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Prag)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첫째, 소련(소비에트 연방)에 귀속되어있는 동구라파 가운데 최초로 자유의 새싹이 피어 오르기 시작한 곳이 프라하(Prag)이다.

<1968년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체코. 슬로바키아의 시민들은 소비에트 연방군(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 등을 선언하였고, 소비에트 연방은 이를 공산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와르샤와 조약기구의 20만 병력을 땡크를 앞세워 체코. 슬로바키아를 침공했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소비에트 연방군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당 중앙 위원회를 해체시키고,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이자 체코. 슬로바키아의 서기장이었던 알렉산데르 드부체크를 외국으로 망명시켰다. 그리고 ‘자유의 꽃 몽우리’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싹둑 잘려버렸다.

체코의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1929- )가 그의 소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이 프라하의 봄의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있다.

체코. 슬로바키아는 9세기 말부터 14세기 초까지 프르셰미슬 왕조가 다스렸다. 이후 룩셈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는 중에 카렐 1세가 신성 로마 황제 카를 4세로 즉위하였다.

15세기 이후 후스파의 종교 개혁이 격렬하게 전개되어 1618년 30년 전쟁(1618 - 1648)이 일어났다.(구. 신교 간의 종교전쟁, 프라하가 진원지이다,
구교의 승리로 끝난)전쟁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 지배가 강화되었고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帝位)를 독점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체코를 1918년까지 지배하였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였으나 1938년 나치 독일에 합병되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일에 점령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5년에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가 1993년에 평화적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분리되었다.

둘째, 세계적인 작곡가들을 배출했는데, 첫째는 스메타나, 스메타나는 조국 보헤미아 풍의 교향시곡 vlast (나의조국)을 작곡 – 몰다우(Moldau)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둘째는 드볼작< 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1904)> 1892-1895, 뉴욕시에 있는 국립 음악원(National Conservatory of Music) 교장으로 봉직할 당시, 1893년 뉴욕 필하모니의 위촉으로 아메리칸 인디언 민속 풍의 제9 교향곡-“신세계"를 작곡했다. 셋째는 레오시 야나체크(1854-1928) 대표작:<신포니에타>.

프라하(Prag)는 동구라파 가운데서 가장 완벽한 상태의 중세 건물을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서, 매년 다시 찾고싶은 도시이다. 마치 타임.머쉰을 타고 중세 신성.로마 제국의 수도에 도착한 느낌이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프라하의 봄을 연출했던 광장과 카알 대제의 광장이었다.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과 연인들로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는 체코의 크리스탈(Crystal)인데 가게마다 크리스탈(Crystal)이 진열되어 있었다.

프라하 도시를 관동하여 흐르는 몰다우 江(강)은 구 시가지 와 중세도시를 양분하여 흐르고 있었다. <*스메타나 작곡의 ‘몰다우’의 테마를 음미하며 카알교를 통하여 몰다우 강을 건넜다>카알 대제의 이름을 따서 만든 카알교(Bridge)는 참으로 아름다운 다리인데, 다리 밑 몰다우 강에 Cruz(크루즈) 배들이 떠 다니고 있고, 구 시가지 언덕에는 프라하의 상징인 프라하 성이 프라하 도심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