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데이빗과 나는 오랜만에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일년에 두어번 아이들의 데이케어에서 토요일 저녁에 아이들을 맡아주고 부모들이 둘만의 데이트를 하도록 시간을 마련해 주는 제도가 있다.

낮 동안에 아이들이 생일파티에 가서 세 시간 가량 수영을 하고 온 후라 무척 피곤할 텐데 하며 죄책감으로 가슴팍이 시려 왔지만 눈 딱 감고 아이들을 데이케어에 데려다 주었다. 6시부터 10시까지라고 했으니 그 사이 시간만 잘 맞추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우리는 가까운 차이니스 레스토랑엘 갔다. 오랜만에 나는 쿵파오 치킨을 시키고 데이빗은 스시 딜럭스를 시켰다. 다양한 종류의 스시가 골고루 담긴 접시를 바라보는 데이빗의 얼굴이 만족감으로 발그레해졌다. 영화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우리는 아름답게 장식된 음식들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열심히 먹어댔다.

내가 저녁을 거의 끝내갈 즈음 데이빗이 스시 두개가 남아 있는 접시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서둘러 먹자고 한 사람이 왜 저리 고심에 찬 눈으로 두개의 스시를 바라보고 있나. 물었더니,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란다. 데이빗은 제일 맛있는 스시를 가장 나중에 먹는 버릇이 있다. 그래야 그 맛을 식사 후에도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참 이상한 취미이기도 하다.

나는 정반대다. 맛있는 거부터 먼저 먹는다. 맛있는 것을 마지막까지 기다릴 인내도 없지만 기다려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내가 그 이야기를 데이빗한테 하자, 그럼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그 혼인 잔치의 기적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했다. 물로 만들어진 맛있는 포도주를 맛본 사람들이 뭐라고 했느냐. 다른 사람들은 맛있는 포도주를 먼저 내고 취한 후에는 맛없는 포도주를 내는데 당신은 더 맛있는 것을 나중까지 아껴 두었다가 주는구나 하지 않았는가 라는 것이다. 물론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데이빗의 입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믿음이 없는 데이빗이지만 성경의 이야기들은 빠삭하게 알고 있다. 근데 믿음이 없다보니 적용도 자기 마음대로 한다. 뭔가 반박하려다가 딱히 반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고 해서 그냥 픽 웃고 말았다.

데이빗에게 믿음이 생겨 함께 성경에 대해서 밤새 이야기 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기도를 시작하자.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기도가 이루어질 그 날을 바라보자.

나의 가슴에서는 이제 막 마라톤 경주를 시작한 운동선수가 서서히 워밍업을 하며 한두발을 내딛을 때처럼 흥분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그 흥분은 결승점에 대한 기대와 그곳까지의 여정에 대한 각오로부터 오는 것이리라.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10여 년을 나와 갈등 속에 보냈던 아버지에게 스스로 교회를 가고 싶은 마음을 심어주신 하나님께서 데이빗의 마음도 수년 안에 열어 주시리라 믿는다.

/김성희(볼티모어 한인장로교회의 집사이자 요한전도회 문서부장이고,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메릴랜드 주립대학 의과대학에서 연구 행정원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