이익을 당할까하여 거의 사용하지 못하였다.

혹자는 불성실한 현지 지도자의 협박, 이용에 겨자 먹기로 따르는 형상이 비일비재했으며 더하면 서로가 돌아서 원망하며 갈라서는 것이 그만이었다. 그 일부 “제자”들은 시간이 흐르고 지원금이 떨어지니 그 원 습성이 되살아나오며 선량한 믿음생활과 선한 지도자가 되기 희박함이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지역민들에게 환영받는 좋은 인물의 이미지를 가지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또 이들은 선교사들과 눈치 볼 사람이 없을 때에는 자기들끼리의 술, 담배 추렴도 스스럼없이 한다. 오히려 지방 현지인들의 반영을 보면 “그래도 중국신학을 나온 사역자들이 더 정파답고 온당하다”는 것이다.

이 면에서 중국 선교사들은 냉정히 자기가 배양한 지도자 신앙, 영적 함량을 한번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을 선발했으며 어떤 영성교육과 인성교육을 해왔는가 말이다. 혹시 돈에 의거하여 자기를 따르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깊이 자문해보기 바란다.

그 밖에 중국신학에서 기독교 수준급 인재 배양이 따라서지 못하며 대학 졸업생은 신학교에 가지 못하는 등 원인으로 중국교회에는 영적 지성인 사역자가 판 부족이며 거의 모든 문화 지성인들이 세상 쪽으로 빠지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