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차 WCC 총회 유치에 대한 기쁨도 잠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보수 교계에서는 WCC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결집을 촉구하는 반면, 진보 교계에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연합과 일치를 기조로 하는 WCC가 오히려 진보와 보수의 분열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용공단체 논란을 겪던 WCC 가입 문제가 예장 합동과 통합 등 한국교회 분열의 주원인이었던 만큼, 이러한 갈등은 충분히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진정한 연합과 일치를 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위상을 과시하고자 하는 일부의 기회주의적 사고로 인해 토론과 대화가 단절되는 모습은 간과할 수 없다.

그동안 WCC가 평화, 인권, 민주화, 종교간 갈등 극복, 빈곤·질병·환경 문제 해결 등에서 지대한 역할을 감당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WCC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향적 협력은 어려운가” 진지한 고민… 문제는 신학차이

이는 단순히 이념적인 대응이나 세계 기독교계 조류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소치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합동이 9월 제94회 총회에서 WCC 총회를 규탄하며 보수 교계 결집을 촉구했을 때, 이에 대한 반대 발언을 했던 오정호 목사(대전새로남교회)는 “협력할 부분과 막아야 할 부분을 진지하게 검토해 형제와 함께하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며칠 전 논단을 발표한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는 보다 깊이 있는 고민을 나타냈다. 총신대 유력한 총장 후보로도 거론됐던 그는 “‘용공’ 문제는 이제 40년 전 문제가 되었으니 WCC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가. 우리가 계속 WCC 바깥에 있으면서 비판만 할 것인가. 안에 들어가서 올바른 신앙고백과 바른 방향성을 회복시키는 일은 할 수 없는가”라고 했다.

또 그는 “우리 교단이 WCC의 신학적 입장에는 동조하지 않아도 거대한 조직을 활용해 창조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향적으로 힘차게 펼쳐나갈 수는 없는 것인가.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북한의 인권문제 제기와 비핵화와 평화 정착, 나아가서 세계평화 등에 WCC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인가”라고 진지하게 화두를 내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신학적인 고민이다. 더욱이 WCC 총회 유치가 이후 홍보 과정에서 ‘기독교계 올림픽’이자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큰 쾌거’ 등의 표현으로 사회 전반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후 파생될 신학적 혼란을 우려하는 보수신학계의 위기감은 그만큼 더 컸다.

권 교수는 “취지는 매우 좋으나 실제로 WCC가 예수 그리스도가 그토록 애절하게 간구하셨던 ‘거룩한 연합’(holy unity)을 이루고 있는가”라며 “창설 당시 성경적 진리에 입각한 연합을 추구하기로 한 WCC가 성령의 감동으로 된 무오한 성경을 지키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구원론도 사실상 포기한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1991년 제7차 총회에서 우리나라 정현경 교수는 한(恨)을 안고 죽어간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창호지에 불을 붙여 재로 날리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착취당하고 버림받은 애굽인 하갈의 영혼이여 오소서.’ ‘광주, 천안문, 리쿠니아에서 탱크에 떠밀려 죽은 자들의 영혼이어 오소서.’ 정 교수는 무당 살풀이를 통해 성령을 불러내는 모독을 범했다. 정 교수의 연설에 총회 참가자 대다수가 기립박수를 보냈다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NCCK에서 그동안 보여줬던 일부 모습들은 인권, 평화 그 자체가 기독교의 목적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 위에 나타난 사랑만이 진정한 복음이라는 확고한 신앙 고백 위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물론 NCCK가 WCC의 산하기관이 아니며 김삼환 통합 전 총회장 역시 총회 유치 과정 중 두 기관을 동일시함에서 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했지만, 실제적인 측면에선 그다지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김영한 교수(숭실대)는 “역사적이고 중차대한 기독교적인 축제가 종교 혼합 내지 다원주의 정신에 의해 주도되어 기독교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양적이고 화려한 모임의 외관에 치중하는 한,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연합과 화해의 모임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보교계 “우물 안에 하늘” 지탄보단 세심한 관심 요청

WCC측은 “공식 문서를 보면 창립 이래로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확언하고 있음에도 아전인수 격인 흑백논리로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구호는 잘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는 어떠한가. 사단의 명분은 언제나 그럴 듯하다”고까지 말하는 반대측의 말 또한 되새겨볼 필요는 있다.

아울러 가장 강경한 반대 입장에 서 있는 한 목회자는 “교회 일치론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교단 통합은 곧 개신교와 천주교의 통합으로, 이는 필연적으로 전 종교의 일치로 직결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간 심도 있는 신학적 고민 없이 진행되어 온 한국교회의 연합 운동이 WCC가 추구하는 정신과 활동에까지 반감을 제공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인으로서 WCC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한 목회자는 보수교계의 반응에 “전 세계 교회의 복음의 축제를 앞두고 한국적인 편견에 사로잡힌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며 세계교회에 색깔을 덧입히는 어리석음”이라고 표현했다. 화합과 협력을 화두로 세계적인 연합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교회의 하나됨을 향한 진정성과 신중함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세계 기독인의 축제’를 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나타내시고자 하는 진리의 궁극적인 구현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요, “세계 기독교의 중심국으로 성장한 한국교회로부터 비기독교화 되어 가는 서구교회의 해결점을 찾고자 했다”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셨던 복음의 진수를 전하길 원하는 것이다.

한편 한기총에서는 WCC 문제 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대응’보다는 연구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함께 협력해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권 교수도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다면 스스로 역사적 세계적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와 견해를 같이 하는 교파, 교단, 교회들과 협력하여 ‘WCC는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오늘 이 시점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대책을 신속히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유치를 감사하는 자리에서 “보수의 온전성과 진보의 아이디어, 원칙과 실용의 조화”를 요청했던 WCC 유치위원장 박종화 목사와 축하 예배에서 “한국교회가 하나되는 성숙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 달라”고 했던 참석자들의 호소를 보수와 진보교계 모두 숙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