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닉 처치]를 쓴 Nile Cole은 그동안 교회가 나쁜 땅에 받아들이는 실수를 범하며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 엉뚱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한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한 번만 와달라고 매달리고, 한 번 왔으니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은 결국 열매 맺지 못할 나쁜 땅을 붙잡고 진을 빼는 것이다. 이제라도 교회를 떠나고 싶은 사람은 놔두고, 발상을 전환해서 옥토를 찾아 거기에 씨뿌리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씨뿌리는 비유에서 밭의 종류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 지 보여준다. 씨앗이 일부는 바람에 날려 길 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속에도 떨어졌다. 길 가는 싹 조차 나지 않았고, 돌밭과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싹은 났지만 중간에 시들고 오그라져 결국 한 톨의 곡식도 거두지 못했고 오직 좋은 땅에서만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30배, 60배, 100배의 수익을 %로 계산하면 3,000%, 6,000%, 10,000%가 된다. 이것은 경제가 아니라 기적이다. 주님은 옥토에서는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싹수가 노란 사람 붙잡고 씨름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영접하지 않는 자들 앞에서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나오라고 하셨다. 사랑이 부족해 그러셨겠는가? 자기 선택의 냉엄한 결과를 제대로 알아야 정신차릴 사람이 나온다.

네 종류의 밭은 복음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네 종류의 사람을 의미한다. 길 가는 마음이 굳어 복음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돌 밭은 깊이가 없어 박해나 시련이 닥쳤을 때 넘어지는 사람이다. 가시떨기는 부와 명예와 세상 욕심을 포기못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반면에 좋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는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보여주는 씨 뿌리는 비유는 목회에 대해서도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 나쁜 땅에서 헛수고할 게 아니라 좋은 땅에 집중해야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다. 씨뿌리는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 중에 3/4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중도에 소멸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열매 맺고 못맺는 것은 씨뿌리는 자가 아니라 밭에 달려있다. 목회도 좋은 땅에 집중하는 게 성공의 비결이다.

길 가, 돌밭, 가시떨기도 아까운 밭이라고 거기서 시간보내는 것은 헛수고다. 도시에서 개척교회들이 고전하는 이유는 나쁜 땅을 붙잡고 씨름하기 때문이다. 대개 작은 교회들은 열매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어르고 달래느라 힘빼는 것 같다. 그러지 말고 열매 맺는 좋은 땅을 집중 관리하는 게 나을 것이다. 좋은 땅 한 곳에서 거두어 들이는 열매가 나쁜 땅까지 붙잡고 씨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할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요4:35)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복음전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그 땅을 추수할 밭으로 보셨다. 성경을 보면 세리, 죄인들, 돈도 권세도 없는 약한 사람들속에 좋은 땅들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