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영광장로교회 김병규 목사

일시 : 2009년 10월 11일

본문 : 창26:12-22

제목 : 하나님의 형통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사람이란 누구를 막론하고 내 인생이 잘 되길 원합니다. 형통하길 원합니다. 형통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형통에 대한 생각과 정의는 다를 수 있지만 형통에 대한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형통하길 원한다고 다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형통이란 것은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나타날 수 있습니까? 형통에 대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형통에 대한 비결을 배우되 순전한 마음과 정직한 마음, 부지런한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진실한 배움에는 하나님과 사람의 도움이 오게 됩니다.

다윗은 진실한 마음으로 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환경을 초월해서 형통함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이삭과 요셉입니다. 이삭이 더 이상 흉년이 들어서 목축을 할 수 없자 가나안을 떠나 블레셋 땅으로 갔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갑니다. 이삭이 이 땅에 들어갈 때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한 일은 농사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이 아니었고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에게 좋은 땅을 줄 까닭이 없습니다. 이삭의 삶 속에서 형통을 찾아 볼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창 25:12절에 보면 이삭이 농사를 지었는데 100배를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해서 거부가 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삭은 농사꾼이 아닙니다. 목동이었습니다. 농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인데 100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어떻게 형통의 복을 받을 수 있었나? 형통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형통케 할 수 있지만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농사에 대한 지식을 가진 농사꾼도 풍년을 얻기 힘든데 이삭이 농사를 지어 거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이삭의 노력 100배 이상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당시 이것은 이삭을 멸시했던 블레셋 사람들이 이제는 이삭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26:6-7절에 보면 이삭이 블레셋을 두려워한 장면이 나옵니다. 이삭이 두려워하던 블레셋 사람이 이삭을 찾아와 평화의 조약을 맺고 너희 하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평안과 구원의 은총을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환경과 조건을 초월해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구원과 축복을 베풀어주십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만한 삶을 산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것뿐인데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어려운 환경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경을 초월해서 역사하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기복신앙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명예와 부를 가진 사람들이 본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형통과 성공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아름다운 본이 되는 것입니다. 형통과 성공, 그리고 축복은 섬김의 도구입니다. 성공하셔야 하고 형통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만 사용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우리의 참된 축복이 됩니다.

축복과 형통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나누고 싶어도 물질이 없으면 나눌 수 없습니다. 베풀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도 힘이 없고 권세가 없으면 도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적인 형통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삭이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형통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도우신 것입니다. 이삭에게 주신 축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축복입니다.

이삭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신앙을 가졌기에 형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어려서 부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며 자랐습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경험해 본다는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삭에게 가르쳤습니다. 이삭은 말씀에 대한 순종을 배웠습니다. 어려서의 교육과 경험이 중요합니다.

창26장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에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애굽은 세상입니다. 세상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은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가지 않고 그랄 땅으로 갑니다. 이런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농사의 복을 받고 후대의 복을 받습니다. 농사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삭은 자신의 능력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할 때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멈추라면 멈출 수 있는 신앙이 돼야 합니다.

둘째는 부유한 마음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덮어버립니다.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데 떠나라고 할 때마다 이삭은 떠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물을 내어줍니다. 이삭은 부유한 마음과 넉넉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부유한 마음이 있고 넉넉한 마음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없으면 생명을 걸고 싸웁니다.

사막에 우물을 판다는 것은 보통의 노력이 아닙니다. 우물을 파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이삭은 우물을 내어줍니다. 환경을 초월해 형통하기 원한다면 이삭과 같은 넉넉한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축복받는 연습을 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형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어디를 간다 해도 상관이 없고 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산골짜리에 가서 우물을 판다 하더라고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실 줄을 믿은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주십니다. 넉넉한 마음과 부유한 마음을 가지면 너 역시 환경을 초월하는 축복의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설령 누가 내가 수고해서 얻은 것을 빼앗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또 다시 주실 것이라 믿을 때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내가 준 것과 빼앗긴 것은 다릅니다. 기꺼이 주는 사람이 있고 있는 것을 빼앗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부유한 마음으로 주는 사람은 형통하게 되며 빼앗기는 사람은 칭찬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드리십시오. 축복 받은 사람을 부러워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자세로 삶을 사는지 보십시오. 우리의 시기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셋째로 온유한 성품입니다. 사람의 형통은 성품에 있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성품이 아름다운 사람이 형통합니다. 창 26장 22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온유함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을 보면서 감탄하는 부분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창26장 28-29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간청을 합니다. 여호와의 복을 받은 자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도 환경을 초월해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수 있고, 믿음으로 부유해지고 넓은 마음을 갖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다윗처럼 통회하며 자복하는 믿음의 기도를 드립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형통한 자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진 형통의 열매가 부족해서 우리가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입니다. 형통은 옛날 믿음의 선진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이 시대에도 일어납니다.